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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종운 Oct 10. 2021

침묵을 깨는 방법, 취향에 대한 단상

두려움을 없애는 글쓰기(부제 : 사진 한 장으로 시작하는 글쓰기)

  자기소개서가 광탈하고, 겨우 면접을 보게 되더라도 합격자 명단에 내 이름이 없다는 패배감만 맛보던 시절 뭐라도 해보고 싶어, 제이라이프스쿨을 다니게 되었다. 처음에는 마케팅 직무에서 요구하는 포트폴리오를 작성하는 디자인 스킬을 배우고 싶어 다니기 시작했지만 취준이 장기화되면서 눌러앉게 되었다.


  제이라이프스쿨은 영어회화가 메인이었지만 나는 주로 한국어 스피치를 들었고, 친구들과 글쓰기 스터디를 진행했다. 수업과 스터디에서 주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이번 수업에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소재 찾으셨어요?”라는 말이었다.


  ‘소재가 없다.’ 아마 남들 앞에서 발표를 하는 스피치가 떨리고, 두려운 이유, 글쓰기가 막막한 가장 큰 이유라고 생각한다. 다만 나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유치원 때부터 말이 많다고 왕수다라고 불렸고, 할머니는 입버릇처럼 물에 빠지면 입만 동동 뜰 거라고, 핀잔을 주셨을 만큼 말을 하지 못해 안달복달하던 나는 답답해서 미칠 만큼 하고 싶은 말이 많았고, 쓰고 싶은 글이 많았다. 재미가 있고 없고는 논외로 치더라도, 소재나 주제가 없어서 말문이 막혔던 적은 없었다.


  남들이 소재를 찾기 위해 일부러 지하철 2호선을 타고 한 바퀴 돌 때, 목표한 숫자의 글을 채우지 못하는 동안 나는 초과 달성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많은 글을 써 내려갔다. 2017년 8월부터 2020년 4월까지 418편의 글을 썼으니 한 달에 평균 12편의 글을 쓴 셈이다.


  그야말로 넘사벽으로 물량 공세를 펼치는 나를 보며 함께 스터디하던 친구들이 소재를 찾는 방법을 물어본 적이 있었다. 뭔가 딱 잘라 답을 주고 싶었지만 문자 그대로 내 꼴리는대로 글을 써내려 온 내가 줄 수 있는 답은 없었다.


  작년 가을, 새로운 자극을 위해 찾았던 크리에이터 클럽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었다. 크리에이터 클럽은 프랑스의 살롱 문화에서 영감을 얻어 탄생했다고 한다. 열정의 기름붓기라는 콘텐츠로도 유명한 크리에이터 클럽에서는 공통의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끼리 대화를 나누고, 나만의 콘텐츠를 만들어 볼 수 있다. 정규 모임 외에 각자가 호스트가 되어 새로운 모임을 만들기도 한다.


  독서 모임 트레바리에서 ‘사진을 읽다’라는 모임을 진행하면서 한창 사진에 대한 열정을 다시 불태우고 있을 때라 사진 관련 모임을 몇 번 나가게 되었다. 한 번은 각자의 사진을 공유하고 사진에 대한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는 모임이 있었다. 늘 그렇듯 처음 보는 사람들이라 어색하지만, 사진이라는 공통의 관심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면서 분위기가 조금은 편해졌다.


  모임이 끝나고 집에 오는 길에, 방향이 비슷해서 A와 함께 지하철을 타게 되었는데 거의 쉬지 않고 사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개인적으로 침묵이 흐르는 상황을 못 견디는 성격인데, 정말 친한 친구가 아니면 사실 억지로 질문을 쥐어 짜내거나, 피상적인 근황 토크나 하면서 이야기를 이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특히나 트레바리나 크리에이터 클럽처럼 모임에서 처음 만난 사람들과는 더더욱 단편적인 이야기만 맴돌 뿐 어색한 공기가 여전히 느껴질 때가 많았다. 


  A와의 대화는 달랐다. 솔직히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저 각자의 핸드폰 앨범 속의 사진들과 SNS상의 사진들을 보여주면서 이야기를 나눴던 것만 기억난다. 다만,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추억 팔이라도 하듯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40분 이상이 흘러갔고, 지하철역에서 내리는 것이 아쉽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는 것은 확실히 기억한다.


  짧게 잘 쓰는 법이라는 책에서 저자가 ‘독자가 여러분의 관심사를 느끼면 된다.’고 말했던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았다. 많은 사람들은 늘 ‘무슨 글을 써야 하지?’. ‘무슨 말을 해야 하지?’ 고민한다. 백글단, 교육원, 제라스 등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들은 질문이다. 생각해보면 취업 준비하던 시절, 그러니까 백글단을 시작하기 전 나도 비슷한 고민을 많이 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무슨 말을 써야 할지, 모의면접은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SKT가 많은 연봉을 주지만 나는 핸드폰, 자동차, IT에는 쥐뿔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주어진 분량을 채우는 것조차 힘들었다.


  대신 내가 좋아하는 분야, 야구단이라든가 관광, 백화점 같은 분야에 대해서 쓸 때는 쉽게 쓰다 못해 분량이 넘치는 것이 문제였다. A와의 대화처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신나서 쓴 것은 아니지만 매우 편하게, 쉽게 쓸 수 있었고, 결과도 좋았다.


  자기소개서뿐만이 아니다. 누구나 내가 좋아하는 분야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는 신이 나서 이야기를 한다. 침묵이 끼어들 틈이 없다. 거창하고, 대단하고, 있어 보이는 그런 말들은 아닐지도 모르지만, 그 자체로 생생한, 그야말로 ‘찐팬’이라는 것이 느껴지는 말들이 오고 간다. 무엇보다도 ‘찐팬’은 ‘찐팬’을 알아보기 마련이다. ‘찐팬’끼리의 대화만큼 즐거운 것도 없다. 소위 티키타카가 되는, 그런 대화 말이다.


  바꿔 말하면, 취향에 대한 이야기로 어색한 침묵도 깰 수 있고, 부담스러운 흰 종이도 얼마든지 채울 수 있다는 뜻이다. 화려한 수식어도, 논리적인 근거도 필요 없다. 그저 ‘나 이거 좋아한다.’는 한 마디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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