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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종운 Jun 15. 2021

합리적인 선택에 대한 단상

"그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취미에 생업을 거는 그런 사람들..."

삼국지 게임의 최대 재미는 실제 역사와는 무관하게 최고의 능력치를 가진 장수들을 데리고 삼국통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손권으로 플레이하면서 여포를 선봉장으로 내세우고 관우, 장비, 제갈량이 뒤따르는 군대라니. 상상만 해도 내가 천하무적이 된 것 같은 기분이다.


프로야구를 보면서도 종종 각 구단별로 가장 뛰어난 선수들을 모아 최고의 드림팀을 구성하는 상상을 하곤 했었다. 그런 상상을 하는 사람들이 꽤나 많은지 야구게임들도 선수의 입장에서 직접 플레이하던 방식에서 선수를 영입하고, 판매하며 구단을 경영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야구뿐만 아니라 축구에서도 비슷한 방식의 게임이 여럿 나왔었다.


삼국지야 역사 속 이야기니까 상상에만 그치지만 야구, 축구 등의 프로 스프츠에서는 상상 속 이적이 현실이 되는 경우도 많고, 상상도 못했던 트레이드가 발생하는 경우도 꽤나 많다. 드라마 스토브리그에서도 말도 안 되는 트레이드가 2차례나 발생했다. 40홈런을 칠 수 있는 국가 대표 5번 타자 임동규와 국가대표 1선발 강두기가 트레이드되었고, 다시 임동규와 홀드 9위를 기록한 투수 김관식과 외야 유망주 연중섭를 바꾸는 트레이드가 성사된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임동규의 원 소속팀 드림즈는 만년 꼴지를 전전하던 팀이었는데도 임동규는 팀을 떠나는 것을 강하게 거부했고, 강두기는 우승을 다투는 강팀 바이킹스에서 만년 꼴지팀, 유망주들의 무덤 드림즈로 트레이드되었는데도 "드림즈에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말한다.


선수가 아닌 일반인의 입장, 제 3자의 입장에서 봤을 때 프로스프츠 선수가 팀을 옮길 때 합리적인 선택은 더 높은 연봉을 받을 수 있거나 혹은 팀의 우승 가능성, 주전 출장 가능성을 고려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극 중 백승수 단장도 당연히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에, 임동규가 언론플레이에 불량배까지 동원해서 트레이드를 반대하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했다. 누가 봐도 만년 꼴지 드림즈보다는 우승에 도전할 수 있는 바이킹스가 선수들에게는 더 매력적으로 보일 테니까. 바이킹스에서 드림즈로 보내는 것도 아니고 임동규가 트레이드를 막기 위해 백승수를 청부 폭행하는 범죄까지 서슴지 않고 저지를 만큼 드림즈가 의미가 있을까? 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드라마 스토브리그 中 1화에서 트레이드를 거부하는 임동규가 개망나니였다면12화에서 드림즈에 남고 싶었던 이유를 내뱉는 임동규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버림받은 모습이었다.

백승수가 왜 그렇게 드림즈에 집착하느냐고 묻자 임동규는 네가 선수가 아니라 그 따위 질문을 한다며 화난 표정을 지으며 내뱉는다. “중학생 때부터 나한테 천 원짜리 한 장씩 쥐어 주던 아저씨, 야구장 앞에서 쥐포 팔다가 나만 보면 손 흔드는 아줌마, 내 응원가, 그물망 흔들면서 내 이름만 부르는 술 취한 아저씨. 나한텐 그게 더 중요해. 알아? 이기는 것밖에 모르는 새끼야.” 극 중 정확하게 언급되지는 않지만 어쩌면 국가대표 1선발이자 팀의 에이스로 자리 잡고 있던 강두기가 드림즈로 돌아오고 싶었던 이유도 비슷하지 않았을까?


물론 드라마기 때문에 가능한 이야기일수도 있고, 임동규의 속마음은 드림즈의 프랜차이즈 스타로서 독보적인 위치에 자리 잡고 왕 노릇할 수 있었기 때문에 드림즈가 최고의 구단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도 꽤나 많은 선수들이 연봉이나 우승 가능성 등에 연연하지 않고 이적하는 경우가 꽤나 많다.


대표적인 것이 삼성 라이온즈의 양준혁 선수다. 양준혁 선수는 대학 졸업 후 삼성에 입단하기 위해 일부러 2년 간 군 입대를 먼저 선택하는 전무후무한 선택을 했었다. 고향 팀인데다가 해마다 우승후보로 손꼽히는 강팀인 삼성 라이온즈는 분명 매력적인 팀이긴 했다. 게다가 상무 입대를 했을 때 월급을 따로 챙겨주겠다는 삼성과의 밀약도 있었다. 그렇다고 해도 대졸 신인으로서 적지 않은 나이에 군대 문제를 먼저 해결하는 것은 연봉도 연봉이거니와 구단에서 자리를 잡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에 합리적이지 못한 선택으로 보인다. 게다가 삼성과의 사전 접촉은 제도의 맹점을 이용한 엄연한 편법이었으니 도덕적 비난도 피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 모든 것을 감수할 만큼 양준혁은 삼성에서 뛰기를 간절히 원했다. 이후에도 해태로 트레이드 되고 싶지 않다며 은퇴를 언급하는 등 삼성 라이온즈에서 뛰고 싶다는 의견을 적극적으로 밝혔는데 30대 초반의 전성기에 들어선 선수의 입장에서는 비합리적인 선택이 아닐 수 없다.


스토브리그에는 임동규, 강두기 뿐만 아니라 팬들, 구단의 비합리적인 선택이 정말 많이 등장한다. 만년 꼴찌 팀의 운영팀장 이세영은 늘 박봉을 걱정하면서도 우승팀 세이버스의 스카웃 제의를 단칼에 거절했다. 같은 일을 한다면 이왕이면 높은 연봉, 좋은 복지를 누리는 회사를 다니는 것이 당연할 테니 이세영의 선택은 비합리적으로 보인다.

드라마 스토브리그 中 강두기를 트레이드해버린 구단에 분노한 시민들은 자발적으로 모여 시위를 벌인다.드라마는 현실의 축소판일만큼 현실은 훨씬 살벌했다.

구단주 조카인 권경민이 강두기를 트레이드했을 때 팬들은 생업을 포기하고까지 구단 앞에 몰려와서 트레이드를 취소해달라는 시위를 벌였다. 취미 생활에 불과한 야구를 위해 생계를 하루 포기하고, 연차를 내고 야구장으로 모여든 사람들을 권경민은 이해하지 못한다. 비합리적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시위하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던 권경민 사장은 장우석 차장에게 "야구라는게 취미잖아? 야구보는게 취미 아닌가? 취미에다가 생업을 걸어?"라고 묻는다. 누구보다 시위하는 사람들의 심리를 잘 아는 장우석 차장은 "사장님, 그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취미에다가 생업을 거는 그런 사람들이 있습니다."라고 대답한다.     


야구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볼 때는 드라마적 과장이 아니겠느냐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현실 야구에도 장우석 차장의 말처럼 돈도 되지 않는 ‘취미에 목숨 거는 사람들’은 생각보다 많다. 과거 열성팬으로 유명한 마산 아재, 사직 아재 등은 한낱 스포츠팀의 승패에 웃고 울다가 구단 버스에 불을 지르고, 경기장에 난입하는 난동을 피우기도 했었다. LG 트윈스가 암흑기에 빠졌을 때 팬들은 플랜카드를 내걸며 감독의 사퇴를 촉구하는 시위를 벌이기도 했었고, 한화 이글스가 암흑기에 빠졌을 때는 몇몇 팬들이 김성근 감독과 계약해달라는 1인 시위를 벌이기도 했었다. 두산베어스에는 김재호 선수에게 매료되어 시즌권을 끊고 절반 이상의 경기를 보러 날아오는 재호 엄마 오츠카 시게코씨가 있다. 어떤 대가도 바라지 않고 오로지 그들의 감정에 충실한 이들의 선택은 너무도 비합리적이고, 비이성적이다.


과연 이들의 선택이 비합리적일까? 경제학의 관점에서 봤을 때는 비합리적인 것이 맞다. 하지만 합리(理)라는 단어의 뜻을 살펴보면, 매우 합리적이라고 할 수 있다. 합리의 사전적 의미는 '이론이나 이치에 합당함'이라고 한다. 이성적인 판단이 기준이 되긴 하지만, 어떤 경제성이 합리성을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경제성 뿐만 아니라 이론이나, 이치가 충분하다면 합리적이라고 할 수 있다는 뜻이다. 어떤 경제적 이득이 없었지만, 이세영, 강두기. 드림즈의 팬 그리고 현실의 모든 야구팬들의 선택에는 합당한 이유가 있었기에 그들의 선택은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들에게 야구는 단순한 스포츠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내가 아무 것도 안했어도 국가대표팀이 경기에서 이기면 괜히 뿌듯한 것처럼 내가 응원하는 팀이 이기면 아무 이유 없이 뿌듯하기 때문이다. 부상 속에서도, 패배의 기운이 드리운 상태에서도 악착같이 치고 달려 기록을 만들어 내고 끝내 역전하는 선수들을 보며 용기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응원가를 잘 따라 부르지 못해도, 춤을 제대로 따라하지 못하더라도, 야구장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 괜찮다고, 고맙다고 말해주기 때문이다.


팬들의 마음은 과장을 조금 보태자면 자식이 먹는 모습만 봐도 배가 부르다 말하는 부모의 마음과 같다. 부모의 마음을 우리가 비합리적이라고, 비이성적이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부모가 자식을 위하는 마음 또한 이치에 합당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자본주의 사회에 살다보니 우리가 모든 합리를 돈으로만 환산해왔던 것은 아닐까? 는 생각이 들었다. 팬들의 마음뿐일까. 대규모 산불 소식에 한달음에 강원도로 달려가는 소방차, 코로나 퇴치를 위해 대구로 내려가는 의사와 간호사,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하기 위해 물에 뛰어드는 사람, 부모와 떨어져 울고 있는 아이를 달래주는 이웃, 세상에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합리가 무궁무진하다. 매번 경제학자들의 예측대로 시장이 흘러가지 않는 이유일 것이다.

지난 2019년 강원도 속초 화재 시, 전국에서 무러 820대의 소방차가 속초로 향했다. 많은 시민들도 구조에 참여하고 소방관들에게 식사를 제공하는 등 함께 했다.

돈으로 환산할 수 없다고 해서 자책하지 말자. 내가 지나치게 감성적이라고, 비합리적이라고 우울해하지도 말자. 남을 헤치려는 일만 아니라면 우리가 하는 모든 일들은 합리적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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