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종운 Oct 20. 2021

글의 모티브가 되는 우리가 놓쳐버린 순간

두려움을 없애는 글쓰기(부제 : 사진 한 장으로 시작하는 글쓰기)

  순간(瞬間)은 문자 그대로 특정 사건이나 행동이 발생하는 ‘아주 짧은 동안’이라는 뜻이다. 무심코 지나치는 짧은 시간이지만 그중에는 분명히 내 기억 속에 강력하게 박혀 있는 사건과 행동들이 있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나에게 선명하게 각인된 기억은 그 어떤 것보다도 좋은 글감이다. 다만, 우리가 기억의 한 편에 묻어두었을 뿐.


  안타깝게도 많은 사람들은 ‘목표’ 중심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라는 누군가의 말처럼 목표를 달성하고, 성과를 달성하지 못하면 무의미하다고 생각하고, 스스로를 패배자라고 자책하는 것이다.


  실제로 비즈니스 현장, 조직 전체의 입장에서는 목표가 가장 중요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는 말처럼 그 중간중간의 순간들도 목표만큼이나 중요한 의미가 있다. 때로는 목표 자체보다 중요하게 할 때가 있는데 경영학에서 말하는 ‘진실의 순간(Moment of Truth)’이다.


  진실의 순간이란 고객들이 제품/브랜드에 대한 인상을 결정하게 되는 아주 짧은 순간의 경험을 말한다. 중요한 것은 진실의 순간은 기업의 사회 공헌 활동, 신기술 개발, 인기 있는 연예인의 광고 모델 기용 같은 거창한 순간이 아니라 오히려 고객을 응대하는 직원의 사소한 한 마디, 브랜드의 공식 SNS에 달린 댓글과 같은 아주 사소한 순간들이라는 사실이다.


  우리의 일상에서도 마찬가지다. 때로는 소위 말하는 해외여행이니 최애 연예인의 팬미팅이니 새로 나온 신상 백을 사느니 하는 경험들보다도 문자 한 통, 사과 한 알, 책 속의 한 줄 등 아주 사소한 순간들이 우리에게 더 강렬한 기억으로 남는다. 순간의 힘의 표현을 빌리자면 ‘집안 어딘가에 당신에게는 무척 소중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쓸모없는 잡동사니로 가득한 보물 상자’다. 

  나도 고등학생 때부터 받은 편지, 쓰던 핸드폰, 지갑, 행사장에서 찼던 명찰, 상장 등을 버리지 않고 모아 두고 있다. 어머니는 잡동사니 뭐하러 갖고 있냐고 핀잔을 주시지만, 그 모든 것들이 나에겐 의미 있는 기억이고, 추억이기에 버릴 수가 없다. 약간 오글거리게 말하자면 내가 살아 있는 이유고, 살아가는 이유니까. 남들에게는 별 의미 없어 보여도 뭐든 잘 버리지 않고, 의미 부여하는 성격 덕분에 글감이 마르지 않을 수 있었다.


  모든 사람이 나만의 보물 상자를 갖고 있지는 않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글감이 없다고 말하는 이유일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우리에게는 사진이라는 훌륭한 매개체가 있다. 내가 찍은 사진이든, 내가 좋아요를 누른 사진이든 결정적인 순간을 기억할 수 있게 도와주는.

   어떤 사진도 좋다. 내가 찍은 사진이든, 인터넷에 떠도는 짤방이든, 유튜브나 드라마의 인상적인 장면이든, 카톡 대화든, 핸드폰 화면이든, 그 무엇이든 상관없다. 나의 결정적 순간을 떠올리게 하는 사진이라면. 위의 사진은 내가 실제로 사진 한 장으로 글감 찾기라는 챌린지를 진행하면서 썼던 매일 짧은 글들의 모티브가 된 사진이다.  


  다만 결정적 순간은 매우 짧기 때문에 아무리 사진이 있다고 해도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쉽게 발견하기 힘들다. 의식적으로 사진을 볼 때마다 의미를 부여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평범한 사진을 결정적 순간으로 바꿀 수 있는 방법 4가지를 소개한다. 순간의 힘에서 말하는 결정적 순간의 4가지 분류 유형이다.     

  순간의 힘에서는 고양의 순간을 영원히 간직하고 싶은 순간이라고 말한다. 인스타그램에 사람들이 맛집이나 여행지, 자신이 받은 선물 사진 등을 올리는 것을 생각하면 쉽다. 우리는 매일 밥을 먹지만 그중에서 우리가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음식은 정해져 있다. 영화를 보고 책을 읽어도 우리가 SNS에 공유하는 것은 극히 일부분이다. 보통 SNS에 올라오는 사진을 생각하면 긍정적인 순간만 생각하기 쉽다. 사람들은 긍정적인 감정을 주로 영원히 간직하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정적인 감정도 내 의지와 무관하게 영원하 간직되기 때문에 좋은 글감이 될 수 있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영원히 기억에 남기고 싶은, 남은 순간은 언제였는가?

   위의 사진은 대학교 1학년을 마치고 떠났던 여수행 기차에서 다친 상처다. 화상은 제때 치료하지 않으면 영원히 흉터로 남는데 응급처치를 제대로 못한 탓이었다. 아무리 막차를 탔다지만 난로에 갖다 댄 발이 익어가도록 잠이 들었던 내 모습은 내가 봐도 한심한 모습이었다. 아픈 것보다도 유독 내 한심한 모습을 못마땅해하셨던 아버지에게 혼날 것이 두려워 다치고도 말을 못 했고, 그렇게 제때 치료하지 못한 상처는 영원히 남는 낙인이 되었다. 10대, 20대에 아버지에게 혼났던 기억들 때문에 아버지와 제법 많은 시간을 함께하면서도 20대 후반까지도 아버지의 눈치를 봐야 했던 습관의 산물이다.

  통찰력은 대단한 천재나, 기업 CEO 같은 사람들만 느끼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남들 눈에는 보잘것없어 보이거나 당연할지라도 누구나 한 번쯤 몰랐던 진실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 있다. 장바구니를 끌고 시장에 다녀오시던 어머니를 보고 어머니가 늙으셨다는 것을 인지하게 되는 것처럼. 아주 사소한 진실이라도 괜찮다. 내가 새롭게 알게 된 진실은 얼마든지 좋은 글감이다.     

   위의 사진은 제이라이프스쿨을 다니던 시절 수업의 한 장면이다. 민호쌤은 딱딱하게 굳은 내 표정을 보시곤 "혹시 화났니?"라고 물어보셨다.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보든지 말든지 나만 괜찮으면 된다고 생각했던 내가 남들의 시선도 의식해야겠다고 느꼈던 순간이다. 

  결과지상주의 사회에 살고 있기 때문일까. 어떤 사람들은 아름다운 결과에 대해서만 써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다. 결과가 좋지 않아도 괜찮다. 졌지만 잘 싸웠다는 말처럼 사람들은 최선을 다한 선수에게 얼마든지 박수를 보낼 준비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내가 최선을 다했던 순간은 언제인가? 그 순간을 떠올리게 하는 사진을 찾아보자.

   위의 사진은 2019년 1월에 있었던 이그나이트 청춘 무대에서 스피치 하던 사진이다. 스피치 무대라고는 하지만 아는 사람들만 아는, 그리 유명한 스피치 대회는 아니었지만, 생판 처음 보는 사람들이 내 이야기를 들으며 공감해주는 모습에 스토리텔러가 될 수 있겠다는 용기를 얻었다. 무엇보다도 매번 내가 하는 일들을 못마땅해하시던 부모님이 나를 믿고, 지지해주기 시작한 계기가 되었던 순간이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말처럼 사람들은 소속감을 느끼길 원한다. 함께한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사람들은 단체 사진을 찍고, 같은 유니폼을 맞춰 입는다. 여기서 소속감은 단순히 한 조직에 속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내 생각, 내 취향에 공감해줄 수 있는 사람들과 함께 한다는 의미다. 나는 어떤 생각, 취향에 공감했는가?      

출처 : 드라마 쌈 마이웨이 中

  드라마의 한 장면도 좋은 글감이 될 수 있다. 위의 사진은 쌈 마이웨이에서 아나운서 자리를 혜란에게 뺏긴 애라를 애라 아버지가 위로하는 장면이다. 29살의 어리지 않은 나이, 뭔가를 멋지게 이룬 모습만 부모님께 보여주고 싶지만, 현실은 여전히 자리 잡지 못하고 방황하는 모습을 본 아버지가 애라를 위로하며 용돈을 찔러주자 애라는 쪽 팔린 모습 보여주기 싫었다며 짜증을 냈다. 서른이 넘어서도 작가가 되겠다고 방황하는 나를 보며 볼 때마다 걱정하시고, 용돈을 챙겨주는 할머니가 떠올라 남 일 같지 않았다.


  편의상 사진 한 장에 담겨 있는 특별한 순간을 크게 4가지로 분류했지만, 이 외에도 무수히 많은 의미들이 담겨 있다. 아름답지 않아도, 대단하지 않아도, 성공적인 결과가 아니라도, 남들이 무시하더라도 괜찮다. 나에게는 특별한, 내가 살아 있고, 나를 살아가게 만드는 의미가 순간이니까. 


작가의 이전글 사진 한 장은 훌륭한 모티브가 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