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을 없애는 글쓰기(부제 : 사진 한 장으로 시작하는 글쓰기)
‘취향에 대한 이야기’로 침묵을 깨고, 빈 종이를 채울 수 있다고 말했지만 사실 쉬운 일은 아니다. 생각보다 사람들은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잘 모르기 때문이다. 내 취향에 대해서 좋은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보니 의식적으로 내 취향을 숨기게 되었고, 내 스스로의 호불호보다는 다른 사람의 시선을 더 의식하다보니 내 취향에 대해서 잊고 살게 되는 것이다.
스피치 코치 이민호 선생님의 책 ‘말은 운명의 조각칼’은 천문학자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천문학자의 강연을 들은 한 남자도 천문학자가 되고 싶었지만, 어린 시절 한 어른이 ‘천문학자? 돈도 안 되는 거 되어서 뭐 하려고?’라고 핀잔을 주었다고 한다. 그 말을 들은 남자는 마치 자신이 죄를 지은 듯한 느낌이 들었고 천문학자의 꿈에서 점점 멀어져갔다고 한다.
나 역시도 어릴 때 소설가가 되겠다고 했을 때 '춥고 배고픈 직업을 해서 뭐 할 거냐?' 는 핀잔을 받았고, 순수하게 역사를 좋아해서 수능 선택과목으로 국사를 선택할 때도 ‘니 까짓게 서울대를 갈 것도 아닌데 왜 국사를 공부하냐?’는 비난을 받았다.
소설가나 국사 공부는 그나마 현실적인 이유라도 있었지, 주변 사람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핀잔을 듣고, 눈치 없다고 욕을 먹은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고등학교 담임 선생은 내가 무협 소설을 읽고 있을 때면 ‘무협 소설 읽는 새끼 치고 대학교 잘 가는 새끼 본 적이 없다’며 마치 큰 범죄라도 저지른 비행청소년 취급을 했었고, 등산을 좋아해서 유럽이 아니라 히말라야 트래킹을 간다고 했을 때는 내 취향을 이해하는 친구들이 아무도 없었다. 자연스럽게 내가 뭘 좋아하는지 정말 친한 친구들을 제외하고는 선뜻 얘기하지 않는 버릇을 갖게 되었다.
정말 슬픈 건 우리 사회에는 천문학자를 꿈꾼 소년에게 핀잔을 준 어른들처럼, 다른 사람의 취향을 무시하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암묵적으로 내가 아무리 좋아하는 꿈이라고 해도 다른 사람들의 선택과 다른, 눈에 띄는 선택했을 때 ‘튄다.’, ‘나댄다’, ‘쟤 뭐야?’ 같은 부정적인 시선과 함께 눈치를 주는 경향이 있다.
대표적인 것이 예능 프로그램 ‘미운 우리 새끼’다. 논란이 되었던 개인의 문제들을 제외하고 김건모, 이상민, 김종국, 박수홍 등 각각의 출연진들을 보는 어머니들의 시선은 곱지 않다. 그저 열심히 일해서 번 돈으로 각자의 취미 생활을 재밌게 즐길 뿐인데, 남들이 결혼에 좀 더 관심이 있을 때 다른 활동에 더 관심이 있을 뿐인데 마치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처럼 말한다. 나름 각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들인데도 부모의 못마땅한 시선을 받는 것을 보면 평범한 일반인들이 취미 활동을 할 때는 오죽할까.
진로나 결혼에 대한 이야기는 현실적인 이유를 감안해야 하니 논외라고 치더라도 우스갯소리로 직장인들의 최대 고민거리라고 불리는 점심 메뉴만 해도 그렇다. 각자 돈을 내고 좋아하는 메뉴를 골라 먹으면 그만인데 사람들은 내가 좋아하는 메뉴를 고르기보다 남들이 싫어하지 않을 메뉴를 골라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느낀다.
무한도전의 무한상사 편 중 점심 메뉴 고르는 에피소드에서 멤버들은 정 과장(정준하)에게 점심 메뉴를 고르라고 시킨다. 정준하가 고기, 회, 설렁탕, 피자 등 이것저것 메뉴를 얘기해보지만 돌아오는 것은 핀잔 뿐이다. 자막에 있는 것처럼 점심메뉴도 ‘동료 눈치 봐가며’ 골라야 하는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과 상관없이.
예능뿐만 아니라 현실에서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서 직장 상사가 김치찌개를 먹자고 했을 때 김치찌개보다 파스타가 땡기더라도 선뜻 파스타를 먹겠다고 말하지 못한다거나 직장 상사나 중국집에서 짜장면을 먼저 고르거나 직장 동료들이 아메리카노를 먼저 골랐을 때 선뜻 다른 메뉴를 말하지 못하는 것처럼.
학창 시절에, 회사를 다니면서, 친구들 사이에서 좋은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으니 취향을 숨기게 되고 취향을 숨기다 보니 취향이 무엇인지조차 잊고 살아 간다. 마치 말뚝에 묶여 자란 코끼리가 말뚝을 뽑아버릴 만큼 힘이 세진 다음에도 말뚝을 벗어나지 못하는 셈이다.
취향을 숨기는 것이 익숙한 사람들이지만 유일하게 취향을 소신있게 드러내는 공간이 있다. SNS다.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의 SNS에는 하루에도 수억 장의 사진들이 올라온다. 최근에 내가 무슨 사진을 올렸는지 생각해보자. 음식 사진을 예로 들면 우리는 매일 3끼를 먹고 한 달이면 90끼를 먹지만 그중에 SNS에 올리는 사진은 기억에 남는 음식, 뭔가 의미가 있는 음식, 특별한 음식만 올린다.
내가 좋아요를 누른 사진은 어떠한가? SNS에 올라오는 사진은 가고 싶은 여행지, 좋아하는 연예인, 먹고 싶은 맛집, 꼭 보고 싶은 영화 등등 종류는 다양하지만, 그중에서 나에게 노출되는 사진은 제한적이다. 지인들이 직접 올린 사진 외에는 알고리즘을 통해 일명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라고 분류된 콘텐츠가 노출된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우리는 또 일부의 사진에만 ‘좋아요’를 누른다. 내가 정말 좋아하고 관심 있는 사진에만.
물론 사진은 잘 올리지 않고, 눈팅만 하며 피드를 손가락으로 슥슥 훑으면서 좋아요를 누르고, 사진을 공유하는 사람도 있고, SNS 계정이 없어 눈팅조차 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SNS를 열심히 하지 않더라도 친구들과 카톡으로, 메신저로, 혹은 오프라인에서 ‘이 사진 한 번 봐봐’라며 주고받았던 경험은 한 번쯤 있을 것이다. 내가 좋아하고 관심이 있는 사진들만.
다시 말하자면 SNS에 당신이 올린 사진, 당신이 SNS에서 좋아요를 누른 사진들은 당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싫어하는지 당신의 취향을 보여준다는 뜻이다. 사진의 의미를 생각해보면 당연한 이야기다.
지금이야 초등학생들도 핸드폰으로 사진을 쉽게 찍고 올리지만, 스마트폰과 디지털카메라가 대중화되기 전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찍어야 했기 때문에 사진은 특별한 기술이 필요한 영역이었다. 초등학생 때 부모님과 여행을 다니면서 항상 필름 카메라를 가져가 몇 통씩 찍었어도 막상 인화를 해보면 흔들리거나, 빛이 번졌거나 뭐 기타 등등의 이유로 건질 수 있는 사진들이 몇 장 없었다. 어릴 때라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필름 값 또한 꽤나 비싸서 애들이 함부로 찍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사진 찍는 것은 대부분 부모님의 몫이었다.
부모님들이라고 항상 잘 찍는 것은 아니라서 중요한 날에는 어김없이 사진사들에게 맡기기도 했다. 졸업식장, 입학식장이나 유명한 여행지에 가면 항상 사진사분들이 몇 명씩 있었고, 그들에게 사진을 부탁하는 학부모, 여행객들의 모습은 익숙한 광경이었다.
지금처럼 쉽게 사진을 찍을 수 없어서였을까.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그만큼 의미 있는, 특별한 경험을 의미했다. 당연히 아무 사진이나 찍은 것이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음식, 여행지, 연예인 등 내가 중요하다고,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순간에 사진을 찍곤 했다. 예를 들어서 길거리를 지나가다 연예인을 마주쳤다고 해도 내가 평소 좋아했던 연예인이 아니라면 ‘오 연예인이구나.’하고 스쳐지나가겠지만, 최애 연예인이라면 ‘사진 한 장 찍을 수 있을까요?’하고 한달음에 달려가는 것이다. 나 또한 세바시 무대에 선 연사들을 많이 만나봤지만 유이하게 신동미 배우님, 강원국 작가님하고만 사진을 찍었었다. 두 분의 이야기가 가장 인상 깊었기 때문이다. ‘순간의 힘’이라는 책의 표현을 빌리자면, 결정적인 순간이라고나 할까. 이른바 ‘우리의 삶에서 유난히 도드라지게 새겨진 의미심장한 경험’이다.
결정적인 순간이라고 하니 대단히 거창한 순간인 것 같지만 누구나 겪는 경험이다. 다만 지극히 개인적이기 때문에, 나에게는 특별할지 몰라도, 다른 사람들에게는 아무 감흥이 없을 수 있을 뿐이다. 예를 들면 ‘짜장면이 싫다고 하신’ 어머니를 둔 사람과 짜장면을 마음껏 먹을 수 있었던 사람에게 같은 짜장면이라도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오는 것처럼. 나의 가치관, 생각, 태도 등을 만들었다는 점에서는 일종의 취향과도 통하는 맥락이 있다.
디지털 카메라와 스마트폰이 대중화되면서 더이상 사진 찍고 공유하는데는 특별한 기술이 필요 없어졌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사진을 찍는다는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내가 좋아하지 않는, 관심 없는 사진을 찍고, 공유하고, 좋아요를 누르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그 사진이 내면의 무엇인가를 건드렸기 때문에 우리는 사진을 찍고, 좋아요를 누른다. 다시 말하자면 내가 좋아요를 사진은 내가 인식하지 못했던 내 취향을 보여준다는 뜻이고, 내가 찍은 사진은 나의 결정적인 순간이라는 뜻이다.
지금 핸드폰을 열어보자. 당신의 핸드폰에는 어떤 사진들이 있는가? 그리고 생각해보자, 당신의 취향은 무엇인지. 당신의 결정적인 순간은 무엇이었는지. 지금 핸드폰을 열어보자. 당신의 핸드폰에는 어떤 사진들이 있는가? 그리고 생각해보자, 나의 취향은 무엇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