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을 없애는 글쓰기(부제 : 사진 한 장으로 시작하는 글쓰기)
글쓰기가 두려운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특별한 소재나 주제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3년 동안 400편이 넘는 글을 쓴 나에게는 해당하지 않는 얘기였지만, 한편으로는 ‘남들은 쓸 말이 없다는데 나는 어떻게 항상 소재와 주제를 넘쳐 흐르지?’라는 의문이 생겼다.
스터디하는 친구들로부터 도대체 어떻게 그렇게 글을 많이 쓰냐? 라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뭔가 명쾌한 답을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단순히 ‘책을 많이 읽어서’라고 하지만 원론적인 얘기고 당장 글을 써야 하는 사람들, 글을 쓰는 것도,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을 얘기니까.
작년 여름 트레바리 ‘사진을 읽다’ 모임에서 권혁재 작가님의 핸드폰 사진관을 읽고, 답을 찾았다. 핸드폰 사진관은 DSLR이 아닌 핸드폰으로도 사진을 잘 찍을 수 있는 권혁재 작가님만의 노하우를 정리해놓은 책인데, 작가님이 소개한 사진을 잘 찍는 방법과 글을 잘 쓰는 방법이 서로 비슷했던 것이다.
여러 가지 팁이 있지만 대표적인 것이 ‘오래보고 천천히 찍기’와 ‘다양한 각도로 바라보기’다. 오래보고 천천히 찍기 챕터에서 권혁재 작가님은 아름다운 매미의 사진을 보여주며 한발 물러서 오랫동안 보다 보면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인다고 말했다. 징그러운 외모와 꿈틀거리는 촉감이 영 별로라 곤충을 좋아하지 않아서 늘 무심히 지나치곤 했는데 사진 속의 매미는 참으로 아름다운 날개를 갖고 있었다. 옛날 소설에 얇고 고운 옷을 보면 매미 날개 같다고 하는 말이 이해가 되는 순간이었다. 평소에 나무에 붙어 우는 매미는 우렁찬 울음소리만 들릴 뿐 쉽게 눈에 띄지 않는다. 우렁찬 소리가 듣기 싫어 그냥 그 자리를 피하거나 괜히 나무를 한 번 꽝 찰 뿐, 매미를 찾아보겠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보지 못했던 나는 매미의 아름다운 모습을 한 번도 볼 수 없었다. 지난 여름 수많은 매미들을 그렇게 흘려보냈다.
매미뿐만이 아니다. 내가 무심히 지나쳤던 모든 순간들이 좋은 글감이 될 수 있었지만 조급함에 흘려보냈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심히 지켜보고 나서야 아버지의 야윈 팔목과 무거운 것을 들기 힘들어 손수레를 끌고 시장에 다녀오시는 어머니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다양한 각도로 바라보기’ 챕터에서는 똑같은 물병을 다른 각도에서 찍은 사진을 소개하며 카메라의 앵글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권혁재 작가님은 사진기자 초년생일 때부터 눈높이에 따라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지니 다양한 관점에서 사진을 찍어야한다고 배웠다고 한다. 셀카를 좀 찍어봤다는 사람들이라면 흔히 말하는 얼짱 각도처럼. 위에서 내려다보고 찍으면 조그맣게 나오고, 밑에서 올려다보고 찍으면 거대하게 나오기 때문이다.
다양한 관점은 글쓰기 강의에서 가장 강조하는 기법이다. 모두가 할 수 있는 뻔한 얘기보다 남들이 생각하지 못한 새로운 관점이 독자들의 흥미를 끌 수 있기 때문이다. 다양한 관점에서 상황을 바라보는 연습은 독자들의 반응은 논외로 치더라도 무심히 흘려보낼 수 있는 일상에서 글감을 찾아낼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그 외에도 글쓰기에 접목시킬 수 있는 사진을 잘 찍는 팁들을 보면서 사진 한 장으로 글을 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보면 방법론이 비슷할 수밖에 없었다. 형태는 다를지언정 사진과 글쓰기 사이에는 3가지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다.
이미지로 표현하느냐, 문자로 표현하느냐의 차이만 있을 뿐 사진작가도, 글을 쓰는 작가도 나름의 의도를 가지고 사진을 찍고, 글을 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주제’다. 다만 사진은 소재가 직관적으로 눈에 보이지만 글에는 소재가 한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창작자의 의도를 표현하는 모든 행위를 예술이라고 할 때 단언컨대 사진과 글은 일반인들이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분야다. 예를 들어 미술은 색감에 대한 이해와 센스가 필요하고, 안무와 같은 행위 예술을 할 때는 일정한 운동 신경이 필요하며, 노래와 같은 음악에는 음정과 박자, 리듬에 대한 센스가 필요하다.
글쓰기는 다르다. 읽고 쓸 줄 안다면 일정 수준의 글은 누구나 쉽게 쓸 수 있다. 사진도 마찬가지다. 디지털 카메라와 스마트폰 카메라가 대중화되면서 손가락만 있으면 초등학생도 사진을 찍을 수 있다. 당연한 얘기지만 글을 잘 쓰기 위해서도 여타 장르와 마찬가지로 어휘력이나 언어적 센스가 필요하고, 사진 역시도 전업 사진작가로 이름을 날린 사람들처럼 사진을 잘 찍기 위해서는 사진이 찍히는 원리와 빛의 특성을 이해해야 한다. 다만, 다른 장르에 비해 쉽게 시작할 수 있는 만큼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장르라는 뜻이다. 예를 들어 일반인이 피카소의 작품을 보고 평가하는 것과 퓰리처상 수상작 사진을 평가하는 것을 비교해보자. 퓰리처상 사진이 훨씬 직관적으로 눈에 들어올 것이다.
우리는 초등학생 때부터 글쓰기의 기본 요소가 육하원칙이라고 배웠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무엇을, 왜, 누가 했는지가 갖춰져야 한다는 것이다. 주로 기사 작성할 때 강조되다보니 육하원칙을 보도 기사를 작성할 때만 필요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육하원칙의 유래는 고대 그리스의 수사학자 헤르마고라스가 제안한 7가지 논리적 수사 방법이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육하원칙은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영국의 작가 조지프 키플링의 ‘코끼리 아이’라는 동화에서 처음 언급된 것이다. 기사건, 동화건, 모든 종류의 글쓰기에서 육하원칙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이다.
사진에는 육하원칙이 기본적으로 녹아 있다. 누가 = 사진을 찍은 사람, 언제 = 사진을 찍은 순간, 어디서 = 사진을 찍은 장소, 무엇 = 사진을 찍은 피사체, 어떻게 = 사진을 찍은 방법, 왜 = 사진을 찍은 이유기 때문이다. 이미지로 표현된 것을 텍스트로 정리만 하면 사진 한 장으로도 얼마든지 글을 쓸 수 있다. 심지어 그 사진이 내가 찍고, 내가 좋아요를 누른, 내 취향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진이라면 글쓰기가 어려울 이유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