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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종운 Oct 23. 2021

사진을 보기 전과 본 후 우리는 달라졌다.

두려움을 없애는 글쓰기(사진 한 장으로 시작하는 글쓰기)

 

  글쓰기의 첫 단계인 모티브는 특별한 순간(When), 두 번째 단계인 소재는 피사체(모든 것, What)이라고 말했다. 평범해 보이는 모든 것이 소재가 될 수 있는 이유는 우리로 하여금 특별한 순간을 기억하게 만드는 매개체가 되기 때문이다.


  이해하기 쉽게 소재가 되는 모든 것을 경험이라고 하자. 경험은 사람을 변하게 만든다. 물에 빠져 죽을 뻔했던 사람은 물을 두려워하게 되고, 사랑하는 이와 이별한 사람은 슬픔에 빠지고, 강의를 열심히 들은 사람은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된다. 우리가 겪는 모든 일상은 크든 작든, 물리적이든, 심리적이든 우리의 삶을 변하게 만든다. 바로 이 변화(How did I change)가 평범한 일상을 특별한 순간으로 바꿀 수 있는 이유고 글쓰기의 세 번째 단계인 주제다.


   많은 사람들이 글의 소재를 어려워하는 만큼 글의 주제를 어려워하는 경향이 있다. 뭔가 대단한 업적을 통해 세상을 놀라게 할 만한 인사이트가 있어야만 글을 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주제라는 것도 낯설고 부담스러운데 인사이트라고 말하니 더 어렵다고 느낄지 모르겠다. 우리가 글을 읽는 이유를 생각해보면 간단하다. 우리는 지식을 얻기 위해서 전공 서적과 논문, 교양 책을 읽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서 특정 분야의 책이나 설명서를 읽는다. 때로는 감정적으로 위로를 받기 위해서, 단순한 즐거움을 위해서 책을 읽기도 하고, 여행을 앞두고 여행 계획을 짜기 위해 책을 읽기도 한다. 이 모든 것들을 한 단어로 요약하면 바로 변화다. 큰 틀에서 보면 우리가 읽는 모든 글은 지식(정보)을 얻게 되고, 감정을 자극하고, 선택할 수 있게 되고, 문제를 해결하게 되는 이 4가지 범주 안에 있기 때문이다. 지금 쓰고 있는 이 글의 주제도 결국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이 [주제 = 변화라는 새로운 관점을 알게 되어 글쓰기를 두려워하지 않게 되는 변화]다. 할 수 있다. 주제를 변화라고 생각하면 주제라는 것이 조금은 쉬워지지 않았는가?


출처 : 교보문고 책 소개 페이지 캡처

  다만 주제를 변화라고 말을 바꿔도 변화나 내가 겪은 모든 경험이 여전히 추상적이고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뭐라고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다행스럽게도 우리에게는 사진이라는 아주 직관적인 매개체가 있다. 예를 들어서 강연을 들었다고 하자. 강연을 듣기 전과 강연을 듣고 난 후의 나는 분명히 달라졌다. 내가 새롭게 알게 된 지식이 있을 것이고, 답답한 상황에서 사이다 같은 해결책을 찾았을 수도 있다. 안타깝게도 강연 자체가 눈에 보이지 않는 만큼, 우리가 겪은 변화가 눈에 보이지 않을 뿐이다. 대신 강연이 끝나면 우리에게는 강연 포스터나 강연장에서 찍은 셀카, 강연자와 찍은 셀카, 프로그램북 등이 남는다. 바로 그 사진들이 훌륭한 매개체가 된다.

  사진을 직접 찍는 것은 아니지만 비슷한 맥락으로 영화를 보기 전의 나와 영화를 본 후의 내가 같을 수 없고, 이별 전 그녀와 함께 찍은 사진이 이별 후에 같을 수 없다. 김연수 작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불타는 다리를 건넌 셈이다. 두 번 다시 돌아올 수 없는 불타는 다리.

출처 : 구글 이미지 검색 불타는 다리

   소설가의 일에서 김연수 작가는 주인공이 반드시 불타는 다리를 건너야 한다고 말한다. 작법 이론에서 이야기가 전개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일련의 사건들이다. 부모님의 죽음, 자식의 죽음, 사기, 파산, 이혼 뭐 기타 등등 우리가 흔히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는 온갖 사건과 사고들을 겪으면서 주인공은 불타는 다리를 건너 변화한다. 쉽게 말하자면 ‘재미있는 글’이란 특정 사건을 계기로 주인공이 겪는 ‘변화’라고 할 수 있다.

드라마 안녕 나야 中

   드라마 안녕 나야를 예로 들면 호수고 이효리를 자처하며 세상에서 내가 제일 잘 나간다 믿었던 반하니는 차에 치일 뻔한 자신을 구하려다 아버지가 죽은 뒤 충격을 받아 좌절감 속에 하루하루를 무기력하게 살아간다. 그러다 과거에서 온 자신을 만나며 그 충격을 극복하고 자신감 넘치던 과거의 모습을 되찾는다. 정리하자면 드라마 안녕 나야는 반하니가 ‘아버지의 죽음’과 과거에서 온 나와의 만남’이라는 불타는 다리를 건너 변화하는 내용이다.


   과거에서 온 나와의 만남은 당연히 현실에서 존재하지 않는 판타지고 교통사고로 아버지를 잃는 경험도 흔한 경험은 아니다. 다행스러운 것은 소설이나 드라마를 쓰지 않는다면, 판타지스러운 거창한 변화에 대해 쓸 필요가 없다는 사실이다. 대신 우리가 갖고 있는 사진 한 장이면 충분하다. 사진 한 장에는 소소하지만 누구나 한 번쯤 겪을 법한 변화, 나에게는 특별하게 다가왔던 변화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여행 사진에는 여행을 가기 전 지쳐 있던 몸과 마음이 회복되는 변화가 있다. 음식 사진에는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배부르게 느끼는 변화, 사랑하는 이와 행복한 시간을 가졌다는 변화가 있다. 책, 강연, 강의 사진에는 내가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지식의 변화가 있다. 선물 받은 사진에는 선물 준 사람에 대한 감동이라는 변화가 담겨 있다. 혹은 새롭게 해보고 싶은 버킷리스트나 갖고 싶은 위시리스트가 변화할 수도 있다.


   사진은 있지만 무슨 말을 써야 할지 모르겠다면 사진에 변화를 더 해보자. 사진을 보기 전과 본 후, 아주 조금일지라도 당신은 분명히 달라졌다. 내 감정은 어떻게 달라졌는지, 내 관계는 어떻게 달라졌는지, 내 버킷리스트와 위시리스트는 어떻게 달라졌는지, 내 취향은 어떻게 달라졌는지, 내 계획은 어떻게 달라졌는지 한 번 써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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