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죠? 혹시 위치추적될까요? 자살을 기도한 듯한 정황이 있어서요.”
10월의 어느 날, 새벽 2시였던가. 고마웠노라고 정말 고맙지만 미안하다고. 난 더 이상 버틸 재간이 없다고. 불길한 예감이 잔뜩 드는 문자를 받는 순간, 나도 모르게 경찰서에 전화를 걸고 있었다. 안타깝게도 경찰은 직계가족이 아니고, 현장을 목격한 것이 아니라면 아무런 조치도 해줄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할 뿐이었다.
“늦은 시간에 미안한데... Y 연락되니? 아니면 집 전화라도... 문자가 왔는데 너무 불길하네...”
경찰조차 아무런 조치를 취해줄 수 없다는 말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지인들을 통해 그 아이와 연락을 시도해보고, 하다못해 집에 연락을 취해 부모님을 깨우는 방법뿐이었지만 그 마저도 아는 사람이 없었다.
문자를 받고 2시간이 넘게 여기저기 연락을 시도해보았지만 연락조차 되지 않거나 ‘아무 일 없을 거야, 별일 없을 거야’라는 희망 없는 대답만 돌아올 뿐이었다.
그렇게 나는 아무 일 없기를 기도하며 뜬눈으로 밤을 지새울 수밖에 없었다.
눈치가 없다 보니 누군가와 대화할 때 늘 항상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었다. 농담과 진담을 구분 못하고 혼자 흥분한 적도 있었고, 유쾌한 분위기를 썰렁하게 만들기도 했다. 하루아침에 고쳐지는 버릇은 아니라서 처음에 만나는 사람들과 쉽게 친해지는 것이 어려웠다. 그들이 말하는 의도를 파악하는 것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내가 사람들과 친해지는 방법은 나를 바꾸기보다 진지충 컨셉을 우직하게 밀고 나가는 것이었다. 농담조차 진담으로 받아들여 재미가 없을지언정 누군가가 진심으로 했던 말을 농담으로 받아들이고 한 귀로 흘리면서 남한테 상처를 준다거나 잘못을 되풀이하지는 않을 테니까. 고등학교 3학년, 수험생 주제에 문자 한 통을 받고 몇 시간을 여기저기 전화하면서 발을 동동 굴렀던 이유다.
Y를 만난 것은 모 소설 커뮤니티였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작가가 되겠다는 미련을 갖고 소설 커뮤니티에서 활동을 시작했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재미에 푹 빠져서 밤이면 밤마다 채팅방에서 살았다. Y는 그중 한 명이었고, 몇 번의 오프라인 모임을 거쳐 친해지게 되었다.
소위 글을 쓴다는 사람들, 글에 관심 있는 사람들은 대체로 감수성이 풍부한 편이라는 것은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중 적지 않은 사람들이 저마다 절절한 사연이 있어 일종의 도피처를 찾아온 사람들이라는 것을 나중에야 깨달았다. 자연스럽게 종종 화기애애하던 채팅방의 분위기는 누가누가 불행한가 내기하듯이 흘러가기도 했다.
Y도 종종 채팅방에서 정말 힘들다면서 자살하고 싶다는 얘기를 가끔씩 했었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으레 하는 이야기겠거니 생각하면서 적당한 위로로 마무리하는 식이었다. 진짜 자살한다던 사람들은 자살하고 싶다 말하지 않는다는 말처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는 않았던 것 같다.
돌아보면 10대 중후반, 20대 초반이 대부분인 상황에서 해결책을 제시해줄 수 있는 것도 없었거니와 각자의 구구절절한 사연 때문에 자신의 앞가림이 먼저였기 때문이라는 생각도 든다.
다만, 상대적으로 평탄한 삶을 살았던 나는 그 친구를 좀 더 챙겨줄 여유도 있었고, 또 그 과정에서 고맙다는 말을 듣거나 좋은 사람이라는 평을 들을 때면 일상에서 채워지지 않는 나에 대한 인정을 받는 기분이 들어 그 친구의 이야기를 더 많이 들어줄 수 있었다.
단순히 좋은 사람이 된 것 같아서, 되고 싶은 마음만은 아니었다. ‘그것이 그 친구의 마지막이라면?’이라는 상상을 해보니 도저히 그 친구의 이야기를 외면할 수 없었다. 정말 자살할 만큼 힘든 사람들은 사람이 없는 한적한 곳으로 떠나 조용히 자신의 삶을 마무리한다고 한다. 하지만 자살할 만큼 힘들다고 얘기하는 사람들은 실제로 자살하고 싶지 않아서 최후의 수단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괜찮다는 말, 잘하고 있다는 말, 따뜻한 한 마디를 기대한다고 한다. 실제로 자살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생활고 같은 문제도 있지만 주변에서 그의 애절한 몸부림을 외면한 끝에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경우가 많았다.
난 후자를 생각했다. 물론 내가 아무것도 해줄 수 없을뿐더러 당장 대학 입시를 준비해야 하는 고 3 수험생 입장이고, 얼굴도 몇 번 본 적 없는 동생이기 때문에 그 친구를 외면한다고 해서, 피상적인 위로만 건넨다고 해서 나를 욕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만약, 만약에 그 친구의 최후의 보루가 나였다면, 나조차 아무런 답장을 하지 않고 관심을 주지 않아서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면 과연 미래의 나는 아무렇지 않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대답은 아니었다. 그냥 주변에 알던 분이 돌아가신 것만으로도 적잖이 아파했던 내가, 나로 인해 누군가가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면 평생을 그의 죽음을 방관했다는 죄책감 때문에 살아갈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선택은 적어도 사람을 대할 때만큼은 후회하지 말자였고, 그 아이의 이야기를 가장 많이 들어주면서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게끔 많은 이야기를 건넸다.
고 3 수험생에 불과한 그 당시의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은 한계가 있었고, 어떤 얘기를 해주어도 그 아이에게는 다른 사람들의 피상적인 위로 이상으로 들리지 않았던 모양이다. 결국 그 아이는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했다.
불행 중 다행일까. 10층이 넘는 아파트에서 뛰어내렸지만, 나무에 걸려서 살아남았다고 들었다. 한참 뒤에 그 아이의 다른 친구로부터 너무 무서웠지만 도저히 견딜 수 없는 현실의 답답함 속에 뛰어내렸다고 하는데, 또다시 뛰어내릴 용기도 없고, 나무에 걸려 살아남은 것 또한 살아야겠거니 하는 운명이라고 받아들이고 열심히 살아보겠다고 전해 달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안도의 한숨을 쉬던 것도 잠시 우습게도, 자살 기도 이후 그 아이는 두 번 다시 연락하지 말라며 내게 욕을 바가지로 퍼부었다.
“신경 써주는 건 고마운데, 희망 고문하지 마세요. 어차피 다 똑같은 얘기고 나보고 더 노력하란 얘기잖아. 바뀌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데. 해결해 줄 수 없으면 그냥 무시하세요. 나도 더 이상 미련 갖고 싶지 않아요.”
그렇게 좋은 동생을 하나 잃었지만, 최선을 다해 노력한 만큼 내가 평생 짊어져야 했을지도 모를 죄책감 또한 덜어낼 수 있었기에, 당시의 내 선택에 후회는 없다. 서른 중반이 되었어도 여전히 특별한 능력이 생긴 것은 아니지만 똑같은 문자를 받는다면 또다시 어떻게든 해결하겠다고 난리를 칠 것이다. 그것이 눈치 없는 진치중의 방식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