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보다 히말라야
“그 돈 주고 히말라야를 왜 가냐?”
2015년 1월, 내가 380만 원을 내고 네팔에 간다고 했을 때 내 친구들은 하나 같이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그 돈과 그 시간이라면 차라리 유럽을 가고, 미국을 가겠다는 했다. 내 친구들뿐만 아니라 지금까지도 20대의 해외여행은 90% 이상이 유럽 아니면 미국이지, 네팔 같은 오지를 다녀오는 사람은 정말 흔치 않았으니 미친놈 취급하는 친구들의 반응을 이해 못 할 것은 아니었다.
미친놈 소리를 들으면서도 네팔을 가겠다고 결심한 이유는 딱 하나였다. 유럽이나 미국은 나이를 먹어서도 얼마든지 갈 수 있겠지만 지금이 아니면 돈을 떠나서 내 평생에 히말라야에 갈 수 있는 기회가 없을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처음부터 히말라야를 가야겠다고 생각한 건 아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마지막이 될 대학교 4학년의 겨울방학을 어떻게 하면 알차게 보낼 수 있을까 인터넷을 뒤지기 전까지는 내가 히말라야에 간다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등산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도 한 번쯤은 이름을 들어봤을 만큼 히말라야는 북한산, 남산 같은 동네에 있는 산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높고, 험하다. 북한산이 자판기 커피라면, 히말라야는 TOP랄까. 아무리 등산을 좋아하는 나라지만 한라산조차도 허덕대며 올랐던 주제에 감히 히말라야를 가겠다는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때 청춘문화놀이터의 공고를 발견했다. 네팔의 오지 마을에 영어 도서관을 짓는 해외봉사 프로그램과 함께 히말라야 트래킹을 진행하는 20일의 일정이었다. 유럽 일주, 미국 일주 등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있었고, 게 중에는 돈을 안 내거나 심지어 돈을 받는 프로그램도 있었지만, 난 망설임없이 네팔 해외봉사 프로그램을 신청했다.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기회였으니까.
생각해보면 늘 그런 식이었다. 남들이 무엇을 좋아하든, 어떻게 생각하든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찾아서 했고, 싫어하는 일은 과감하게 포기하곤 했다. 좋게 말하면 소신이 있고 주관이 뚜렷한 성격이지만 나쁘게 말하면 개쌍마이웨이인 그런 사람이었다.
물론 제아무리 개쌍마이웨이라고 할지라도 등산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어차피 내려올 산 뭐하러 가냐’, ‘등산이라니 아저씨 같다.’며 친구들이 핀잔을 듣다보니 등산 얘기를 잘하지 않게 되었다. 딱히 숨길 이유는 없지만, 그렇다고 좋은 소리를 듣지도 못하는데 등산 얘기를 굳이 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얼마 전 김민철 작가의 에세이를 읽으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모든 요일의 여행은 ‘왜 나는 여행을 좋아하는가?’에 대한 이야기로, 김민철 작가의 본인이 여행 다니면서 만났던 사람, 장소, 느꼈던 생각, 감정에 대한 이야기다. 세계일주니, 한 달 살기니 하는 거창한 여행이 아니라 각각의 여행에 대한 이야기라서 한층 친숙하게 다가왔다. 생각해보면 여행이라면 나도 꽤나 다녔는데, 나도 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연한 얘기지만 내 여행의 대부분은 등산이다.
등산에 대한 이야기를 쓴다고 처음 얘기했을 때 내 주변 지인들은 등산 이야기는 아저씨 같다고, 진부하다고, 재미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 등산의 경험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고, 나는 여전히 파리보다 히말라야를 좋아한다. 그거면 충분하지 않을까? 김민철 작가의 말마따나 근사하지 않아도, 우아하지 않아도, 대단하지 않아도, 완벽하지 않아도, 비록 아저씨 같아도 바로 그 등산이 오늘의 나를 만들었으니까.
등산을 좋아하지 않더라도 나처럼 마이너한 취미를 가진 누군가라면 공감하지 않을까? 여행이나 맛집 탐방, 영화 관람 같은 대중적인 취미가 아니라 때론 아저씨 같은, 때론 오타쿠 같다는 소리를 듣는 취미를 가진 사람들, 좋아하지만 좋아한다고 선뜻 말하지 못했던 누군가에게 작은 위로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