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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종운 Jun 20. 2021

나의 나약함을 인정하기로 했다.

타짜 3가 개봉한 덕분일까, 요즘 Iron Dragon(철용)이 대세로 떠올랐다. 타짜 1의 악역 곽철용의 ‘마포대교는 무너졌냐, 새x야’, ‘신사답게 행동해.’, ‘카메라도 안 되고... 약도 안 되고... 이 안에 배신자가 있다... 이게 내 결론이다.’와 같은 대사가 유행어로 밈으로 떠올랐다. 곽철용을 연기한 김응수 배우는 각종 광고를 찍으며 일명 역주행을 하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곽철용과 고니가 보름 후에 다시 붙었을 때 10억을 날린 후 곽철용이 ‘너 다음에 한 판 더 해.’라며 화투패를 접는 장면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지금도 10억은 큰돈이지만 타짜 1의 배경이 90년대 임을 감안하면 어마어마하게 큰돈인데, 10억을 날리고도 패배를 인정하고 싶지 않은 모습이 낯설지 않았기 때문이다.

타짜 1에서는 곽철용뿐만 아니라 그런 장면이 유독 많이 나온다. 오 장군은 일부러 노래를 부르는 고니에게 ‘너는 내가 잡는다.’라며 이를 갈고, 호구는 운칠기삼을 운운하며 30억 가까이 빌려가면서 고광렬과 그 일행에 계속 덤벼든다. 주인공인 고니조차도 처음 가구창고에서 박무성에게 털렸을 때는 누나의 위자료를 훔쳐 다시 덤벼들고, 짝귀에게 털렸을 때는 ‘돈 가져 올 테니까 한 판 더 해!’라며 어깃장을 놓기도 한다.


그냥 쿨 하게 패배를 인정하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처럼 보이지만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지 않는다. 패배를 인정하는 순간 큰 재앙이라도 발생하는 것 마냥 어떻게든 결과를 바꾸려고 아등바등한다. 도박에서 말하는 패가망신으로 가는 지름길인 셈이다.


사람들의 ‘질 수 없다.’는 마인드는 도박뿐만 아니라 일상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면 20대 초반에 흔히 벌어지는 ‘내가 더 잘 마셔.’와 같은 무의미한 주량 논쟁을 벌이다가 네 발로 기어 다니는 것이다. 당구장, 볼링장, PC방에서 벌어지는 온갖 내기들, 나아가 스포츠 경기장에서 벌어지는 모든 경기에 나서는 선수들 중 ‘내가 진다.’는 마인드를 가진 선수는 없다. 오로지 ‘내가 이길 거야.’라는 근자감과 자신감만 존재할 뿐이다.


군대에서도 행군을 할 때 나보다 체격이 작은 친구가 묵묵히 잘 가면 나도 질세라 힘든 티를 안 내려고 하고, 등산할 때도 먼저 쉬었다 가자는 말도 잘 꺼내지 않는 경우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나 같은 경우에는 고소공포증이 있어 바이킹조차 타지 못했지만 친구들과 함께 롯데월드에 갔다가 처음으로 타게 되었다. 다 같이 줄을 서게 되었는데 나 혼자 무섭다고 못 타겠다고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사실 못 타면 못 타는 것이지 그거 못 탄다고 무슨 일 나는 것 마냥 오기를 부렸고, 다행히 고소공포증을 극복하는 계기가 되었다. 바이킹은 물론 자이로드롭, 자이로스윙 등 모든 놀이기구를 섭렵하게 된 것이다.


남들에게 지고 싶지 않다는 욕망은 잘 활용하면 좋은 동기부여가 되기는 한다. 동서고금, 종목을 막론하고 라이벌은 늘 존재했고, 라이벌이 있을 때야말로 사람들은 선의의 경쟁을 하며 발전해나갔다. 임요환 와 홍진호, 택뱅리쌍이라 불리는 프로게이머들이 그랬고, 2003년 아시아 홈런 신기록을 세웠던 이승엽과 그를 맹렬히 추격하던 심정수가 그랬다. 국내 대학가에서는 연세대와 고려대의 라이벌전이 유명하다.

문제는 오기에 눈이 멀면 합리적인 판단이 불가능해지면서 그야말로 패가망신할 수 있다는 것이다. 도박을 하지 않는다고 해도 그에 준하는 심리적, 물리적 타격을 입을 수 있다.


한 달 전의 내가 딱 그랬다. 쓸데없이 오기를 부리다가 황천길 나루터까지 갔다 왔다. 한창 운동을 하던 시절 식단 조절과 웨이트를 병행하면서 지금보다 18kg 가벼운 시절이 있었다. 슬프게도 발목이 나가면서 약 두 달간 목발을 짚고 다니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운동과 멀어졌다. 그 뒤로도 운동을 할 만하면 다치고, 할 만하면 장기간 지방에 내려가고 하는 바람에 몸이 점점 불어나기 시작했다.


최근에 관리를 좀 해야겠다 싶어서 웨이트를 다시 시작했는데 예전 생각과 달리 도저히 몸이 따라주지 않았다. 옛날에는 바벨와 양쪽의 원판을 합쳐 100kg 가까운 무게도 들었던 거 같은데 지금은 20kg, 30kg의 무게도 컨트롤하지 못해 낑낑대고 있었다.


오랫동안 웨이트 트레이닝을 쉰만큼 천천히 무게에 적응하면서 운동을 해야 하는데 마음 한 구석에서는 조바심이 일었다. 게다가 나보다 체구도 작은 사람들이 나보다 훨씬 무거운 무게로 운동을 하는 것을 보면 왠지 모르게 부끄럽고, 패배감이 들었다. 내가 나약하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더 무거운 무게를 들 수밖에 없었다.


‘옛날에 100kg 들었으니까 이 정도쯤이야‘라고 생각하면서 일부러 무게를 좀 빠르게 올리면서 운동을 하기 시작했다. 두 달 정도 큰 문제없이 운동을 하던 중 사고가 발생했다. 60kg 무게로 벤치프레스 운동을 하던 중 바벨의 무게를 버티지 못한 것이다. ‘어어어...’ 하는 순간 바벨은 내 갈비뼈 근처까지 내려왔고 머릿속에는 언젠가 인터넷에서 본 ‘벤치 프레스 운동하다가 사망’ 기사가 떠오르며 ‘ㅈ댔다.’는 생각이 맴돌았다.

다행히 60kg라는 비교적 가벼운 무게 덕분에 바벨이 내 갈비뼈나 목 위로 수직 낙하 운동하는 불상사는 벌어지지 않았고, 내가 낑낑대는 사이 옆에서 운동하던 아저씨 한 분이 황급히 달려와 도와주셔서 크게 다치지는 않았다.


한 번 크게 다칠 뻔하고 나니 도박에 미쳐서 사채 쓰고, 집문서 팔고, 장기 팔고 하는 사람들과 내 모습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에도 내기라면 사족을 못 쓰는 성격이라 이길 때까지 달려드는 불나방 같은 성격이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친구들 사이의 소소한 재미 수준이었다. 헬스장에서 운동할 때처럼 정말 크게 다칠 수도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태어날 때부터 강한 사람도 없고, 아무리 강한 사람이라도 슬럼프나 부상 등의 이유로 항상 완벽한 모습을 보일 수도 없다. 최선의 결과를 내기 위해서는 본인의 현재 수준을 냉정하게 파악하고, 부족한 부분을 개선하려는 충분한 시간을 확보해야 하는 법이다.


객관적으로 자신의 상태를 평가하지 못하면 도박 빚으로 패가망신하는 것만큼이나 무서운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부상 이후 본인의 전성기를 되찾지 못하고 조기 은퇴하는 많은 스포츠 선수들이 대표적인 경우다.

부상을 입거나 통증을 느꼈을 경우 정밀 검진과 충분한 휴식을 통해 몸을 회복한 후 운동을 해야 한다. 통증이 있는 경우에도 무리해서 운동을 할 경우 부상이 악화되거나 새로운 부상을 안게 되기 때문이다. 선수 입장에서야 당장 경기를 뛸 수 없으니 조급한 마음도 들고 또 과거에 본인이 기록했던 뛰어난 성과들이 있으니 오기를 부리게 된다. 그러다 많은 선수들의 부상이 악화되었고, 그들 중 적지 않은 수가 조기 은퇴를 해야만 했다.


두산 베어스에서 은퇴한 배영수는 삼성 라이온즈 시절인 2006년 팔꿈치 인대 접합 수술인 토미 존 서저리를 받았다. 그의 인대는 거의 다 끊어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처참한 수준으로 토미 존 서저리 환자 중 가장 심각했다고 한다. 아마 통증을 처음 느꼈을 때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수술을 받았다면 수술 후의 2,3년의 공백도 없었을 것이다. 배영수뿐만 아니라 많은 타자, 투수들이 부상 이후 조급한 심정에서 충분히 회복하지 못한 상태로 복귀를 시도했다가 재능을 꽃피우지 못하고 은퇴해야만 했다.


나 역시 내 스스로의 가치를 증명해야 한다는 조바심을 갖고 있었다. ‘한심하다.’, ‘쓸데없다.’와 같이 효용을 추구하는 아버지의 영향 때문인지 숫자로 모든 것을 말하는 경영학을 전공했기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내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야만 한다고 믿었고, 나약함을 드러내는 것은 내 자신의 가치를 깎아내리는 것이라고 믿었다.


인정하기는 싫지만 게으르고, 섬세하지 못하고, 감정적인 데다가 대중감이 떨어지는 내 자신의 나약함을 솔직하게 인정하기로 했다. 그렇지 않다고 애써 코스프레해왔지만 결국 바뀌는 것은 없었고 내 자신의 마음만 갉아먹고 있었기 때문이다. 안 되는 것을 뻔히 알면서 무리하게 달려들다 집문서를 날릴 수도, 무리해서 운동하다가 몸을 다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부끄러운 고백을 하나 더 하자면, 이 글은 2019년 11월 11일에 썼던 글이다. 조급하지 않겠다고, 여유를 갖겠노라고, 나약함을 인정하겠다고 말했지만 왠지 모르게 더 게을러진 느낌이다. 나약함을 인정하되, 나약함을 핑계로 게으름을 피우지 않고 내가 할 수 있는 속도로 다시 걸어야겠다는 생각에 다시 한번 펼쳐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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