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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종운 Jan 27. 2022

10년 만의 사과, 어른의 품격

그 날의 기억들

  내가 태어날 무렵 Y 이모가 미국으로 이민 간 탓에 단 한 번도 Y 이모와 명절을 함께 보낼 수 없었다. Y 이모에게 세배를 드려본 적도, 이모 아들인 사촌 동생 J와 함께 절을 하고 윷놀이를 해본 적도 없었다. 2018년 설에는 마침 Y 이모와 J가 함께 들어와서 무려 30년 만에 온 가족이 함께 모여 설을 보낼 수 있었다.


  주방, 거실 할 것 없이 잔칫집 마냥 북적북적한 모습은 생전 처음이었다. 다들 정말 즐겁게 놀았다. ‘아 이래서 피가 물보다 진하다고 하는구나.’ 느낄 만큼.


  한참을 재미있게 놀던 중에 문득 정훈이가 당장 내일 저녁(17일) 비행기로 떠난다는 얘기를 들었다. 아뿔싸. 당연히 며칠 더 여유가 있겠지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만 1일도 채 안 남았다니. 그야말로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부랴부랴 적당한 놀 거리를 찾다가 야구를 좋아하는지 물어보고 스크린야구를 하러 가기로 했다. 다행히 외가댁에서 멀지 않은 곳에 스크린야구장이 있길래 바로 택시를 타고 날아갔다.


  막내사촌 동생인 W까지 함께 해서 한 20분 쯤 즐겼을까. 갑자기 S 이모에게 전화가 왔다.


  “이모부가 정훈이가 내일 가는 거 몰랐대. 꼭 해줄 얘기 있다고 하니까 야구장 어딘지 위치 좀 찍어서 보내줘.”


  바로 막내 이모부께 위치를 캡처해서 보내드렸고, 막내 이모부께선 약 20분 만에 도착하셨다.


  “이모부가 J한테 꼭 해주고 싶은 얘기가 있었어. 그동안 정말 미안했어. 아무리 화가 났어도 정훈이한테 짜증내면 안 되는 거였는데, J를 차별하면 안 되는 거였는데, 그건 진짜 이모부가 잘못 했었던 거야.”


  놀랍게도, 이모부께서 허둥지둥 달려온 이유는 10년 전 일을 사과하기 위해서였다. 10년 전 셋째 이모부(Y이모 남편)와 막내 이모부(S 이모 남편)는 서로 동업을 하다가 문제가 생겼었고, 덩달아 이모들끼리도 사이가 좋지 않았었다. 불행 중 다행이라면 Y 이모네 가족이 미국에 있어 자주 얼굴 볼 일은 없었다는 점이다.


  갈등이 완전히 풀리지 않았기 때문에 어쩌다 가족 행사라도 있어 한 자리에 모이는 날이면 눈치 아닌 눈치를 보는 불편한 상황이 계속되었다. 할아버지 칠순 잔치 때, 셋째 이모부가 먼저 악수를 청했을 때도 넷째 이모부가 정색하면서 그 손을 거절한다거나 셋째 이모네 내외가 한국에 올 때면 넷째 이모네는 외국에 나가는 식이었다. 어른들끼리야 갈등의 당사자니 그렇다고 쳐도, 나와 동생들은 그저 그 가운데서 눈치를 봐야만 했다.


  대놓고 언성이 높아지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Y 이모네와 S 이모네 얘기를 언급할 때마다 조심해야하는 것만으로도 적잖은 스트레스였다. 특히나 J는 모처럼 한국에 놀러온 손님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불편해하는 어른들의 눈치를 보며 맘 편하지 않았을 것이다.


  어느 덧 10년이 지났다. 10년 전 그 일은 그렇게 일종의 금기로 남아 우리 식구들 누구도 말하지 않는 일이 되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함께 하던 사업이 잘못되어 사이가 틀어졌다는 사실만 알 뿐 당시 두 분 사이에 정확히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아직까지도 잘 모른다. 나와 내 부모님은 당사자가 아니었고, 그 땐 나도 지금보다 어렸을 때라 나에게 정확한 원인이나 결과를 얘기해주는 사람도 없었기 때문이다. 막연하게 추측만 할 뿐이고 지금은 어떻게든 마무리된 이야기니 가족들 모두 굳이 다시 얘길 꺼내려 하지 않을 뿐이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남북한이 판문점에서 휴전 선언하듯이 ‘화해하자!’라고 딱 잘라 얘기한 적도 없이 그렇게 은근슬쩍 갈등이 끝났다는 것이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우리 가족들은 여전히 명절 때 Y 이모네 가족 없이 화기애애한 시간을 보냈고, 어쩌다 Y 이모가 한국에 들어와도 훈훈한 분위기가 연출되었다.


  10년이라는 제법 긴 시간이 지나면서 거의 잊고 있었기 때문일까, 막내 이모부가 J에게 사과하러 온 모습이 낯설게 느껴졌다. 본인은 J에게 짜증내고, 다른 조카들과 차별했다고 말하셨지만 그리 살갑지 않게 대한 정도지 심각한 폭언이나 폭력이 오간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한국인의 통념상 어른인 막내 이모부가 사과할 이유는 전혀 없는 상황이었다. 이모부들끼리 사이가 좋지 않다는 사실은 가족 모두가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 누구도 사과하는 게 좋겠다고 말하는 사람조차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모부는 한 달음에 달려왔다. 좋지 않은 모습이라는 걸 알면서도 보여주었다는 사실이 미안해서, 혹시라도 상처 받았을 조카에게 미안해서, 이제라도 그 마음을 전하고 싶어서.


  우리는 어른이라는,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미안하다는 사과 한 마디 없이 어영부영 넘어가곤 한다. 언뜻 보기에 그 순간에는 갈등이 봉합된 것 같지만 상대방의 마음 한 구석에는 시한폭탄이 자라고 있다. 서운한 감정이 차츰 쌓이다 한 순간 불이 붙어 폭발하면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건너게 된다. 직장 상사 때문에 퇴사하게 된다거나, 가족끼리 연을 끊는다거나, 심한 경우 물리적 폭력으로까지 번질 때도 있다.


  그래서 어른일수록, 가족일수록 먼저 손을 내밀어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소중한 사람들이니까, 소중할수록 더 아껴주고 진솔한 대화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사과할 때는 사과하면서 그 대화를 이끌어 나가는 것이 어른의 품격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을지도 모르는, 아무도 그럴 필요 없다고 말해도 용기 있게 사과하는 막내 이모부의 모습에서 어른의 품격을 엿본 느낌이었다. 내 생애 가장 따뜻하고, 즐거운, 그런 설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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