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을 없애는 글쓰기(부제 : 사진 한 장으로 시작하는 글쓰기)
“드라마 작가와 글쓰기 강사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글쓰기 스터디하면서 3년 동안 400편 정도 썼습니다.”
“우와 대단하시네요.”
퇴사 후 재취업을 포기하고 글쓰기를 업으로 삼겠다고 결심한 이후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마다 글을 쓰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꾸준히 썼다는 사실만으로도 대단하다고 칭찬해줬다.
글쎄. 정말? 대단하다고? 댓글을 찾아보기조차 힘든 그 글들이? 대단하다고 칭찬하면서 블로그 주소를 달라고 했던 사람들조차도 내 블로그의 글을 꾸준히 보지 않는데? 그 글들이 무슨 의미가 있다는 거지? 아 그 사람들을 탓하자는 얘기는 아니다. 다만 매니아틱한 글을 쓰는 주제에 독자에 집착하는 내 성격 때문에 끝없이 내 글을, 내가 글을 써온 시간을 의심하는 것뿐이다.
사람들이 글쓰기를 망설이는 이유는 글감이 없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막막함도 있지만 독자가 없거나 혹은 다른 이유로 글쓰기가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는 의심도 한몫한다고 생각한다. 몇 달 전까지의 내가 그랬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독자가 없는 글은 죽은 글이고, 아무 의미가 없는 낙서에 불과하다."라고 생각했다.
경영학과 출신의 고질병인지, 대기업 임원까지 지낸 아버지의 영향 때문인지 그도 아니면 둘 다 인지는 모르겠지만 세상에는 두 가지의 일이 존재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쓸모 있는 일과 쓸모없는 일. 쓸모 있는 일은 ‘돈’을 벌 수 있는 일 혹은 ‘돈’을 벌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만드는 일을 말한다. 쓸모없는 일은? 당연히 ‘돈’을 벌 수 없는 일 혹은 ‘돈’을 버는데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 일이다.
대기업 임원까지 오르셨기 때문일까. 아버지 역시 수익성을 기준으로 모든 일을 판단하는 경영학의 관점을 갖고 계셨다. 아버지의 관점에서는 미래의 소득을 위한 중고등학교의 시험공부, 대학교의 전공 공부, 과제 등은 당연히 쓸모 있는 일이지만 그 외의 모든 것들, 볼링동아리 활동이나 지방대를 간 내 고등학교 동창을 만나는 일, 무협 소설을 본다거나 TV 예능을 보는 일 따위는 쓸모없는 일이었다. 내가 무협 소설을 쌓아놓고 읽거나, 고등학교 동창들을 만날 때마다 못마땅해하셨고, 그때마다 입버릇처럼 “소설을 본다고 쌀이 나오냐 고기가 나오냐”, “그 친구들은 네 인생에 도움이 되지 않을 친구들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아마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한 번쯤은 비슷한 말들을 들어본 적이 있으리라 생각된다. 춥고 배고픈 시절을 겪은 부모님들 세대에서는 효율성이 절대 불변의 진리였고, 좋아하는 일, 하고 싶은 일을 고민하는 것은 사치였으니까. 당장 먹고살 수 있는 문제를 해결해야만 했으니까.
아버지의 주장에 100% 동의할 수는 없었지만, 돈이 아니더라도 모든 일에는 시간과 돈을 투자할 만한 가치가 있어야 한다는 주장에는 어느 정도 공감했다. 아버지는 쓸모없다고 말했지만 친구들과 볼링을 치면 스트레스가 풀리고, 무협 소설을 읽으면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었으니까. 그거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글쓰기는 달랐다. 대학교 입학 후 단과대 신문사에서 2년 간 13편의 신문 발행에 참여하면서 기사를 써왔지만 현타가 심하게 왔다. 아무도 우리 신문을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저 비 오는 날 우산이 없을 때 우산 대용으로 쓰고 지하철역까지 뛰어간다거나, 짜장면을 시켰을 때 바닥에 뭔가를 깔기 위해서 찾을 뿐이었다. 기사 쓰는 일 자체는 너무 재밌었지만, 동아리 방 한쪽 구석에 쌓여가는 재고를 보면서 글을 계속 쓰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었다.
학생들이 메이저 신문조차도 보지 않는 세상에서 단과대 신문을 꼬박꼬박 읽기를 바라는 것은 욕심이었을 수도 있겠지만, 매주 2회 10시간 넘게 아이템 회의를 하고, 기사 댓거리를 하고, 취재를 나가면서 만든 신문을 아무도 보지 않을 때면 괜히 우울해지는 것이었다. 한편으로는 아무도 보지 않을 만큼 내가 만든, 우리가 만든 신문이 보잘것없나 싶어 글쓰기를 업으로 삼을 수는 없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결국, 기자의 꿈을 포기했다.
글쓰기에 대한 미련을 버릴 수 없어 2017년부터 백글단이라는 스터디에서 다시 글쓰기를 시작했다. 2017년 8월 9일부터 2020년 4월 10일까지, 975일 동안 418편의 글을 썼으니 2.33일에 한 편 꼴로, 일주일에 3편씩 써온 셈이다. 한 달 혹은 두 달 동안 목표한 숫자의 글을 쓰는 미션을 수행하는 동안 미션을 달성하지 못한 친구들이 수두룩한 반면, 나는 단 한 번을 제외하고 미션을 달성했다.
“백 개의 글로 단단해지다.”라는 스터디의 목표를 무려 4배나 초과할 만큼 압도적으로 많은 글을 꾸준히 써 내려왔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매번 흔들렸다. 독자에 집착하던 나의 고질병이 도진 것이다. 여전히 내가 쓴 글에는 댓글이 거의 달리지 않았고, 피드백이 없으니 내가 잘하고 있는 건가?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흔들리면서도 꾸역꾸역 글을 써 내려가던 어느 날 문득, 재미있는 글을 읽게 되었다.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글을 쓰면서 스스로 단단해지고 돌아볼 수 있었다는 이야기였다. 내 글뿐만 아니라 스터디 전체적으로 서로 간의 피드백이 활발하지 않았기에 그분이 쓴 글에도 당연히 댓글은 거의 달리지 않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 있게 말했다. 글쓰기를 하면서 본인은 성장했고, 단단해지고 있다고.
충격적이었다. 독자가 없는데도? 아무도 내 글을 보지 않는데 무슨 의미가 있지?
아니다. 애초에 독자가 없는 글이 있다는 전제 자체가 잘못되었다. “처음부터 잘 쓰는 사람은 없습니다.”라는 책에서 이지혜 작가는 “나는 내 글의 첫 번째 독자다. 이것은 많은 작가들이 글을 쓰는 멋진 이유가 된다. 내가 읽고 싶은 글이 세상에 없어서 내가 쓴다. 남이 읽어주는 것은 그다음의 행복이다. 일단 쓰는 내가 느끼는 즐거움이 존재한다.”라고 말한다.
글 쓰는 과정이 마냥 행복하지는 않았지만, 전적으로 “내가 읽고 싶은 글이 세상에 없어서 내가 쓴다.”라는 이지혜 작가의 말에 동의한다. 내가 3년이 넘는 시간 동안 꾸준히 글을 쓸 수 있었던 이유는 책을 많이 읽어서도, 아는 것이 많아서도, 대단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저 케케묵은 감정을 토해내듯이 꾸역꾸역 써 내려갔을 뿐이었다. 아무도 공감해주지 않는,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는,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쌓여 있던 감정의 찌꺼기들을 토해냈을 뿐이었다.
처음 글을 쓸 때는 (중 2병스럽지만) 내 생각을 알아주지 않는 세상에 대한 열폭과 원망, 분노와 화가 가득했다. 항상 ‘하나만 걸려봐라’하고 벼르고 있던 한 마리 싸움꾼이었다. 글을 쓰면서 그 감정들을 토해낼 수 있었다. 음식을 잘못 먹었거나, 평소보다 많이 먹었을 때 한 차례 토해내고 나면 괜찮아지듯이 글을 쓰면서 한바탕 감정을 토해내고 나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독자가 없어서 스스로를 의심했다지만 막상 글을 써놓고 나면 소화가 안 될 때 사이다를 마신 것처럼 속이 후련했다. 드물게 누군가가 댓글이라도 달아주고, 좋아요라도 눌러주면 그야말로 재롱부리고 칭찬받는 아이처럼 설레곤 했다. 100편, 200편, 글을 쓰고 나니 주변에서도 자연스럽게 ‘날이 서 있다.’라는 말 대신 ’‘사람이 편해 보인다.’라고 해주기 시작했다. 30살에 어렵게 4대 보험이 가입되는 직장에 들어갔으나 8개월 만에 자의 반, 타의 반 퇴사한 내가, 선배, 친구들에 이어 후배들까지 하나둘 결혼하고, 아이 낳고 자리 잡아가는 모습을 보며 스트레스받던 내가, 스트레스를 안 받을 리 없었는데도 사람들은 보기 좋다고 했다. 글을 쓰지 않았다면 상상도 못 할 일이다.
앞서서 모든 글의 주제는 ‘변화’라는 단어로 요약할 수 있다고 말했다. 슬프게도 내 글을 보고 변화를 느낀 독자가 없을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글을 쓴 나만큼은 내가 쓴 글을 읽으면서 아주 조금이라도 변할 수밖에 없다. 내 안의 케케묵은 감정들을 토해내면서 때론 나 자신을 위로하고, 때론 칭찬하며, 혹은 채찍질하면서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간다. 그거면 충분하지 않을까?
독자가 없어서, 글쓰기의 의미를 찾지 못해서 고민하고 있는 당신에게 바친다. 쓸모없는 글은 없다. 적어도 글을 쓰면서 필자 본인은 조금씩 성장해 나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