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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종운 Jun 28. 2021

오해받고 살아가는 나에게 필요했던 말

  대학교 신입생 때 가장 친한 친구 K에게 소개팅을 주선해 준 적 있었다. K가 나를 볼 때마다 소개팅, 소개팅 노래를 부르는 찰나, 동기이자 과외, 소개팅, 미팅 등 온갖 소개의 달인이었던 마담 M이라고 통하던 동기 누나 역시 소개팅 할 남자를 구하고 있었던 것이다.

  마담 M에게서 연락처를 받아서 K에게 전달해주고 일주일쯤 지났을까, K에게 연락이 왔다. 

    

K : 나랑 장난하냐?

나 : 뭔 소리야?

K : 무슨 또x이 같은 애를 소개해줬어.     


  흥분한 K를 진정시키고 이야기를 들어보니, 소개팅하기로 한 여자 A가 문자 몇 번을 하다가 갑자기 ‘전 학교생활 얌전히 잘하고 싶어요, 죄송해요.’라고 만나기도 전에 거절했다는 것이다. 뭔가 일반적으로 거절하는 멘트 치고는 뉘앙스가 조금 이상해서 나도 찜찜했다. K에게는 알겠다고 하고 마담 M에게 상황을 물어보았다.     


M : 니 친구 문신했니?

나 : ?? 얼마 전에 사우나도 같이 갔다 왔는데 문신 없었는데...

M : 하...     


  누나에게 상황을 들어보니 차마 웃지 못할 슬픈 이야기였다. K와 A가 소개팅을 하기로 하고 연락을 주고받다가 자연스럽게 ‘싸이월드 하냐?’는 질문이 나왔었다고 한다.-요즘 말로 하면 ‘인스타 하세요?’ 쯤 되겠다.- 내 친구가 보내준 싸이월드에 들어갔던 A가 본 대문 사진은 문신을 하고 있는 남자가 담배 피우고 있는 사진이었고, 하필 내 친구 K는 체대를 다니고 있었다. 


  대문 사진은 그 당시 타투에 꽂혔던 K가 인터넷에서 마음에 드는 사진으로 바꿔 놓은 것이었는데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무구한 20살 새내기 여학생이 보기에 뭔가 양아치스러운 느낌이 들 수밖에 없는 사진이었다.


  결국 K를 불량스러운 체대생으로 오해한 A는 그렇게 ‘학교생활에 집중하겠다.’며 만나지도 않고 K를 걷어찼고 K는 그렇게 내가 주선한 처음이자 마지막 소개팅을 날려버렸다. 물론 그 뒤로 K는 알아서 연애를 잘하고 있지만 그때의 해프닝은 10년째 술자리의 안주거리로 남아 있다.


  술자리에서 얘기나 나올 때마다 K는 A가 이상한 거라고 누가 봐도 연예인 사진이라고, 자기는 그냥 순수하게 타투에 관심 있었을 뿐이라고 항변하지만 우리는 그때마다 개소리하지 말라며 가볍게 무시했다.


  K에게는 멍멍이 소리하지 말라고 무시하긴 했지만, 사실 오해받는 일은 썩 유쾌한 일은 아니다. 특히나 내 의도와 전혀 상관없이 범죄자로 오해받는다거나 명백히 상대방의 잘못인데 정황상 내 잘못인 것처럼 몰린다면 정말 억울할 것이다. 그게 아니더라도 오해 때문에 내 진심이나 의도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경우도 제법 많다.


  나 같은 경우는 범죄자 취급은 아니지만 사람들이 내 옷차림이나 말투만 보고 적잖은 오해를 받았었다. 예를 들면 커다란 백팩과 패션 테러리스트의 선봉에 선 옷차림을 보고는 공대생이라고 오해하기도 했고, 조목조목 따지고 드는 성격을 보고는 회계사나 변호사 같은 거 하면 잘할 거 같다고 오해하기도 했다. 심지어는 피도 눈물도 없는 이성적인 사람이라는 이야기까지 들은 적도 있었고, 볼링동아리 회장도 하고, 취미로 여행을 다닌다고 썼음에도 영업관리직을 뽑는 면접에서는 ‘정적인 사람이시네요?’라는 평가와 함께 광탈하기도 했다.


  그때마다 나 역시 K와 다를 바 없었다. 그 사람들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왜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내고 있는 평범하지만 성질 급한 경영학과생을 공대생이라든가 회계사, 변호사로 오해하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남들이 뭐라 하든지 상관없다. 지들이 개x끼라고 욕한다고 내가 개x끼가 아닌데 개x끼가 되나? 백 날 욕해봐라 ,ㅂ신들.’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만 열심히 살면 되고, 그럼 자연스럽게 알아주겠지.’고 생각했었기 때문이다.


  결국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고, 취업에 연전연패하면서 도대체 뭐가 문젤까? 하는 생각에 제라스에서 스피치 수업을 듣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민호쌤이 나한테 물었다. "혹시 화났니?" "아뇨 아뇨 화 안 났습니다."라고 대답했지만 속으로는 ‘아 또 나한테만 이상한 이야길 하시네...’라고 생각했었다.


  집에서 페이스북에 올라온 영상을 보니까 그제야 알 수 있었다. 내가 봐도 내 표정은 화가 나있었다. 마치 결의에 찬 눈빛이랄까, 어디 한 번 두고 보자 하는 눈빛으로 째려보고 있었다.

스피치 학원이라서 수업 내용을 녹화해서 SNS에 올리기도 했는데 내가 봐도 정말 화가 나 있었다.

  ‘뭐지?’


  도대체 뭐가 문제지? 난 그럴 의도가 없었는데... 머릿속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마케팅 쪽 취업을 위해 마케팅 기획서 실무 수업을 들으면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었다. 기획흥신소와 컨셉흥신소의 저자 서대웅 소장님은 강의에서 좋은 브랜드란 ‘내가 아는 나’와 ‘내가 보여주고 싶은 나’ 그리고 ‘남들이 보는 나’가 일치하는 브랜드라고 말하셨다. 기업에서 하는 브랜딩뿐만 아니라 개인의 취업에 활용하는 퍼스널 브랜딩에도 똑같이 적용된다는 것이었다.


  생각해보면 사람들은 스스로는 자신의 얼굴을 한 번도 보지 못하고 살아간다. 나처럼 페이스북 영상을 통해 보거나 누군가가 찍어준 사진 혹은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 외에는 내가 어떤 표정인지 알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이빨에 고춧가루가 끼인 줄도 모르고 돌아다니다가 민망했던 경험도 있고, 친구 등에 바보라고 쪽지를 붙여 놀려 먹을 수 있었다. 내 모습이 어떤 모습인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그동안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든, 자기소개서를 쓸 때든 나는 항상 사람들하고 잘 어울리고, 잘 웃는 사람이라고 말해 왔었다. 나를 가장 잘 아는 건 나니까, 자신 있게 ‘나 이런 사람이야!’라고 외치고 다녔다. 막상 사진 속에 비친 나는 늘 엄격, 근엄, 진지한 모습이었다. 나조차 ‘이게 사람들하고 잘 어울리는 사람의 모습이라고?’ 놀랄 만큼 다른 모습이었다. 그제야 사람들이 ‘공대생 같다’, ‘변호사, 회계사가 어울릴 거 같다’, ‘피도 눈물도 없을 거 같다’고 했던 말들이 이해가 되었다.

어느 결혼식에서 찍혔던 두 장의 사진 속의 내 모습

   내가 생각하는 내 모습과 남들이 보는 내 모습에 차이가 발생하는 이유에 대해 변명을 해보자면, 역으로 내 스스로 나를 너무 잘 알았기 때문이었다. 잘 웃고, 감성적인 성격으로 활달하게 사람들하고 어울리지만 그만큼 덜렁댄다거나, 충동적이라는 단점이 있었고, 진지해야 하는 순간에도 가볍게 보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 모습을 감추기 위해 의식적으로 딱딱한 표정, 딱딱한 말투로 일관했고, 이성적으로 행동하려고 노력했다. 남들이 보는 내 모습은, 내가 되고 싶었던 내 모습이었으니 어떻게 보면 절반은 성공한 셈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무 교육답게 서대웅 소장님은 수강생들에게 각자 과제를 내주셨는데 본인이 담당하는 브랜드의 실제 모습과 강조하고 싶은 부분, 소비자들이 느끼는 브랜드 이미지에 대해서 분석하는 과제였다. 나 같은 경우는 취업준비생이기 때문에 내 스스로의 이미지에 대해서 분석하는 것이 과제였다.


  마침 제라스는 나를 잘 아는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이 많은 공간이었다. 스피치와 영어 과제를 하면서 수십 개의 영상을 찍어서 내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도 주어졌다. 기회가 될 때마다 내가 어떤 사람처럼 보이는지 사람들에게 물어봤고, 내 영상을 돌려보면서 어떻게 비치는지 객관적으로 돌아보려고 노력했다. 그 덕분에 2018년  3월, 대기업은 아니지만 내가 정말 가고 싶었던 마케팅 대행사에 취업할 수 있었다.


  취업을 준비하면서 느낀 것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아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사실이었다. 소크라테스가 말한 것처럼 나 자신을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잘하는지, 또 무엇을 싫어하는지, 무엇을 못하는지 알아야만 내게 맞는 직업을 찾을 수 있고, 스트레스를 덜 받을 수 있다. 


  최근 들어 ‘당신은 옳다.’라든가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와 같은 책이 유행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일 것이다. 자기소개서에서도 남들하고 똑같은 이야기를 쓰지 말고 차별화를 하기 위해 나만의 강점과 스토리를 녹여내라고 강조하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개성을 뜻하는 Personality의 어원인 라틴어 Persona의 뜻은 ‘가면’이라는 점이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연극에 출연하는 배우들의 감정을 관객들에게 더 잘 전달하기 위해서 가면을 썼다고 한다. 그 가면을 통해 관객들은 배우들을 구분할 수 있었고, 그게 여러 사람들 중에서 한 명 한 명의 개인을 나타내는 Personality로 발전했다는 것이다. 쉽게 말하자면 가면(남들이 보는 내 모습)을 통해 나라는 사람의 개성이 결정된다고 할 수 있다. 매번 외면보다 내면을 채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면서도 우리가 옷차림, 헤어스타일, 명품, 고급차, 말투 등 겉으로 보이는 것에 신경을 안 쓸 수는 없는 이유다.

   자신을 아는 것만큼이나 내가 어떻게 비치는지 아는 것도 중요한 것이다. 우리가 무인도에서 살아가는 것도 아니고 매번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텐데 그때마다 ‘나 이런 사람이야’라고 구구절절 설명할 수는 없는 일이니까. 그때마다 오해라고 변명하는 것도 지치는 일이니까.


  그래서 ‘나 이런 사람이야’라고 외치는 대신 ‘나 어떤 사람이야?’라고 되물어보기로 했다. 주변 사람들의 평가에 귀를 기울여보고 내 자신을 돌아보기로 했다. 내 모습은 나보다 남들이 더 잘 아는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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