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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종운 Oct 10. 2021

취향에 솔직해져야 하는 이유

두려움을 없애는 글쓰기(부제 : 사진 한 장으로 시작하는 글쓰기)

  지금까지의 내용을 정리하면


1. 글쓰기는 취향으로 시작한다. 

2. 취향은 내가 찍은 사진, 좋아요를 누른 사진을 통해 알 수 있다.     


  자유 주제로 글을 쓰는 것보다는 내가 찍은 사진을 가지고 글을 쓰는 일은 어렵지 않다.(물론 아직도 막막하게 느껴질 수 있겠지만 뒤쪽에서 디테일하게 다룰 테니까 걱정 마시라.) 문제는 과연 내 취향으로 글을 쓰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 하는 것이다. 앞서도 말했지만, 우리 대부분은 내 취향은 중요하지 않은 사회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내가 좋아하는 것보다는 남들이 좋아하는 것, 트렌드에 관심을 좀 더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라는 고민을 할 수밖에 없다.


  나 또한 비슷한 고민을 누구보다 많이 했었다. 역사, 볼링, 야구, 등산, 바둑 같은 취미들에  대해 얘기할 때마다 핀잔만 들을 뿐 내 주변에서는 아무도 공감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글쓰기 스터디를 할 때도 상황은 비슷했는데 내 글은 난해하고, 어렵다는 평이 많아 댓글조차 달리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무플보다 악플이 낫다는 말처럼 무플이 이어지니 자신감이 더 떨어지고, 글을 쓸 의욕이 사라졌다. 취향이 가장 나를 나답게 만든다는 말은 아름다운 말이지만 취향은 취향일 뿐, 돈을 버는 것, 글을 쓰는 것에는 큰 도움이 안 되는 건가? 하는 생각에 우울함을 느끼기도 했었다.


  꾸역꾸역 글을 쓰던 중 우연히 유튜브에서 재미있는 영상을 발견했다. 베토벤바이러스 멜로디에 맞춰 펌프를 추는 영상이었다. 해당 영상은 조회수가 135만이 넘었으니 꽤나 반응이 나쁘지 않은 영상이었다. 펌프 영상을 전문적으로 올리는 유튜버인 듯 그 채널에는 베토벤 바이러스 외에도 다양한 펌프 영상들이 있었고 해당 채널의 구독자 수는 2만 2천 명이었다. 그 유튜버가 펌프 영상으로 얼마나 큰돈을 버는진 정확히 모르겠으나 오락실에서 돈을 쓰는 취미 활동에 불과했던 펌프로 돈을 번다는 것 자체가 신기했다.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공부 외의 모든 것은 ‘쓸데없는 것’으로 치부하는 아버지 밑에서 자라 경영학과에서 8년 간 돈을 벌 수 있냐 없냐는 논쟁만 거듭하던 나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뭐든 ‘고인 물’ 수준으로 열심히 하면 돈을 벌 수 있는 건가? 싶으면서도 공부가 아니라 쓸모없어 보이는 일이어도 얼마든지 돈을 벌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괜히 설렜다.

  펌프 영상을 보고 나니 생각이 좀 바뀌었다. 당장 내 주변에 친구들은 나와 취향이 달라서 ‘노잼’이라고 나를 갈굴지 모르지만, 유튜브나 페이스북 등의 SNS를 보면 생각보다 나와 같은 취향을 가진 사람들이 세상에는 많다. 그들을 쉽게 만날 수 없다는 게 함정이지만, 요즘 같은 언택트 시대에는 또 여러 가지 방법이 있는 법이니까. 내 취향대로 글을 써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꼭 펌프처럼 뭔가 대단한-혹은 대단해 보이는- 결과물이 있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펌프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취향 한 가지쯤은 갖고 있다. 취향이란 단어가 어렵다면, ‘좋아하는 것’이라고 해두자. 그것이 음식이든, 스포츠든, 책이든, 기타 등등 취미 활동이든 뭐든 간에, 좋아하는 것 하나쯤은 있다. 김민철 작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마음은 매일 흔들리며 어딘가에 닿고, 그것에 지갑을 열거나 시간을 쏟는’ 뭐 그런 것들 말이다. 슬프게도 지갑을 열거나 시간을 쏟는다고 해서 누구나 원하는 결과를 얻게 되지는 않는다. 예고 입시 전문 화실을 몇 년씩 다니고도 똥 손을 벗어나지 못하는 나처럼.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을 때면 지갑을 연만큼, 시간을 쏟은 만큼, 마음이 아프고, 우울과 절망, 후회가 우리를 감싸고는 한다.     


  다행히 항상 결과가 나빴던 것은 아니고, 결과가 크게 상관없는 경우도 많았다. 그런 경우에는 내가 마음 편하게 좋아하고, 시간을 쏟을 수 있었다. 이른바 ‘내 취향’이 된 것이다. 김민철 작가의 말마따나 ‘근사하지 않아도, 우아하지 않아도, 대단하지 않아도, 완벽하지 않아도’ 바로 그 취향이 오늘, 가장 나다운 하루를 살게 했으니까.     


  생각에 확신을 더해준 건 ‘짧게 잘 쓰는 법’이라는 책의 구절이었다. 저자는 글을 시작하는 첫 문장에 대해서 ‘관심 가는 문장. 잠재력으로 인해 가능성이 보이는 문장을 찾아보라’고 말한다. 작가들이 말하는 ‘소위 독자를 사로잡는 첫 문장’이 아니라 독자들이 작가인 ‘나’의 관심사를 느낄 수 있으면 된다고 말한다. 제아무리 김태희가 지나가고, 장동건이 지나가도 내가 좋아하지 않으면 달려가서 사진을 찍지 않듯, 아무리 남들이 재밌는 글이라고 해도 내가 공감하지 않으면 페이지를 넘기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남들과 똑같을 필요가 없다. 영화 기생충으로 아카데미에서 감독상을 받은 봉준호 감독도 수상소감에서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라는 마틴 스콜세이지 감독의 말을 인용하지 않았던가. 남들과 조금 달라도, 내가 좋아하는 것이 선명하게 드러난다면 누군가는 분명 공감해줄 것이다.   


    사실 사람들의 평가를 떠나서 내가 관심 가는 분야에 대해서 쓰는 것만큼 쉽고 재미있는 글은 없다. 당장 말할 때만 해도, 좋아하는 음식, 좋아하는 예능 프로그램, 좋아하는 야구단에 대해서 얘기하면 시간 가는 줄 모르지만, 야구팬에게 축구에 대해서 얘기하라고 한다면 할 얘기가 많지 않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백지를 채우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이라면 두렵고 어색하겠지만 일단 나의 취향, 나의 관심사에 대해서 써 내려가다 보면 어느새 다음 장으로 이어져 있을 것이다. 나의 취향에 대해서 글을 쓰는 과정은 전혀 고통스럽지 않다. 오히려 신난다. 읽는 사람도 저자의 취향이 ‘아 찐이구나’라고 느끼면 훨씬 흥미롭게 읽을 수밖에 없다.     


  당연한 얘기지만 앞에서 소개한 펌프 유튜버 같은 사람처럼, 한 분야를 아주 깊게 파고드는 고인물이 되란 얘기는 아니다. 다만 글쓰기를 통해, 내가 찍은 사진을 통해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만 확실하게 알아도 충분히 나만의 콘텐츠를 만들 수 있다. 최근에는 유튜브뿐만 아니라 클래스 101이나, 탈잉 등 ‘내 취향’을 가르치면서 돈을 벌 수 있는 플랫폼도 넘쳐 난다.     

  설령 내가 좋아하는 일로 돈을 벌지 못하면 어떠한가. 트레바리니, 크리에이터 클럽이니 비슷한 취향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나이 차이를 떠나서, 직업을 떠나서, 지역을 떠나서 밤새 이야기 꽃을 피울 수 있는 기회도 무궁무진하다. 누군가와 함께 같은 취향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며 나의 우울함을 달래고, 무료한 일상에 신선한 자극이 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꽤 행복한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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