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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종운 Jan 11. 2022

백 개의 글을 쓴다고 뭐가 달라질까?

그 날의 기억들

  2017년 8월부터 2022년 1월인 지금까지 꾸준히 글을 써왔지만, 부끄럽게도 글을 쓰면서 늘 흔들렸다. 초창기에는 여전히 자기소개서가 광탈하고 있었고, 어렵게 면접 기회를 잡고도 패배의 쓴맛을 봐야 했기 때문이다. 악플보다 무플이 무섭다는 말을 굳게 믿는 나라서 원하는 만큼의 댓글과 피드백이 없는 현실 속에서 내가 계속 글을 써도 될까? 라는 질문을 계속 던져야만 했다.


  100개의 글을 쓰면 단단해진다는 캐치프레이즈를 내세우는 백글단이지만, 난 전혀 단단해지지 않았다고 느꼈다. 300개의 글을 채웠을 때는 “잘 모르겠다. 솔직히 이만큼 썼으니 그만 쓸까? 이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라는 생각도 들어서 백글단 모임을 그만둘까도 생각했다.”라는 고백을 남기기도 했다. 다만, 백글단을 그만둔다고 하더라도 글은 계속 쓸 거 같아서, 계속 써보기로 했었다. 300개, 400개, 500개, 1000개 더 쓰다보면 나아질 거라는 믿음으로.


  400개의 글을 채운 다음에도 딱히 나아진 것 같진 않았다. “어느 날은 계속 글을 쓸 수밖에 없다는 근자감에 취해 있다가, 신도 없는 현실에서 ‘운수 좋은 날’ 기분에 취해 삽질을 하고 있는 건가?”라는 자괴감에 빠져 있다고 고백했다. 문자 그대로 ‘글을 썼으니 조금은 변했겠지, 조금은 의미가 있겠지, 언젠가 도움이 되겠지’라는 지푸라기를 잡으면서 써왔고, 쓰겠다며 흔들리는 나를 다잡았다.


  정말 아무 의미가 없었을까? 100개, 200개, 300개, 400개로는 부족할까? 누군가가 100개의 글을 쓰고 난 다음의 나를 상상하며 글을 쓰겠다고 말한 글을 보고, 내가 쓴 100번 째 글로 되돌아가봤다.


  “2017년 8월 9일 첫 글을 시작으로
163일 동안 100개의 글을 썼고, 258개의 댓글을 달았다.
5번 모두 목표를 달성하면서 상으로 5개의 상장과 5권의 책을 받았으며,
태어나서 처음으로 목표했던 수치를 채웠던 경험이기도 했다.
맨 처음 시작했던 웹 소설은 프롤로그 포함해서 3편 만에 끝났지만,
기획 사례나, 역사 이야기, 책이나 영화 리뷰처럼 써보고 싶었던 이야기들,
묻어두었던 과거의 기억들, 최근의 인상적인 기억들을
돌아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어혈 편에서도 얘기했지만, 글을 쓰면 쓸수록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
쓰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다.
글쓰기에 대한 관심이 증가했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매순간순간 떠오르는 이야기들이 너무도 많기 때문이다.”


  “100개의 글을 채운 지금, ‘글쓰기를 업으로 하겠다.’라는 나의 새로운 목표와 함께 2라운드를 시작해보려 한다.”

  약간 100개라는 숫자에 끼워 맞춘 느낌은 있지만, 100편 가까이 썼을 무렵 나는 글쓰기를 정말 좋아하고,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잘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내가 좋아서 써 내려갔고, 잘 쓰진 못 했어도 누구보다 빨리, 많이 썼으니까. 댓글 하나, 모임에서 나눈 피드백에 설렜던 건 덤이다.


  200편을 쓴 다음에는 여전히 조금은 단단해졌을까? 스스로를 의심하면서도 200편이 넘는 글을 써온 덕분에 ‘자신 있게 이거다! 싶은 글을 사람들에게 보일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고 고백했다.


  잊고 있었다. 당장 눈앞에 출판물이나 공모전 수상 같은 가시적인 성과가 없다는 이유로, 글을 썼던 덕분에 조금씩 성장했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의심했고, 부정했다. 


100번째 글에서 글쓰기를 업으로 삼겠다고 다짐했고, 

140번째 글을 쓸 때는 취업에 성공했고, 

253번째 글을 쓰면서는 이그나이트 청춘이라는 무대에서 내 이야기를 전했다.

 277번째 글을 쓰면서는 골든마이크 시즌 8에 도전했고,

 286번째 글에서는 나를 믿게 되었다고 고백했으며,

 393번째 글에서는 두려움을 없애는 글쓰기라는 글쓰기 강의안의 뼈대를 잡기 시작했다.


  이제는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100개의 글을 채우고 나면, 방향성이 보인다. 만일 나처럼 100개의 글을 쓰는 동안 재미있게 해왔다면 계속 글을 쓸 것이다. 재미가 없고, 글 쓰는 게 힘들었던 사람이라도 적어도 글쓰기가 이전처럼 막막하거나 두렵지 않아질 것이다. 무엇보다 가장 큰 수확은 우리가 쓴 100개의 글에 담긴 소재와 우리가 느꼈던 감정을 통해 우리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는지 알 수 있다는 사실이다. 앞으로 내가 살아갈 길에 대한 나침반이다. 


  이만하면 글 쓸 이유는 충분하지 않을까? 이 글은 백글단이라는 글쓰기 스터디에 대한 일종의 후기다. 글을 쓰면서 늘 흔들렸던 내가 글을 쓰면서 어떻게 바뀌었는지 고백하는 글이기도 하다. 꾸준히 글을 쓴다는 것에 대해서 무슨 의미가 있을까?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바친다. 일단 100개를 채우고 나면 분명히 달라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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