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을 없애는 글쓰기(부제 : 사진 한 장으로 시작하는 글쓰기)
프랑스의 사진작가 카르티에 브레송은 사진의 미학을 '결정적 순간'이라고 말했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카메라 렌즈가 맺는 이미지는 끊임없이 움직인다. 그러나 그것이 시간을 초월한 형태와 표정과 내용의 조화로움에 도달하는 순간이 있다. 이를테면 우연히 만난 완전한 절정의 순간을 잡아내는 것. 그것이 사진이 지닌 예술성의 핵심이다.”라는 것이다.
추상적이고 난해한 이 문장을 내 나름대로 정리하자면 ‘특별한 순간을 잡아내는 것’이 사진이라는 예술의 목표이자 과제라고 할 수 있다. 반대로 말하면 사진작가는 끊임없이 움직이는 이미지 속에서 ‘특별한 순간이라고 느꼈을 때’ 카메라를 들어 셔터를 누른다고 할 수 있다. 바로 이 특별한 순간이 사진작가로 하여금 사진을 찍게 만드는 모티브다.
모티브는 사진뿐만 아니라 모든 예술작품을 만들 때 반드시 필요하다. 글쓰기에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흔히 영감이라고도 부르는 모티브가 있어야 예술작품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모티브니, 영감이니 하는 단어들이 예술 활동에서 주로 언급되는 추상적인 개념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특별한 재능을 가진 일부 사람들만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카르티에 브레송의 말을 빌려 모티브 = 특별한 순간이라고 바꿔보더라도 여전히 난해하다. 카르티에 브레송이 말하는 특별한 순간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흔히 특별한 순간이라고 하면 우리는 뉴스 토픽에서 보는 전쟁터의 참상이라든가, 화산이 폭발하는 장면, 아프리카의 초원에서 사자가 사냥하는 장면 등을 떠올린다. 당연한 얘기지만 평범한 인간들이라면 평생 동안 한 번도 경험하기 힘든 순간들이다. 그렇다면 화산이 폭발하는 듯한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없다면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없는 걸까? 좋은 글을 쓸 수 없는 것일까?
다행스럽게도 카르티에 브레송은 “평생 삶의 결정적 순간을 찍으려 발버둥 쳤으나, 삶의 모든 순간이 결정적인 순간이었다.”는 말도 남겼다. 아마도 각자의 삶이 다르기 때문에, 각자의 삶에서 중요한 것이 다르듯이 특별한 순간도 저마다 다르다는 의미가 아니었을까. 누군가에겐 별 의미 없는 순간도 또 누군가에는 특별하게 다가올 수 있으니 모든 순간이 결정적 순간일 수밖에 없다.
특별하게 다가온다는 것은 무슨 말일까. ‘결정적 순간’에 대해 다룬 또 다른 책 순간의 힘에서는 결정적 순간을 “사람들을 극적으로 변화하게 만드는 우리의 삶에서 유난히 도드라지게 새겨지는 의미심장한 경험의 순간”이라고 말한다. 정리하자면 특별한 것이 없어 보이는 일상에서도 내 삶이 변화하게 되는 순간이라면 얼마든지 좋은 사진이 되고, 글감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글을 쓸 때 사진 한 장이 훌륭한 모티브가 되는 이유다. 우리는 2시간짜리 영화를 보더라도 일명 ‘명장면’이라고 하는 장면, 장면을 기억하지, 2시간 동안 진행된 모든 내용을 기억하지 못한다. 삶에서도 마찬가지다. 하루 24시간, 일주일 168시간, 한 달 720시간이 흘러가지만, 그 모든 시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하는 사람은 없다. 다만 그때그때 찍은 사진, 내가 본 사진만 기억에 남는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특별한 의미가 없다면 카메라를 들지 않으니까. 좋아요를 누르지 않으니까.
물론 아무리 내게 의미가 있다고 해도 사진 한 장으로 글을 쓴다는 것이 쉽지 않을 수 있다. 쉽지 않아 보이는 일을 해낸 사람이 있다. 미스터트롯에서 2위를 차지했던 영탁은 예능 뭉쳐야 찬다에 출연해서 자신의 노래 ‘니가 왜 거기서 나와’의 모티브가 무한도전 ‘형이 왜 거기서 나와?’ 짤방이었다고 고백한 바 있다. ‘형이 왜 거기서 나와?’라는 짤은 무한도전에서 유재석이 서장훈과 짜고 멤버들에게 몰래카메라를 시전 하는 장면이었는데 몰래카메라에 속은 정형돈이 유재석을 보고 당황한 표정이 인터넷에서 유행한 것이다. 누군가는 그냥 재미있게 웃고 넘어갔겠지만, 술 안 좋아하고 피곤해서 일찍 잔다던 여자 친구가 강남의 클럽 앞에서 다른 남자와 있는 모습을 봤다면 마냥 웃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우리는 매일 무수히 많은 이미지를 본다. 그냥 웃고 즐기는 짤방에 불과하지만 내 경험이 더해지면 얼마든지 그 사진은 특별한 순간이 되고, 나만의 이야기로 풀어낼 수 있다. 영탁은 ‘형이 왜 거기서 나와’ 짤을 가지고 노래 가사를 썼고, 나는 뭉쳐야 찬다에서 영탁이 인터뷰한 장면으로 지금 이 글 ‘사진 한 장이 글쓰기의 훌륭한 모티브가 된다’는 글을 쓰고 있다.
잊지 말자. 모든 순간은 특별하다. 다만 우리가 무심코 흘려보냈을 뿐. 사진은 우리가 잊고 있던 감정, 기억, 생각을 되새기게 해 준다. 이제 남은 것은 사진으로 남은 우리의 특별한 순간을 문자로 옮기는 것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