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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종운 Dec 21. 2021

일상의 모든 것은 소재가 된다.

두려움을 없애는 글쓰기(부제 : 사진 한 장으로 시작하는 글쓰기)

   앞서서 글쓰기의 첫 단계인 모티브는 영원히 기억하고 싶은(혹은 되는) 특별한 순간이라고 말했다. 이번 글에서는 두 번째 단계인 소재에 대해서 알아보려고 한다.


   스피치 학원 제이라이프스쿨을 다닐 때 J라는 친구는 글쓰기와 스피치의 소재를 찾기 위해 지하철 2호선을 타고 한 바퀴 돌았다고 했다. 뭔가 특별한 소재를 찾아야겠다는 압박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J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소재에 대한 압박 때문에 글쓰기를 어려워한다. 


   우리가 매일 보는 신문이나 뉴스도 일상적이지 않은 소재를 다루고 있고, 출판된 책들도 보면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감히 할 수 없었던 퇴사를 과감하게 했다거나, 사하라 사막을 달렸다거나, 창업을 해봤다거나 하는 독특한 경험들이 주요 소재로 사용되고 있다. 하다못해 저자는 한 분야의 전문가로 인정받는 경험과 지식을 갖춘 사람들이다. 평범한 일반인인 내가 글을 써도 될까? 하는 두려움이 생길 수밖에 없다.


   잠시 글에 대한 이야기를 제쳐두고, 우리가 글쓰기의 출발점으로 잡았던 사진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내가 아는 사진 중에 ‘잘 찍었다’라는 소리가 절로 나오는 사진들을 떠올려보자. 각각의 사진에는 사진작가가 석 달 열흘을 한 스팟에서 기다리다가 결정적 순간을 포착한다거나, 혹은 정말 운이 좋게 우연히 천둥 번개가 치는 장면을 포착한다거나, 그도 아니면 열기구를 타고 하늘을 날며 찍는다거나 했다는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다. 사진을 잘 찍기 위해서라면 왠지 모르게 소위 ‘대포’라고 불리는 고가의 카메라 장비를 갖추고, 임팩트 있는 소재를 찾기 위해 노력해야만 할 것 같다.

출처 : 월간중앙 사람과 사람 기사 화면 캡처

   당연한 얘기지만 모든 사람이 고가의 장비로 사진을 찍고, 특별한 장면만 찍지는 않는다. SNS에 올라오는 사진을 생각해보자. 유명 사진작가들이 오랜 시간 공들여 찍고, 대포 카메라로 찍은, ‘오오오오 신기하다’는 말이 절로 나오는 사진들도 올라오지만,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 핸드폰으로 찍은, 밥을 먹고, 영화를 보고, 친구를 만나고, 산책하는 일상의 모든 것(What)들도 올라온다. 그리고 사람들은 소소한 일상을 담은 사진에도 얼마든지 좋아요를 누르고, 공유하며, 댓글을 남긴다.


   특별한 순간을 담은 사진은 문자 그대로 특별하다. 우리의 일상과는 거리가 멀다. 신기하긴 하지만 항상 공감되지도 않고 그 사진을 모른다 한들 내 일상이 크게 변하지 않는다. 반면 일상을 담은 사진들은 마치 내 얘기처럼 느껴진다. 새로운 맛집을 알게 되고, 산책하기 좋은 길을 알게 되며, 자취 생활의 꿀팁을 배울 수 있다. 굳이 특별한 소재를 고집할 필요는 없단 얘기다.


   2015년 네팔 해외 봉사에서 찍은 사진들을 추려 포토북을 만들 때도 마찬가지였다. 수천, 수만 장의 사진 중 일부를 추리기 위해 매일 정해진 주제로 30명의 팀원들이 사진을 찍고, 저녁때 숙소에 모여 투표로 사진을 골랐다. 친구들이 보내준 사진들 중에는 ‘어 이런 게 있었어?’ 싶은 특별한 소재도 있었고, 사진학을 전공하는 친구가 찍은 준전문가 수준의 ‘잘 찍은’ 사진도 있었지만, 핸드폰으로 찍은 ‘아 이런 게 있었지.’ 하는, 익숙한 소재들도 있었다.


   그중 S라는 친구가 찍은 쿡 팀의 사진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조명이 거의 없던 야외에서 저녁을 준비하는 사람들을 찍기 위해 핸드폰을 플래시까지 터뜨렸기에 사진의 기술적인 측면에서는 잘 찍은 사진은 아니었다. 하지만 우리는 거의 만장일치로 S의 사진을 포토북에 싣기로 결정했다. “쿡 팀은 히말라야 트래킹을 하는 동안 매일 우리보다 일찍 일어나서 얼은 몸을 녹일 수 있게 뜨겁게 끓인 보리차를 나눠주고, 아침을 준비해주었다. 트래킹이 시작되면 요리 도구와 식자재, 우리의 짐까지 짊어 메고 한발 먼저 움직여 점심과 저녁을 준비해주었고 우리가 숙소에서 편히 쉴 수 있게 도와주었다. 쿡 팀이 있어 히말라야 트래킹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라는 S의 이야기에 모두가 공감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네팔 해외 봉사’, ‘히말라야 트래킹’이라는 상황과 ‘쿡 팀’이라는 낯선 인물은 우리의 일상과 거리가 먼 특별한 소재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지만, ‘누군가를 위해 요리를 준비하는 장면’은 우리의 일상에서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혼자서 모든 식사를 해결할 때도 있지만, 부모님이, 배우자가 가족을 위해 요리를 준비하는 상황은 누구나 한 번쯤 겪기 때문이다.


   정리하자면 일상의 모든 장면들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피사체가 될 수 있다는 뜻이고, 좋은 글감이 된다. 굳이 글을 쓰기 위해서 소재를 찾으려고 특별한 경험을 하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소재라고 인식하지 못하는 일상의 모든 것들을 소재로 발전시키는 간단한 몇 가지 연습이면 충분하다.


[인증샷 남기기]


   많은 작가와 글쓰기 강사들은 글을 잘 쓰기 위해서는 ‘메모하기’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처음부터 긴 글을 쓰는 것보다 메모처럼 간단하게 기록하는 것은 부담이 적기 때문이고, 순간순간 떠오른 생각들을 메모의 형태로나마 기록해두지 않으면 금방 잊어버리기 때문이기도 하다.


   메모하기가 매우 유용한 방법이고 실용적인 방법인 것은 분명 하나 글쓰기가 익숙하지 않고, 낯선 사람들에게는 메모조차도 부담스러울 수 있다. 특히나 메모를 위해서는 종이와 펜을 항상 갖고 다녀야 하는데 핸드폰 하나만 들고 다니는 경우도 많은 디지털 시대에서는 비효율적인 방식처럼 보이기도 한다.


   글을 꾸준히 쓰고 있는 나조차도 ‘메모해야겠다.’라고 생각하다가도 귀찮아서, 메모할 펜과 수첩을 갖고 오지 않아서 등의 이유로 메모하는 습관만큼은 체화하지 못했다. 대신 나는 핸드폰의 카메라 기능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어 이거 글로 남기면 좋겠는데?’ 싶은 생각이 드는 순간순간마다 그 매개체가 되는 소재들을 사진으로 찍는 것이다. 하다못해 친구와 나눈 카카오톡 대화를 캡처해두기도 한다. 일명 ‘인증샷’이다.


   우리는 여행을 갔을 때, 맛집을 갔을 때, 최애 연예인의 콘서트를 보러 갔을 때 등등 많은 순간 인증샷을 찍는다. 인증샷을 남기면 굳이 문자로 기록을 남기지 않더라도 그 순간에 느꼈던 감정이나 떠오른 생각 등을 충분히 기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모은 인증샷들은 나만의 보물상자가 된다. 순간의 힘의 표현대로 ‘다른 사람들에게는 쓸모없는 잡동사니로 보이지만 당신에게는 무척 소중한 나만의 보물상자’다.


[오랫동안 관찰하기]


  메모하기와 함께 글쓰기 강의에서 가장 강조하는 기본적인 습관 중 하나가 ‘관찰하기’다.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라서 그런지, 다들 먹고살기 바빠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한 자리에 가만히 앉아서 관찰하는 일보다 바삐 걸음을 옮기고 핸드폰에 집중하는 사람들이 많다. 나 역시 그런 사람들 중 하나였다.


   관찰이 중요하다는 얘기는 많이 들었지만 정작 실천에 옮기지 못하던 중에 ‘권혁재의 핸드폰 사진관’이라는 책에서 매미 사진을 보게 되었다. 징그러운 외모와 꿈틀거리는 촉감이 영 별로라 곤충을 좋아하지 않아서 늘 흘려보내곤 했는데 사진 속의 매미는 참으로 아름다운 날개를 갖고 있었다. 얇고 고운 옷을 보면 매미 날개 같다고 하는 말이 이해가 되는 순간이었다.


권혁재 작가님은 한발 물러서서 오랫동안 보다 보면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인다고 말한다. 나무에 붙어 우는 매미는 우렁찬 울음소리만 들릴 뿐 쉽게 눈에 띄지 않는다. 매미 소리를 따라가 천천히 나무에 다가가 관찰해야만 매미의 아름다운 날개를 발견할 수 있다.

출처 : 권혁재의 핸드폰 사진관 中

   매미뿐만이 아니다. 드라마 미생에서 장그래는 세계지도를 보다가 PT의 틀을 깨는 발상을 떠올려서 대반전을 이뤄냈다. 무심코 흘려보낸 우리의 평범한 일상에서도 주의 깊게 관찰하다 보면 아버지의 주름, 어머니가 어깨에 붙인 파스, 우리를 위해 묵묵히 요리해주던 쿡 팀 등이 눈에 들어온다. 이 모든 것들이 훌륭한 글감이 된다.

[이상형 월드컵]


   열심히 인증샷을 남기고 관찰하다 보면 소재가 조금씩 쌓인다. 수업 시간에 너무 많은 범위의 내용을 다루다 보면 머릿속에 남는 것이 흐릿하듯이 소재가 너무 많아도 문제다. 정리가 잘 안 되거나 진부한 사실들의 단순한 나열이 될 수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명장면 월드컵’이다.


   과거 한 예능에서 ‘이상형 월드컵’이라는 코너가 방송된 적 있는데 여러 가지 후보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것을 고르는 방식이다. 이후 연예인 이상형 월드컵을 비롯해 음식, 영화, 특정 상황 등에 다양한 범위에서 이상형을 고르는 게임이 유행하면서 ‘이상형 월드컵’이라는 어플이 등장할 정도였다.


   명장면 월드컵은 여러 가지 후보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후보를 고르듯이 영화나 드라마의 여러 장면 혹은 우리의 일상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한 장면을 고르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무턱대고 리뷰를 쓰다 보면 리뷰라기보단 줄거리나 내용을 그대로 복사 붙여 넣기 하는 식으로 흘러갈 수 있다. 누구나 쓸 수 있는 뻔한 글이다. 우리의 일상의 글도 마찬가지다. 기억에 남는 단 한 장면을 고르고, 그 한 장면을 선택한 이유, 그 장면에서 느낀 감정, 새롭게 배운 것들에 대해 쓰다 보면 나만이 쓸 수 있는 특별한 글이 탄생하게 된다.

드라마의 한 장면 중 가장 기억에 남는 한 장면만으로도 얼마든지 글을 쓸 수 있다.

   영화나 드라마뿐만이 아니다. 하루 24시간 중에서도 우리가 인증샷을 남길 만큼 유독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 기분이 좋았든, 우울했든, 통쾌했든, 화가 났든, 특정 감정을 느끼게 되는, 잠자리에 들기 전에도 괜히 웃음이 나거나 이불을 걷어차게 되는 장면들이. 매일매일의 순간에서 그 한 장면을 고르는 연습을 하다 보면 나만의 특별한 이야기를 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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