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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종운 Sep 29. 2021

두렵고, 막막하지만, 그래도 다시한번 글을 쓰겠지

  빌어먹을. 이 글을 쓰기 위해 한글 파일을 열었다, 닫았다를 몇 번을 했는지 모르겠다. 머릿속에 할 말은 딱 정해져 있는데, 도저히 뭐라고 써야 할지 모르겠다. 한글 파일을 열어놓고 몇 자 적어 내려가다 맘에 들지 않아 지웠다가, 다시 주절주절 썼다가,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잠시 쉬자며 유튜브를 켜고, 페이스북을 연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다.


  더 이상 미룰 수도 없고, 쥐어짠다 해서 없는 아이디어가 샘솟을 리도 없으니 그냥 손가락 가는 대로 쓰기로 했다.

  사실 별 얘기는 아니다. 그냥 또다시 나의 한심한 필력에 우울해졌다는 얘기다. 지난주 금요일, 효행공모전 글쓰기 입상자 발표가 있었다. 스피치 대회를 준비할 때처럼 20번씩 퇴고한 건 아니지만 나름대로 퇴고도 거치고, 열심히 써서 냈다. 양심적으로 큰 상을 바라진 않았지만 그래도 이왕 내는 거 상을 받으면 좋으니까 가작에라도 어떻게 이름을 올려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다. 아니, 상을 받아야만 했다. 글쓰기 강사가 되기 위해서는 뭐라도 타이틀이 있어야만 하니까.


  당연한 얘기지만 입상자 명단 어디에도 내 이름은 없었다. 가작에도 없었다. 새삼스러운 얘기는 아니었다. 초중고 12년을 통틀어 단 한 번도 교내 백일장이니, 글짓기 대회니 할 때마다 상을 탄 적이 없었으니까. 단과대 신문사로 활동할 때도 동기들이 1면, 2면씩 꽉꽉 채워 기사를 쓸 때마다 내 기사 아이템은 잘려나가기 바빴고, 지면의 1/3을 겨우 채우곤 했으니까. 나에겐 필력 따윈 없었으니까.


  흔히 글을 잘 쓰려면 많이 읽어야 한다고 한다. 과장 조금 보태서 1만 권이 넘는 책을 읽었으니 감히 단언컨대 또래들 중에서 나보다 많은 책을 읽은 친구들은 드물 것이다. 그런데도 그 흔한 글짓기상 하나 못 탄 것은 글쓰기 또한 분명히 재능의 영역이라는 뜻이 아닐까. 운동 신경이나 음악적 감성만큼이나 필력 또한 타고나야 잘 쓸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소설가의 꿈을 접었고, 기자의 꿈을 접었다. 아, 나에게는 음치, 몸치, 박치인 것도 모자라 글 쓰는 재주마저 없구나, 싶어서.


  어렸을 때부터 쉽게 포기하는 성격이었다. 굳이 내가 서툰 일을 하면서 놀림감이 되고, 싫은 소리를 들어야 하나 싶었다. 젓가락질을 못 한다고 아버지에게 혼나는 것이 싫어서 아예 생선을 거들떠보지도 않았고, 음치에 박치라고 놀림받는 것이 싫어서 노래방 근처에도 가지 않았다. 생선 좀 안 먹는다고, 노래 좀 안 듣는다고 내 인생이 크게 문제가 생기진 않았으니까, 오히려 스트레스를 받지 않을 수 있었으니까, 그렇게 살아왔다.

노래를 안 듣고 안 부르니 아이돌에도 관심이 없었다. 최근에서야 소녀시대 9명의 얼굴을 구분할 정도로.

  소설가의 꿈을 접고, 기자의 꿈을 접었던 이유다. 가뜩이나 글 쓰는 일은 춥고 배고프다고 하는데 필력조차 형편없었으니까 포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밥벌이를 할 만큼 잘하지 못하는 주제에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이유로 춥고 배고픈 현실을 감당할 만큼 용기 있는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결정적으로 모 만년필 브랜드에서 여행을 주제로 진행한 수필 공모전에서도 광탈하면서 글 쓰는 것을 그만두었다. 지금 생각하면야 당연한 결과였을 진 모르겠지만, 21살의 어린 내가 유일하게 남들보다 좀 낫다고 믿었던 마지막 영역에서마저 인정받을 수 없다는 사실은 사형 선고처럼 다가왔다. 나는 글을 쓰면 안 된다는, 글을 쓸 자격이 없다는 뭐 그런...


  8년을 넘게 책도 거의 안 읽고, 글 다운 글을 쓰지도 않다가 취업을 준비하면서 다시 글을 쓰게 되었다. 아무리 필력이 없어도 최소한 남들보다는, 혹은 남들만큼은 자기소개서를 쓰겠지라고 생각했다가 취업 시장에서 ‘나 그래도 글 좀 쓰는데’라는 생각이 오만이었고, 망상이었다는 냉정한 현실을 마주했기 때문이다. 20개, 30개의 자기소개서를 써야 겨우 1번의 필기시험, 혹은 면접 기회가 주어졌다. 그중에는 내 선배, 동기, 후배들은 신경도 안 쓰던 중견, 중소기업들도 수두룩했음에도 불구하고, 면접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현실은 내 필력은 형편없다고 말하고 있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글쓰기 스터디를 시작했고, 약 8개월 동안 140편의 글을 쓴 끝에 취업에 성공했다. 3년 만에 어렵사리 성공한 취업이었지만 8개월 만에 자의 반 타의 반 퇴사를 결심했다. 뼛속까지 한량에 어쭙잖은 신념이나 내세우는 내가 평범한 직장 생활을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렇다고 월급 루팡 짓을 한 건 아니고, 미련할 정도로 최선을 다했지만, 결과는 토사구팽이었다. 


  예정보다 빠르게 퇴사하면서 많이 고민했다. 나이 30살에 대기업을 다닌 것도 아니고 1년을 채운 것도 아닌 애매한 경력으로 재취업을 할 수 있을까? 재취업이 된다는 보장도 없었지만, 설령 재취업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이미 이전 직장에서 3,4살 차이 나는 사수들과의 불편한 관계와 같은 똑같은 상황을 다시 겪게 됐을 때 버틸 수 있을까? 대답은 ‘아니오’였다.


  대신 글쓰기를 업으로 삼아야겠다고 생각했다. 형편없는 필력이었지만 무엇을 써야 할지  모르겠다고 고민하는 사람들과 달리 마르지 않는 소재나 주제를 갖고 있었고, 생긴 것과 다르게 아 다르고 어 다른 미묘한 뉘앙스의 차이를 집어내는 디테일함을 갖고 있었기에 막연하게 초심자를 위한 글쓰기 강의를 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다. 당연한 얘기지만 출판 경력도, 강의 경력도, 수상 경력도 없는 내가 강의를 하는 일은 없었다.


  때마침 아는 이모님께서 소개해주신 한국방송작가협회 드라마 작가 교육 과정을 들으면서 천천히 준비하기로 했다. 글쓰기를 이론적으로 배워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이참에 제대로 배우면 글쓰기 강의안을 만드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었고, 소설가의 꿈을 포기했다지만 여전히 마음 한 구석에는 내 글을 쓰고 싶다는 꿈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3년이 지났다. 내 주변의 친구들뿐만 아니라 후배들마저 하나둘 승진하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 가운데 난 여전히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나름 야심 차게 목표로 세웠던 드라마 공모전에 응모해보겠다던 계획은 시도조차 하지 못했다. 매일같이 스터디원들에게 물어보고, 카페에 앉아 머리를 쥐어짜 봐도 ‘아 이렇게 쓰면 안 될 것 같은데’라는, 내가 봐도 진짜 개노잼인 이야기로는 도저히 응모조차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겨우 수업 마감일에 맞춰서 되지도 않는 이야기를 제출하기 급급했고, 혹평과 마주해야 했다. 이그나이트 청춘과 골든마이크 시즌 8을 거치면서 ‘아 그래도 스토리텔링 능력이 좀 있는 거 같은데?’라며 갖게 된 일말의 희망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그 무렵부터였다. 글쓰기 빈도가 확 줄었다. 처음 글쓰기 스터디를 할 때부터 매달 목표를 초과 달성할 만큼 그야말로 미친 듯이 써내려 왔지만, 점점 그 속도가 느려지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드라마 작가 수업 듣는 동안 내 대본을 쓰는 것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대본을 읽고 합평을 쓰는 일도 벅차고, 글쓰기 커리큘럼을 만드는 일도 바쁘다는 이유였다. 작년에 겨우 브런치 작가가 되고 이런저런 글을 더 많이 올리겠다고 다짐했는데 목표의 반의 반도 달성하지 못했다.


  슬프게도, 예전만큼 글을 안 쓰는 이유는 바빠서만은 아니었다. 안 써지기 때문이다. 같은 소재를 다룬 드라마를 보면서 내 필력에 좌절을 느끼고, 글쓰기를 검증받기 위해 지원했던 신문사 객원 기자, 콘텐츠 모니터링단, 수필 공모전 등은 줄줄이 떨어지면서 답답해졌기 때문이다. 이렇게 살아도 괜찮은지 불안했기 때문이다.


  눈앞에 벽이 있다면 두드려 부수든, 사다리를 놓고 올라가 타 넘든, 아니면 빙 돌아서든 어떻게든 넘어가면 된다. 인간이 접근할 수 없는 4차원의 벽은 어떻게 넘어야 할까? 문자 그대로 넘을 수 없는 벽이다.

왕좌의 게임 中

  우습게도 ‘글쓰기에도 정답이 있다면 4차원의 벽을 넘을 수 있을 텐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보다 글쓰기의 영역에는 정답이 없다는 걸 잘 알면서도 정답이나 찾고 있다니. 이런 알량한 재주를 가지고 작가가 되겠다고, 글쓰기 강사가 되겠다고 했었나 싶었다.


  생각해보면 고등학생 때도 정답 때문에 참 고생을 많이 했었다. 문학 지문을 풀 때마다 내가 느낀 생각과 출제자의 의도가 다르다는 이유로 틀린 문제가 수두룩했고, 수십 번씩 본 소설이지만 수능 문제를 맞히기 위해서는 답을 외워야만 했었다. 언젠가 기사에서 소설가, 시인들을 데려와 본인들의 작품을 다룬 수능 문제를 풀라고 해도 못 맞춘다는 얘기를 보면서 이걸 왜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그래서 한때는 언어나 사탐보다 수학을 좋아했던 적도 있었다. 수학은 공식만 이해하면, 풀 줄만 알면 정답은 정해져 있었으니까. 적어도 내가 무엇을 공부해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점수가 오르는지 명확했으니까.


  ‘재미있는 드라마를 쓰는 정답’, ‘당선되는 수필을 쓰는 정답’을 찾는 내 모습을 보면서 어쩌면 내가 언어보다 수학을 좋아한 것이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인생 대충 살고 싶었던 한량이었기 때문에 수학보다 언어를 더 좋아한 것은 아닐까? 수학은 정답이 정해져 있는 만큼 공부하는 만큼 성적이 정비례해서 올라가지만 언어는 정비례하지 않는다. 성적이 덜 나와도 정답이 없기 때문에 언어는 ‘난 이렇게 생각한다. 출제자와 코드가 안 맞았다. 시대를 잘못 타고났다.’ 같은 아주 좋은 변명거리가 존재한다.


  공부는 하기 싫고, 성적은 잘 받아야 하고, 변명 거리는 충분하고, 그 와중에 어렸을 때 읽은 소설들 덕분에 새롭게 지문을 공부할 필요도 없으니 언어를 주력 과목으로 선택하고 글쓰기를 좋아한다고 포장해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역시 나란 새끼는 뼛속까지 한량인 건가.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삼겠다는 낭만에 꽂혀 글쓰기를 업으로 삼겠다고 말했지만, 그저 놀고먹기 위한 허울이었나. 역시 그냥 취업이나 제대로 준비했어야 하나 하는 오만가지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솔직히 글쓰기를 가장 좋아하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더 그랬는지도 몰랐다. 볼링 동아리를 10년 넘게 해올만큼 볼링을 좋아하고, 구단별 야구 기사와 선수들의 성적을 줄줄 외울 만큼 야구를 좋아하기도 한다. 대학교 입학 후 거의 매해 혼자 여행을 다닐 만큼 여행도 좋아하고, 온갖 카드게임은 사족을 못 써서 여러 차례 친구들과 밤을 새우기도 했다.


  정말 내가 글쓰기를 좋아한다고, 잘하고 싶다고 말할 수 있을까? 멍하니 책장을 바라보는데 몇 권의 책들이 눈에 들어왔다. 다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최근 1,2년 동안 사들인 글쓰기 관련 책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뭘 좋아하고 뭘 잘하는지는 관심이 1도 없던 내가, 어떻게 해야 잘할 수 있는지 이론서나 설명서는 거들떠도 안보는 내가, 유일하게 사들인 이론서였다. 

  예를 들어서 볼링의 경우도 정말 좋아하지만, 볼링 이론서 한 번 본 적이 없다. 볼링 동아리 10년을 넘게 하는 동안 선배들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말 중 하나가 볼링 이론서 좀 사서 봐라, 하다못해 유튜브 영상이라도 보고 공부 좀 하라는 말을 들었지만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어느 순간 후배들조차도 볼링 이론 공부를 하고, 유튜브 영상을 보면서 볼링공의 장비, 레인의 패턴, 스윙 메커니즘에 대한 전문 용어들을 섞어가면서 토론을 하고 있었다. 당연히 후배들보다 점수가 낮게 나오기 시작했다. 나 역시 볼링을 잘 치고 싶었지만 그렇게까지 투자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내가 프로 테스트를 받을 것도 아닌데 그렇게까지 해야 되나? 하는 생각이 강했다.


  여행을 갈 때도 마찬가지였다. 해외여행은 거의 패키지로 가족과 다녀왔고 국내 여행을 가더라도 여행지에서 꼭 봐야 할 것 한두 가지만 체크한 채 무작정 여행을 떠났다. 조사를 제대로 한 적은 거의 없었다. 당구도, 사진도, 웨이트트레이닝도 그 어떤 취미도 이론을 제대로 공부하면서 즐기려고 한 적은 없었다. 기계치에 컴맹 소리를 들을 만큼 컴퓨터처럼 관심 없는 분야는 아예 신경도 쓰지 않았다. 문제가 생기면 남들은 분해도 해보고, 설명서도 찾아보고 하지만 절대 먼저 찾아보거나 공부한 적도 없었다. 그저 친구들에게 물어보거나 안 되면 사람 불러야지 했을 뿐. 


  글쓰기는 달랐다. 유일하게 더 잘 쓰고 싶었고, 남들은 어떻게 하나 궁금했다. 이론서를 사서 보기 시작하고, 한겨레문화센터니 한국방송작가협회 교육원이니 가서 수업을 듣기 시작했다. 독서 모임을 시작했고, 분석하면서 책과 드라마를 보기 시작했다. 최선을 다하진 않았을 진 몰라도 잘하고 싶다는 마음은 진짜였다.


  그래서였을까. 볼링 점수가 안 나올 때면, 당구 게임에서 질 때도 기분이 좋진 않지만 ‘아 또 졌네. 다음에 잘하지 뭐.’라는 생각이 들뿐, 아프진 않았다. 용기 내서 제출한 글이 가작에도 이름을 못 올릴 때면, 글이 안 써질 때면, 써놓고도 마음에 들지 않을 때면, 너무 맛깔나는 글을 볼 때면 아팠다. 나의 갈대 같은 의지와, 초등학생 같은 필력이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그동안 책을 뭐 하러 읽었나 하는 한심함 때문이었다.


  생판 남에게 싫은 소리를 들으면 기분은 나쁘지만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릴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사랑하는 이에게 싫은 소리를 듣고, 고백을 거절당하면 도저히 흘려보낼 수가 없다. 사랑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글을 쓸 거다. 답답하고, 불안하더라도, 서툴더라도 글을 쓸 수밖에 없다. 하루에도 수십 가지의 글감이 머릿속에 떠오를 만큼 사랑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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