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종운 Jan 20. 2022

게임에 열광하는 이유

  “아이들이 왜 게임에 열광하는지 아세요?”

   한창 취업 준비를 하면서 면접을 보러 다니던 시절, 모 과외 회사에 면접을 보러 갔을 때 담당 팀장님한테 들었던 질문이다. 한창 공부에 집중해야 하는 학생들에게 게임은 보통 만악의 근원처럼 여겨진다. 의외였다.

  

  대부분의 부모님, 선생님들은 학생들이 게임을 못하게 만들려고 하고 학생들은 어떻게든 어른들의 눈을 속이고 오락실에서, PC방에서, 친구 집에서 문제집 대신 게임에 빠져들려고 기를 썼다. 당연히 과외 업체에서도 ‘게임은 무조건 나쁘다.’고 생각할 줄 알았는데 “게임을 왜 할까?”라는 본질적인 질문을 들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아무래도 학생들이 가장 큰 관심사 중 하나가 게임이니까 우리도 신경을 많이 쓰고 있죠. 정확한 통계 자료나, 연구 결과가 있는 건 아닌데 나름 이유를 찾았어요. 게임은 내가 잘하고 있는지, 못하고 있는지 피드백이 빨라요. 성공과 실패가 명확하고, 노력한 만큼 보상도 확실하죠. 하지만 시험은 아무래도 게임보다는 느리죠. 잘하고 있는지 못하고 있는지도 잘 모르겠고. 아이들이 게임에 빠질 수밖에 없겠더라고요.”


  몇 년 전 일이라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대략 이런 식의 답변이었다. 나도 중고등학교 때는 한창 게임에 빠져 있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친구들과 가끔 PC방을 갈 때나 즐기는 정도로 게임에 대해서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넘겼다. 특히나 연이은 자기소개서 광탈과 면접의 쓴맛 때문에 하나하나 신경 쓸 여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얼마 전 스터디원들과 ‘순간의 힘’이라는 책을 읽고 발표 준비를 하면서 팀장님의 게임 이야기가 떠올랐다. 저자인 칩 히스, 댄 히스 형제는 결정적인 순간을 창조해서 사람들이 행동을 변화하도록 유도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결정적 순간은 크게 고양, 통찰, 긍지, 교감의 4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그중에서 긍지의 순간이 놀라우리만큼 게임과 닮아 있었다.


  저자들은 ‘내가 나이길 잘했다고 믿는 순간’ 사람들이 긍지를 느낀다고 말한다. 긍지를 느끼는 방법은 간단하다.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서 일정한 성과를 얻으면 된다. 중요한 건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이 우리의 역량을 알아봤을 때’ 긍지를 느낀다는 것이다. 


  스스로 성과에 만족하고 긍지를 느끼면 좋겠지만 평범한 우리가 열심히 공부했다는 사실만으로 긍지를 얻기는 어렵다. 보통 명문대에 입학하고, 대기업에 입사하는 성과, 스포츠 선수가 프로팀에 입단하는 정도의 성과가 있어야 ‘아 나 성공했다.’라고 느끼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명문대 입학도, 대기업 입사도, 프로팀 입단도 내가 열심히 노력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담당자들이 내 역량이 충분하다고 인정할 때 비로소 입학도, 입사도, 입단도 가능하다. 타인의 인정이 필요한 것이다. 물론 뉴턴이나 아인슈타인 같은 천재라면 ‘내가 이런 위대한 물리학의 발견을 해냈다.’라는 학문적 성취감으로 만족할 수도 있겠고, 피카소처럼 ‘내가 위대한 예술을 완성했다.’라는 예술적 성취감으로 만족할 수도 있겠지만 슬프게도 우리 대부분은 평범한 일반인들이다. 타인의 인정이 필요하다.


  긍지의 순간을 만들기 위해서 저자는 크게 3가지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내 노력을 인정해주는 환경을 조성하고, 레벨업할 수 있는 구체적인 이정표를 설정한 후, 서로에게 용기를 주는 동료를 모집해야 한다는 것이다. 게임을 좀 해본 사람들이라면 눈치챘을지 모르겠지만 게임에서는 가장 기본적인 시스템으로 구축되어있는 요소들이다. 안타깝게도 학교나 회사, 프로팀 등 많은 조직에서는 이런 시스템이 갖춰져 있지 않다.


  물론 스스로 목표를 설정하고, 열심히 노력하면서 긍지를 느낀다면 가장 좋겠지만 쉬운 일이 아니다. 저자는 그 근거로 사람들이 직장 생활에서 가장 큰 동기부여로 ‘직무 완수에 대한 합당한 인정’을 원한다는 연구 결과를 제시했다. 연구 결과를 요약하자면 80% 이상의 관리자가 부하 직원들의 업무 결과에 대해 충분히 칭찬했다고 스스로 생각하지만 20%도 안 되는 직원들만이 관리자들이 ‘가끔’ 이상으로 직무 결과에 대해 감사 인사를 표현했다고 답했다고 한다. 그만큼 많은 직장인이 ‘충분한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느낀다는 뜻이다. 실제로 한 설문 결과에서는 ‘합당한 인정과 칭찬이 부족해서’ 직장을 그만둔다는 답변이 가장 높았다고 한다.

출처 : 잡코리아&알바몬 직장인들 대상 퇴사 이유 설문조사 결과

  한국 사회에서도 MZ 세대의 높은 퇴사율이 이슈가 되고 있는데 설문 조사 결과를 보면 주로 ‘만족스럽지 못한 급여’와 ‘상사의 잔소리’, ‘적성에 맞지 않는 업무’ 등이 이유라고 한다. 책의 표현을 빌리자면 만족스럽지 못한 급여는 직무 성과를 인정받지 못했다고 느낀다는 뜻이고, 상사의 잔소리는 칭찬을 듣지 못했다는 뜻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직장 생활뿐만 아니라 시험공부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학창 시절에 성적으로 칭찬받은 경험과 질책받은 경험을 비교해보면 압도적으로 칭찬받은 경험이 드물 것이다. 에서 2등 하면 왜 1등을 못 했냐고 혼나고, 반에서 1등 하면 왜 전교에서 1등을 못 했냐고 혼나고, 99점을 받으면 왜 100점을 받지 못했냐고 혼난다는 인터넷에 떠도는 이야기가 씁쓸한 웃음을 자아낸다는 것은 그만큼 공감하는 이들이 많다는 뜻일 것이다. 


  게임은 다르다. 성과에 대한 보상이 매우 명확하다. 내가 노력한 만큼 레벨업을 하게 되고, 전에는 쓸 수 없던 강력하고 화려한 스킬을 쓸 수 있고, 잡을 수 없던 몬스터를 잡게 되며, 더 많은 아이템을 얻을 수 있다. 게다가 높은 레벨의 고수로 인정받게 되면 사람들이 영웅처럼 떠받들어 준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했는데 아무리 열심히 공부하고, 프로젝트를 마무리해도 칭찬받지 못한다면 내가 노력한 만큼 인정받을 수 있는 게임에 열광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구글 검색 : 오버워치 동료 추천

  게임에 열광하는 두 번째 이유는 게임은 매우 짧은 시간 안에 성과를 확인할 수 있고, 보상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오버워치, 베틀 그라운드 같은 FPS 게임 한 판을 플레이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보통 짧으면 10분 내외이고 스타크래프트 같은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도 30분에서 길어야 1시간 남짓이다. 물론 RPG 같은 게임이야 정해진 시간은 없지만 레벨업과 퀘스트 같은 미션들을 단계별로 수행하게 되어 있다. 게임은 짧은 시간 안에 게임에서 승리하고, 레벨업을 통해 보상을 받을 수 있다는 의미다. 

출처 : 구글 검색 오버워치 전리품 상자

  반면 보통 월급을 받는 직장에서는 한 달이 지나야 금전적 보상이 들어오며, 금전적 보상이 아니더라도 프로젝트에 따라서 몇 달, 몇 년씩 지나야 성과를 가늠할 수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공부도 쪽지 시험 같은 것도 매일 보지만 기본적으로 1학기, 2학기 중간고사와 기말고사처럼 일 년에 기회가 몇 번 없다. 그마저도 고등학생 때는 수능 시험까지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라는 압박에 시달려야 한다. 대학교 입학 후 끝난 줄 알았으나 대학생 때도 마찬가지다. 입사든, 전문 자격증 시험이든 합격할 때까지 역시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저자는 ‘인생을 레벨업 하라’는 책을 인용해 실제로 게임처럼 중간중간에 이정표를 설정하고 적당한 보상을 줄 수 있어야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고 말한다. 많은 사람들이 ‘스페인어를 배운다’, ‘바이올린을 연주한다.’, ‘2020년까지 200억 달러 수익을 달성할 것’ 같은 추상적인 목표를 세운다. 추상적인 목표는 우리가 가야 할 방향을 제시할 수는 있지만, 그 과정에서 ‘내가 잘하고 있는 건가?’라는 의문을 해결해주지는 못한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내비게이션 없이 운전하고 있다고 생각해보자. 부산은 가야겠지만 얼마나 남았는지, 방향은 제대로 가고 있는지 확인할 길이 없다면 매우 답답할 수밖에 없다. 답답한 마음을 떠나 주유를 제때 못해서 도로 한가운데에서 차가 멈출 수도 있고, 최악의 경우에는 부산이 아니라 목포라는 엉뚱한 목적지로 가 있거나, 제시간에 도착하지 못할 수 있다. 제시간에 마음 편하게 도착하기 위해서는 내비게이션을 통해 제대로 가고 있는지, 거리는 적당히 남았는지를 체크하면서 미리 주유도 할 수 있어야 한다. 


  공부도 마찬가지다. 스페인어를 예로 들자면 회계 부서에서 일하는 스페인 사람 페르난도와 스페인어와 일상 대화하기라는 최종 목표를 설정할 수 있다. 저자는 이때 ‘스페인어 공부하기’ 같은 추상적인 방법이 아니라 스페인어의 난이도에 따라 중간 이정표를 설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Lv1 스페인어로 식사 주문하기. Lv2 스페인어를 하는 택시 운전사와 간단한 대화 나누기, Lv3 스페인어 신문을 보고 하나 이상의 제목 이해하기, Lv4 스페인어 만화 보기, Lv5 스페인어 유아용 책 읽기 등으로 레벨을 쪼개서 하나하나 달성하면 보다 재미있고, 즐겁게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는 뜻이다.


  저자에 따르면 회사에서도 고객 만족도 20% 증가 같은 목표가 있다면 구체적으로 단계를 쪼개야 한다. 예를 들어 서비스에 만족한 고객으로부터 따스한 감사 인사받기, 7점 만점 고객 만족도 조사에서 일주일 간 1점짜리가 하나도 없기, 지난달 만족도 조사에서 접수된 가장 심각한 고객 불만 해결하기, 목표의 절반 지점에 도착, 고객 만족도 10% 향상하기 등으로 나눌 수 있다는 것이다.


  게임에는 이미 이 모든 과정들이 녹아 있다. ‘레벨’이나 ‘스테이지’라는 중간 이정표가 세분화되어 있고,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 필요한 활동, 예를 들어 더 많은 게임에서 승리한다거나, 일정 숫자의 몬스터를 사냥한다거나 하는 정확한 가이드라인이 제시된다. 레벨에 따라 입장할 수 있는 경기장이 달라진다거나, 내 캐릭터의 능력치가 달라지는 등 보상도 확실하다. 

출처 : 구글 검색 바람의나라 초보자사냥터/흉가 이미지 캡처

  보상도 불충분하지만 단순히 ‘공부를 열심히 한다.’, ‘교과서 위주로 공부한다.’. ‘예습과 복습을 철저히 한다.’ 같은 추상적인 목표가 난무하는 입시 공부가 재미있을 리가 없다.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모의고사, 쪽지 시험 등의 이정표 비슷한 것들이 있지만 점수만으로는 내가 잘하고 있는지, 못하고 있는지 확인하기 어렵다. 전체적으로 시험 난이도가 쉬워서 점수가 높았을 수도 있고, 내가 실수를 해서 점수가 낮았을 수도 있고, 얼마나, 어떻게 더 공부해야 성적을 올릴 수 있는지 정확히 알 수도 없다.


  회사에서 진행하는 프로젝트는 더 심각하다. 추상적인 목표도 문제지만 그나마 있는 진행 과정의 이정표도 이해하기 어렵다. ‘느낌적인 느낌, 우아하면서 고급지고, 전통의 맛을 살리면서 대중적인 디자인 하나 뽑아봐’ 같은 업무 지시를 전달받으면 멘탈이 나가기 십상이다. ‘알아서 해봐’라고 해서 내 느낌대로 구성했더니 ‘왜 묻지도 않고 네 맘대로 하냐?’ 같은 면박이 돌아오고, 물어보면 ‘일일이 하나하나 설명해줘야 하냐’는 상사의 한 마디는 마치 끝나지 않는 뫼비우스의 띠 같다. 회사 일에서 무기력해지기 쉬운 이유다. 오해하지는 말자. 모든 회사가 이렇게 두리뭉실하게 업무를 진행한다는 뜻은 아니다. A부터 Z까지 단계별로 시스템이 갖춰진 게임에 비해 회사에서는 내가 잘하고 있는지 중간 점검을 하기 어렵다는 뜻이니까.

출처 : 구글 검색 직장인 뫼비우스의 띠

  이정표가 중요한 이유는 단순히 내가 잘하고 있는지 체크하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저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게임에서 마지막 스테이지까지 가기 전 중간 스테이지를 클리어할 때마다 보상을 받듯이 이정표를 거쳐 갈 때마다 긍지와 자부심을 느끼고,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는 새로운 에너지를 충전할 수 있다.

  나에 대한 인정과 목표를 향해 가는 과정 사이에 놓여 있는 이정표 다음으로 저자는 나를 지지하는 주변 사람들의 힘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누군가가 나를 지지한다는 것은 내 성과에 대한 주변 사람들의 인정과는 또 다른 의미다. 도전할 수 있는 용기를 주기 때문이다. 새롭게 창업을 한다거나, 위험에 처한 누군가를 돕는다거나, 스포츠 데뷔전을 치르는 신인 선수처럼 새로운 도전을 하는 대부분의 경우 인정받을 만한 성과를 갖고 있을 리 없다. 거창한 도전이 아니더라도 남들 앞에서 처음으로 발표를 한다거나, 무리한 부탁을 거절한다거나, 새로운 요리를 시도한다거나, 남들과 다른 메뉴를 시키는 행동들도 마찬가지다. 아직 결과를 모르기 때문에 사람들은 마음 한구석에 불안감을 갖고 있고, 행동하기를 주저한다. 

출처 : 구글 검색 이한열 열사/1987 6월 항쟁

  부조리한 상황에서 침묵을 지키는 사람들 대부분도 마찬가지다. 두렵기 때문에 기득권, 이미 정해진 질서에 의문을 제기하려고 하지 않는다. 다행스럽게도 항상 침묵했던 것은 아니었다. 결정적인 순간 사람들은 부조리한 악습을 깨기 위해 뭉쳤고, 신분 제도, 인종 차별 등과 같은 부조리한 제도들을 바꿔 왔다.


  책에 등장하는 1960년의 흑백분리 정책에 항의하는 내슈빌 연좌 시위도 마찬가지다. 성공적인 흑인 인권 운동을 위해 감리교 목사인 로슨과 루이스, 내시 등은 철저하게 준비를 했다. 시위 현장의 돌발 사태를 대비해 학생들에게 시위 장소인 식당에서 어떻게 질서를 유지할 것인지, 옷차림은 어떻게 입을 것인지, 화장실을 갈 때 대타를 세우는 방법 등에 대해서 학생들에게 미리 가르친 것이다.


  인종차별뿐만 아니라 여러 시위 현장의 경우 강경 진압을 시도하는 경찰과 흥분한 시위대가 충돌하면서 유혈 사태로 번지기도 하고, 의견을 전달하려던 시위의 본질이 흐려지는 경우가 많다. 다행스럽게도 내슈빌 연좌 시위에 참여한 사람들은 질서 정연하게 행동했고, 돌발 사태 없이 식당에서의 흑백분리 정책을 폐지하도록 하는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고 한다.


  지금이야 상상도 하기 힘든 일이지만 식당에서 흑인에게는 아예 음식도 내놓지 않던 시절, 흑인들이 그들의 권리를 주장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부정적인 백인들의 시선뿐만 아니라 경찰들과도 싸워야 했기 때문이다. 최근에도 경찰들의 과잉 진압이 논란이 되고 있는데 그 시절에는 훨씬 더 강경했을 것이다. 두려울 수밖에 없는  ‘흑백 분리 정책을 반대한다.’라며 연좌 시위는 시위대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성공할 수 있었다.


출처 : 구글 검색 마틴 루터 킹 목사


  누군가는 학생들을 이끄는 로슨이나 루이스처럼 여론을 이끄는 사람은 특별한 존재고, 따로 있다고 말할지 모르겠다. 세상을 움직이는 순응하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오리지널스라는 책에 따르면 놀랍게도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는 연설로 흑인 인권 운동의 대표 주자로 잘 알려진 마틴 루터 킹 목사조차도 처음부터 무대에 설 생각은 없었다고 한다. 1955년 버스에서 백인에게 유색인 지정석을 양보하지 않은 혐의로 로자 파크스란 사람이 재판을 받게 되자 민권 운동가들이 모여 버스 탑승 거부 운동을 벌이기로 결심했고, 참석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 킹 목사를 협회장으로 추대했다. 킹 목사는 한 회고록에서 “충분한 시간이 있었다면 그 자리를 고사했을 것이다.”라고 말했을 정도로 전면에 나서고 싶어 하지 않았다. 하지만 만장일치로 지도자로 선출되고, 워싱턴에서 열린 대행진의 마무리 연사로 추천받고, 또 열렬한 지지를 받으면서 킹 목사는 생각을 바꿔 무대에 섰고 우리가 아는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라는 위대한 연설이 탄생할 수 있었다.


  용기가 필요한 건 부조리에 저항할 때뿐만이 아니다. 내 생각이 옳을까? 내 행동이 괜찮을까? 사람들은 늘 고민하면서 행동하기를 주저한다. 때로는 과거의 트라우마나 마약 중독 같은 일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주저앉는다. 내 소신껏 내 생각을 말하고, 행동으로 옮기는 일, 트라우마 속에서 흔들리는 가운데 버텨낸다거나 마약 중독을 극복하는 일들은 또 다른 긍지의 순간이 될 수 있다, 개인의 용기, 의지도 중요하지만 나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덕분에 용기를 낼 수 있고, 긍정적인 변화를 향해 나아갈 수 있다. 나 같은 경우에도 함께 하는 친구들이 있었기에 고소공포증을 극복하고 바이킹을 탈 수 있었고, 작가라는 꿈을 응원해주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과감하게 퇴사하고 스피치 무대에 연사로 오를 수 있었다.


2019년 1월 이그나이트 청춘


  게임은 단언컨대 압도적으로 나를 지지하는 시스템으로 구성되어 있다. 오락실 게임기 앞에서 열심히 게임을 하고 있는데 옆에서 누군가가 최종 스테이지, 소위 말하는 끝판왕에 도전하는 상황을 상상해보자. 누군지도 모르는 그 사람이 괜히 끝판왕을 깼으면 하는 마음으로 사람들이 응원하는 모습이 떠오르지 않는가? 오락실 게임뿐만 아니다. 오버워치나 베틀그라운드 같은 팀 단위로 진행되는 게임에서는 ‘승리’라는 공통의 목표를 위해 협력해야 한다. 혼자 진행하는 RPG 게임에서도 퀘스트 등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그룹 단위로 함께 플레이할 때가 있다. 어떤 게임이든 내가 이기기를 바라는 사람들, 응원하고 도움을 주는 NPC 같은 사람들이 늘 존재한다는 뜻이다.

출처 : KNN 최강 1교시 중 김경일 교수 편

  반면 현실은 어떤가? 나를 지지하고 응원하는 사람보다 비난하고, 질책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 주눅 들고 위축 들게 만드는 사람들 속에서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다고 기대하는 것은 넌센스다. 공부보다, 회사 일보다 게임이 더 재밌고, 게임에 빠져들 수밖에 없는 이유다.


  게임에 몰입하라는 것이 아니다. 게임의 피드백 시스템을 학습과 업무에 접목하자는 것이다. 아주대학교 심리학과 김경일 교수도 게임의 피드백 시스템을 활용하면 나와 그 사람 사이의 관계가 긍정적으로 개선되고, 더 나은 성과를 내기 위해 노력할 수 있다고 말한다. 핵심은 게임 그 자체가 아니라 피드백이다. 김경일 교수는 게임조차도 레벨업, 점수, 순위 표시 같은 피드백이 없다면 노동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반대로 말하면 적절한 피드백만 받을 수 있다면 노동 같은 힘들고, 지루한 활동들도 얼마든지 즐겁게 할 수 있다는 뜻이다.


   사람들이 열광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무조건적으로 게임하는 사람들을 비난하기보다는 왜 사람들이 열광하는지 한 번쯤은 생각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작가의 이전글 백 개의 글을 쓴다고 뭐가 달라질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