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종운 Oct 16. 2021

육하원칙으로 작법 이론 따라잡기_사진에 육하원칙 더하기

두려움을 없애는 글쓰기(부제 : 사진 한 장으로 시작하는 글쓰기)

   사진 한 장으로 글을 쓸 수 있다고 말했지만, 나도 처음부터 사진을 활용해서 글을 쓴 것은 아니었다. 여러 가지 사건들이 있었지만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모든 요일의 여행에서 아무리 노력해도 자신이 본 아침의 아름다운 풍경을 글로 표현할 수 없어 사진을 덧붙인다던 김민철 작가의 말마따나 내 필력이 형편없었기 때문이다. 


  고등학생 때 입시 대비용 논술 공부를 제외하고 제대로 글쓰기를 배워본 적이 없어서였을까. 꾸준히 글을 썼지만, 교내 백일장이니 공모전 등에서도 상 탄 적이 한 번도 없을 만큼 글을 잘 쓴다는 평가를 받아본 적이 없다. 대학 시절 들었던 미디어 글쓰기 수업에서 B+을 받았는데 딱 그 정도, 평균보다는 조금 높은 수준이었다.


  인정하고 싶진 않았지만, 어차피 내 필력으로는 작가로서 밥을 벌어먹고살 수 없다고 생각했기에 미련 없이 한동안 글을 쓰는 대신 취업 준비하는 데 집중했다. 문제는 자기소개서였다. 적어도 평균보다는 잘 쓴다는 말을 들었고, 스스로도 이문열 같은 대 작가가 될 수는 없어도 자기소개서가 통과하지 못할 만큼 못 쓴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는데 자기소개서에서 광탈의 아픔을 맛봐야 했다.


  어쩔 수 없었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스피치 학원을 다니기 시작했고, 글쓰기 스터디를 시작했다. 마지막 자존심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글쓰기를 정식으로 배우지는 않았다. 대신 어떻게 하면 가독성이 좋은 글을 쓸 수 있을까, 더 많은 사람들이 좋아요를 누르고 댓글을 다는 글을 쓸 수 있을까 고민을 했다.



  함께 스터디하는 사람들, 인터넷 블로그, 커뮤니티의 많은 글들을 보면서 나름 분석한 결과 흔히 말하는 파워블로거들이 리뷰에서 사진을 잔뜩 박아놓고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이 가장 반응이 높은 것을 보면서 사진을 가지고 글을 쓰면 되겠다 싶었다. 다행히 DSLR을 사고, 망원렌즈, 광각렌즈를 살 만큼 나름대로 사진에도 관심이 있었기에 생각보다 사진과 함께 글을 쓰는 방식에 익숙해질 수 있었다.


  가장 결정적인 순간은 이그나이트 청춘이라는 스피치 무대였다. 스피치 학원에서 외부 사람들 앞에서 발표할 수 있는 스피치 기회가 있다고 소개해주었고, 우리 학원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도전했다. 무슨 말을 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지원 타이밍은 놓쳤지만, 뒤늦게 떠오른 아이디어로 스피치를 준비했었다. 독특한 것은 이그나이트 청춘의 발표 방식이었다. ‘페차쿠차’라고 해서 20장의 슬라이드를 준비하고 15초마다 각 슬라이드가 자동으로 넘어가게 구성한 발표자료에 맞춰 총 5분 동안 스피치 하는 것이었다. 단순히 내용만 좋아서는 불가능하고, 내용에 어울리는 사진으로 발표자료를 구성하는 것도 중요했다.


  운이 좋게도 사진을 좋아할 뿐만 아니라 친구들끼리 주고받던 짤방에도 관심이 많았던 터라 주제를 정하고 나니 발표자료를 구성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 처음 해보는 방식이라 슬라이드마다 15초에 맞춰 말하는 것이 매끄럽지는 않았지만 내가 넣은 수많은 짤들을 본 사람들이 발표가 끝난 후 ‘별도로 이미지를 찾는 방법이 있냐?’고 물을 정도로 이미지에 대한 반응은 좋았다.


  처음에는 부족한 필력을 이미지로 보충하자는 취지에서 시작했고, 이그나이트에서는 룰 때문에 조금 더 신경 써서 사진을 활용해서 대본을 썼다면, 드라마와 소설 작법 수업을 들으면서 사진 한 장으로 글을 쓸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꾸준히 글을 쓴 덕분인지 입사를 하게 되었는데, 자의 반 타의 반으로 8개월 만에 퇴사하고 작가의 길을 본격적으로 걷기로 결심했다. 다시 처음부터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소설 작법 수업과 드라마 작법 수업을 듣게 되었는데 신기하게도 한 편의 글을 쓰는 과정과 사진 한 장을 찍는 과정에는 많은 공통점이 있었다.


  소설 작법은 크게 발상(모티브) -> 구상 -> 구성 -> 집필 -> 퇴고의 단계를 거치고, 드라마 작법은 크게 모티브 -> 소재 -> 주제 -> 캐릭터 -> 스토리 -> 구성 -> 집필(퇴고)의 퇴고 과정을 거친다고 한다.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사진도 피사체를 찍어야겠다는 ‘모티브’를 얻고, 피사체(소재)를 통해 작가의 의도(주제)를 표현하는 단계를 거친다. 사진의 경우에는 소설이나 드라마와 달리 인물을 안 찍을 수도 있지만, 인물이 피사체가 되는 경우에는 ‘캐릭터’를 표현하기 위한 고민이 필요하다. 특히 광고용 사진 같은 경우에는 주제에 걸맞게 소품을 추가한다거나, 배경을 바꾼다거나 하는 ‘구성’ 작업을 거친다. 형태는 다르지만, 드라마와 소설, 사진이 탄생하는 과정은 꽤나 비슷했다.


  물론 모든 사람이 드라마나 소설을 쓸 일은 없다. 하지만 에세이든, 보고서든, 자기소개서든 모든 글에는 주제와 소재가 필요하다. 계속 말하지만, 주제와 소재는 글쓰기를 어려워하는 많은 사람들의 가장 큰 고민거리다. 무슨 말(주제)을 해야 할까? 무엇(소재)에 대해 써야 할까?  주제와 소재가 없어 고민인 사람들에게 이미 주제와 소재, 심지어 캐릭터와 스토리까지 갖춘 사진은 아주 훌륭한 글감이 될 수 있다.


  당연한 얘기지만 글쓰기가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이라면 주제니, 소재니, 모티브니 하는 말들조차 낯설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초등학생도 아는 육하원칙으로 이 모든 작법 단계를 정리할 수 있다.     

   사진을 찍는 과정의 첫 단계는 ‘찍고 싶다’ 혹은 ‘찍어야겠다’는 생각이 들 ‘때’라고 생각한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순간의 힘에서 말하는 결정적인 순간, 우리는 카메라를 들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에서 유난히 도드라지게 새겨진 의미심장한 경험의 순간.'말이다. 예를 들어, 결혼식이라는 시기, 졸업식이라는 시기, 친구들과 오랜만에 만났을 때, 멋진 곳에 놀러 갔을 때 우리는 카메라를 든다. 그다음에 어떤 포즈를 취할지, 어디를 배경으로 삼을지, 어떤 옷을 입을지 정한다.

  글을 쓴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전업으로 글을 쓰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 아닌 다음에야 무엇인가 내 삶에서 특별하게 느껴지는 순간, 우리는 펜을 든다.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서든, 감정과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서든.

  사진 속의 피사체가 문자 그대로 소재다. 당신이 사진을 찍었다면, 사진을 골랐다면 당신은 이미 글쓰기의 소재라는 큰 문제를 해결한 셈이다.       

  사람마다 해석의 차이는 있겠지만, 나는 사진에서 전해지는 감정 혹은 사진에 대한 생각 즉, ‘어떤 감정을 느꼈는가?’(How did I feel)와 ‘어떤 생각이 들었는가?(What did I think)를 주제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개를 찍은 사진이 있다고 할 때 사람을 문 개의 사진이라면 두려움, 공포심이 주제가 될 수 있고, 시각장애인 안내견의 사진이라면 든든함이 주제가 될 수 있고, 아이와 함께 낮잠을 즐기는 강아지의 사진이라면 평화로움, 안락함 등이 주제가 될 수 있다. 사진을 보고 느낀 감정이나 생각을 되새겨본다면 당신은 주제라는 또 다른 글쓰기의 문제를 해결했다.

  보통 전문적으로 풍경 사진을 찍는 사진작가들이 아니라면 사진 속에 인물이 없다고 하더라도 어떤 식으로든 인물이 개입되어 있기 마련이다. 그 물건을 준 사람이든, 받은 사람이든, 혹은 판 사람이든, 버린 사람이든, 만든 사람이든, 좋아하는 사람이든, 싫어하는 사람이든. 사진을 보고 떠오르는 사람이 바로 당신 글의 캐릭터다.      

  사진에서 공간적 배경은 절대로 빼놓을 수 없는 구성요소다. 피사체를 찍은 공간 자체가 될 수도 있고, 피사체와 관련된 공간이 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카톡 대화 이미지라면 대화를 나눈 장소가 공간적 배경이 될 것이다. 여기까지 왔다면 작가들이 말하는 기본 구상이 끝난 셈이다.     

  마지막으로 Why는 글의 핵심이다. 앞서 여러 가지 개의 사진을 봤을 때 다양한 감정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심지어 똑같은 개의 사진이라고 하더라도 다르게 느낄 수 있다. 물도, 라면도, 자동차도 마찬가지다. 사람마다 다른 환경에서 자라 서로 다른 가치관을 갖고 있기  때문에 똑같은 소재에 대해서도 다른 주제 의식을 가질 수 있다. 독자들은 작가가 왜 그렇게 느꼈는지 필연적으로 궁금해하기 때문에 작가는 자신의 감정 혹은 생각에 대해서 충분히 설명할 필요가 있다.

   장황하게 늘어 놓았는데 3단계로 정리할 수 있다.


1. 사진을 고른다.

2. 사진의 육하원칙을 나열한다.

3. 육하원칙을 문장으로 만든다.

  '사진 한 장으로 글감찾기'라는 모임에서 실제 진행했던 사례를 보여주자면


언제 : 주말의 어느 날 강아지 산책이 끝난 뒤

어디서 : 마당이 있는 집에서

무엇을 : 맥주를

누가 : 내가

어떻게 : 여유로웠다, 행복했다.

왜 : 아파트보다 마당 있는 집이라서


  대략적으로 이렇게 정리할 수 있다. 이걸 문장을 바꿔보면


"마음껏 뛰놀 수 있는 마당에서 봄이와 함께 놀아주고 남편이 봄이를 씻기는 동안 맥주 한 캔을 마시며 보는 노을의 여유. 마당 있는 집으로 이사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서울 아파트에서는 상상도 못했던 행복이다."


   이런 식의 글을 쓸 수 있다. 완성된 글도, 아주 긴 장문도 아니지만 그럴 듯한 글이 나왔다. 재미있는 사실은 몇몇 글쓰기 관련 책이나 강의에서 글쓰기 연습으로 '세 줄 쓰기'를 권하고 있는데, 마침 육하원칙으로 정리했을 때도 세 줄 정도의 분량이 나온다는 것이다. 세 줄 쓰기를 권하는 이유는 아마도 트위터의 영향이 아닐까 싶은데, 트위터의 글자 수 상한선인 140자가 한글 문서 기준으로 3줄 정도 되기 때문이다. 그만큼 세 줄이 너무 길지도, 너무 짧지도 않은 딱 적당한 분량이라는 뜻이 아닐까? 참고로 위의 예문은 121자다. 정리하자면 '육하원칙으로 사진을 정리하는 방법'은 글쓰기가 막막하고, 두렵고,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이 연습하기 딱 좋은 방법이란 뜻이다.

 

  글을 쓰고 싶은데 무엇을 써야 할지 모르겠다면, 지금 핸드폰을 열어 가장 최근에 찍은(혹은 받은) 사진을 열어보자. 그리고 육하원칙으로 한 번 정리해보자. 작가들이 말하는 소재와 주제, 캐릭터와 배경까지 사진 속에 담겨 있다.

작가의 이전글 사진 한 장으로 글을 쓸 수 있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