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을 없애는 글쓰기(부제 : 사진 한 장으로 시작하는 글쓰기)
글쓰기를 어려워하는 가장 큰 이유가 소재와 주제 때문이라고 말했지만, 소재와 주제 못지않게 사람들이 어려워하는 요소가 있다. 이유(Why)다. 글쓰기의 시작은 나의 취향이라고 말할 만큼 나의 취향에 대한 이야기를 쓰는 것은 쉽고, 가장 재미있게 쓸 수 있다. 내가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을 나보다 잘 아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고, 나만 쓸 수 있는 가장 특별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막상 ~을 좋아한다, ~을 싫어한다고 호기롭게 시작했지만, 막상 이유를 설명하는 부분에서 막힌다는 것이다. 아마 글쓰기가 두렵고, 막막한 사람들은 구체적인 이유를 제시하지 못한 채 ‘그냥’이라고 뭉뚱그렸던 적이 있었을 것이다.
내 취향에 대한 이야기인데도, 내가 가장 잘 아는 이야기인데도 왜 사람들은 선뜻 이유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할까? 내 생각은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문제인 상명하복의 문화로 인해서 무조건 시키는 대로 해야 하는, 과정보다는 결과가 더 중요한 사회 분위기 때문에, 정답을 외우기 바쁘지 이유를 생각해본 경험이나 차근차근 설명해본 경험이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나 같은 경우는 부모님과 ‘왜?’라는 질문 때문에 자주 싸우곤 했다. 집에 있을 때 부모님께서 나를 부를 때나, 밖에서 전화를 거실 때면 나는 “왜?!”라고 되묻곤 했고, 그때마다 부모님은 “왜?라고 좀 하지 마! 이유가 있으니까 다 부르지.”, “전화한 사람한테 왜?라고 묻는 건 엄청 무례한 짓이다.”라고 혼나곤 했다.
단순히 전화할 때나, 부를 때뿐만 아니라 ‘왜?’라는 질문을 할 때마다 내가 무능력한 사람이 되거나 눈치 없는 사람이 되는 듯한 느낌을 받는 경우가 많았다. 명문대학교, 대기업을 왜 가야 하는가?, 하기 싫은 공부를 왜 해야 하는가? 같은 중고등학생 때의 치기 어린 질문은 세상 물정 모르는 철부지의 한심한 소리 취급을 받았고, 언어 영역을 공부할 때도 문학 작품에서 설명하는 주제나, 화자가 느끼는 감정들에 대해서도 충분한 이유를 설명하는 대신 ‘그냥 외워’라는 식이었다.
내 주장에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이유를 설명하는 일이 익숙하지 않고, 어려운 일인 것은 분명한 것 같다. 트위터에 한 유저가 세상에서 가장 쓰기 어려운 소설이 지원동기라는 글을 남긴 적이 있다. ‘돈 벌려고’라는 4글자를 300자, 500자로 길게 늘여 쓰다 보면 소설을 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사진이 잊을만하면 취업 커뮤니티에서 회자되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사람들이 지원동기라는 이유를 쓰는 일을 어려워하고, 어렵다는 말에 공감하기 때문이라는 뜻일 것이다.
취업준비생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대다수의 고등학생들이 특별한 이유 때문이 아니라 대학교에 가긴 가야 하니까 점수에 맞춰서 대학교와 전공을 선택하듯이 취업도 해야 하니까, 돈을 벌어야 하니까 자기소개서를 쓰다 보니 ‘돈 벌려고’라는 말 외에는 특별히 할 말이 없을 수밖에 없다.
인사 담당자들도 사람들이 ‘돈 벌려고’ 외에 회사에 지원하는 특별한 이유가 없는 현실을 모르지 않을 텐데 꾸역꾸역 지원동기를 묻는 이유는 무엇일까? 인사 담당자가 아니라 정답은 아닐지 모르겠지만, 연애에 비유하면 인사 담당자의 입장도 이해가 된다.
흔히 취업 준비 과정을 연애에 비유하고는 하는데 취업의 지원동기가 ‘돈 벌려고’라면 연애의 동기는 ‘외로워서’라고 요약할 수 있다. 비약이라고, 멍멍이 소리라고 생각한다면 당연하다. 많은 연인들이 속마음은 ‘외로워서’ 연애를 할지라도 ‘대화가 잘 통해서’, ‘함께 있으면 편해서’, ‘외모가 너무 내 이상형이라서’ 등등 아름답고 낭만적인 이유를 내세운다. 다시 말하자면 자기소개서에서 ‘돈 벌려고 지원했다.’는 말은 ‘외로우니까 오늘부터 연애하자.’고 고백하는 것과 다름없다는 뜻이다. 한 마디로 매력적이지 않다. 내가 아닌 그 누구라도 OK를 하면 연애를 할 것 같고, 연애를 하다가도 언제든 떠날 수 있을 것 같다. 쉽게 말해 그 사람의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 것이다. 대신 진부하더라도 ‘나여야만 하는 이유'를 나열하며 고백하는 사람이 좀 더 진정성이 느껴지고,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취업도 마찬가지다. ‘우리 회사여야만 하는 이유’를 그럴듯하게 설명하는 지원자가 더 매력적일 수밖에 없지 않을까?
단순히 진정성 때문만의 문제는 아니다. 사람들은 정보를 받아들일 때 무의식적으로 인과관계를 연결 지어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심리학자 대니얼 카너먼 교수의 실험에 따르면 바나나 사진과 구토 사진을 보여줬을 때 아무런 상관없는 사진인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바나나를 먹고 구토하게 되었다.’는 인과관계를 설정한다고 한다.
실험이 와닿지 않는다면 무표정한 얼굴로 돌부처라는 별명을 얻은 오승환 선수의 사진을 보자. 한 야구팬이 정리한 사진으로 언제 어떤 상황에서도 똑같은 표정인 오승환 선수의 사진을 나열하며 돌부처답게 포커페이스를 유지한다고 말한다. 야구를 잘 모르는 사람이 볼 때는 똑같은 표정으로 보이지만 작성자는 사진마다 다른 감정 상태라고 말한다. 각각 삼진을 잡았을 때, 안타를 맞았을 때, 우리 팀이 패배했을 때 등 오승환 선수가 처한 상황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 사진 역시 야구팬들 사이에서 널리 인기를 끌었던 게시물로, 그만큼 사람들이 똑같은 사진이라도 상황(이유)에 따라서 다르게 받아들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진뿐만이 아니다. 똑같은 날씨, 똑같은 음식, 똑같은 장소라도 이유에 따라서 얼마든지 다른 감정을 느낄 수 있다. 장마철에 연이어 비 오던 날의 비는 지긋지긋하지만, 계속되는 무더위 속에 모처럼 내린 비는 더위를 식혀주는 단비다. 제설 작업해야 하는 군인들에게 눈은 하늘에서 내리는 쓰레기지만 스키장을 찾은 연인들에게는 또 다른 추억이다.
김민철 작가는 ‘모든 요일의 여행’의 서문에서 ‘나는 여행을 좋아한다.’라는 문장을 ‘왜 나는 여행을 좋아하는가.’로 바꾸면 문장이 풍성해진다고 말한다. 실제로 ‘모든 요일의 여행’은 김민철 작가가 여행을 좋아하는 이유, 그녀가 여행지에서 만난 와인과 풍경, 노래와 사람, 숙소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 차 있다. 자칫 뻔하고, 식상한 얘기로 끝날 수 있는 여행 이야기가 무지개처럼 다양한 색깔로 펼쳐진 것이다.
여행을 좋아한다, 삼성전자를 다니고 싶다, 김치찌개를 먹고 싶다. 같은 이야기는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이다.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자신의 여행을 글로 쓴 사람, 자신의 여행 이야기를 글로 쓰는 사람은 적고, 글을 쓰는 사람 중에서도 그 글이 사랑받는 사람은 정말 드물다. 필력 자체의 문제도 있겠지만, 나는 가장 큰 원인이 글에 단순 설명만 있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앞서 말한 연구결과처럼 무의식적으로 인과관계를 상상하는 사람들의 특성상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이유 있는 행동에 끌리기 때문에 ‘그냥’이라는 글보다 ‘그뭔가 그럴 듯 한, 공감할 수 있는 이유가 있는 글에 더 몰입하는 법이니까.
정리해보자.
그리고 이유는 모티브와 소재, 주제를 하나로 엮어주는 연결고리 역할을 한다. 예를 들어서 똑같은 영화를 보고 책을 읽어도 어떤 사람은 지루하다고 느끼고, 또 어떤 사람은 박진감이 넘친다고 생각할 것이다. 설령 똑같이 박진감이 넘친다고 느껴도 누군가는 인생에서 가장 재미있는 영화로 영원히 기억하려고 하겠지만, 또 누군가에게는 ‘재밌었네’ 하고 흘려보낼 정도밖에 안 될 수도 있다. 똑같은 경험, 똑같은 변화라고 해도 전혀 다른 글이 나오게 만드는 힘이 바로 이유다. 내가 살아온 환경, 내가 생각하는 가치관, 나의 취향 등이 내 글을 특별하게 만드는 힘이 된다.
잊지 말자. 사진에 이유를 더하고, 내 이야기에 이유를 더 한다면 누구나 나만 쓸 수 있는 특별한 이야기, 흥미로운 글을 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