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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종운 Feb 04. 2022

하기 싫은 일에 대한 단상

   언제부터였을까. 한때 성공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하기 싫은 일도 참아가며 노력해야 한다는 명제는 불변의 진리였지만, 최근 들어 노력은 일부 기성세대들이 ‘요즘 것들’의 문제로 지적하는 용도로 사용되는 느낌이 많다. 단순히 나이의 문제라기보단 어느 정도 성공한 사람들의 입장에서 성공하지 못한, 혹은 만족할 만한 성과를 거두지 못한 사람들의 원인을 개인의 노력에서 찾는다고 해야겠지만.


   반은 동의하고 반은 동의할 수 없다. 성공한 사람 치고 노력하지 않은 사람은 없겠지만, 사람마다 키와 몸무게가 다 다르고, 가진 재능이 다를 진 데 무슨 일이든 ‘노력’만으로 성공할 수 있다는 주장은 과장되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속된 말로 개처럼 일해도 분명히 따라갈 수 없는 일이 있고, 약간의 시간만 투자하면 남들이 볼 때는 펑펑 논 것 같아도 훨씬 더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는 일이 있기 때문이다.


   나한테는 미술이나 음악, 조립 등이 노력만으로는 따라갈 수 없는 영역의 일이었다. 하늘 아래 같은 빨간색은 없다지만, 그 미묘한 차이를 구분하지 못하는, 흔히 말하는 ‘촌스러운’ 미적 감각을 갖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예고 입시를 전문으로 하던 화실을 5년을 넘게 다녔음에도 고등학생 때까지 늘 미술은 최하점이었다.


‘음을 올린다.’, ‘음을 내린다.’라는 개념 자체가 이해가 되지 않는 나는 심각한 음치이며, 박자조차 제대로 맞추지 못하는 박치였다. 초등학생 때는 사물놀이 실기시험 중간에 다른 팀원들을 위해 최하점을 받고 쫓겨나야 했다.


   설명서대로 만들면 누구나 만들 수 있다지만, 늘 부품 하나가 부러지거나 빠지거나, 어렵게 완성하더라도 성능이 남들이 만든 것보다 반도 안 나오는 내 손은 마이너스의 손이었다. 남들 다 가지고 노는 그 흔한 로봇 장난감 하나 집에 없고, 완성차 세트가 아닌 부품별로 조립해서 사는 미니카를 사 오기라도 하면, ‘조립도 못하는 주제에 뭐 하러 사 왔냐.’며 부모님께 혼나기 일쑤였다.


출처 : 네이버 웹툰 마이너스의 손 中

   누군가가 ‘노력’이 부족해서라고 말한다면 부정하진 않겠다. 솔직하게 말해서 내가 미술이나, 음악이나, 조립을 서장훈 말마따나 ‘죽기 살기로’ 노력한 적은 없었으니까. 다만 ‘촌스럽다.’, ‘음을 올린다.’, ‘음을 내린다.’라는 최소한의 개념 자체가 이해가 되지 않는데 어떻게 노력을 할 수 있는지 되묻고 싶다. 차라리 수학 문제라면 공식을 외우고, 문제를 수도 없이 반복해서 풀다 보면 일정 수준까지는 따라갈 수 있겠지만, 기본적인 개념부터가 이해가 안 되는데 어떻게 노력을 하란 말인가.


내가 미술이나 음악의 기본 개념도 이해를 못 해서 노력을 할 수 없었다고 말하면, ‘잘못된 노력이다. 올바른 방법으로 노력했어야지.’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글쎄. 그 지점에서는 물음표다. 굳이 올바른 방법까지 찾아가면서 죽기 살기로 노력을 해야 하나?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는데?


물론 나도 안다. 내가 무인도에 처박혀서 혼자 살아갈 게 아니라면 하기 싫은 일도 참아가면서 해야 한다는 것을. 다들 하기 싫어도 참고 하루하루 버텨내고, 그렇게 버텨낸 사람만이 분명 성장할 수 있다는 사실을 너무도 잘 안다. 서장훈이 말한 것처럼 하기 싫은 일은 하지 않고, 하고 싶은 일만 즐기면서 한다고 성공할 수 없고, 죽기 살기로 노력해야 성공할 수 있다고 믿는다.


출처 : 유튜브  https://www.youtube.com/watch?v=jKg1wToQThc&t=473s 中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문은 남는다. 정말로 서장훈은 단 한순간도 즐기지 않았을까? 농구 연습을 했던 시간들이, 목에 깁스를 두르고 시합에 뛰던 순간들이 괴롭기만 했을까? 서장훈은 노력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는 말이 가식이고, 거짓말이라고 했지만, 그가 연습했던 시간. 시합에 뛰던 순간들이 괴롭기만 했다면 그 또한 거짓말이라고 생각한다. 고통을 피하고 싶은 것이 인간의 심리일진대 세상에 어떤 미친 사람이 자발적으로 고통받는다는 말인가. M이라면 몰라도.  


   이영표는 초등학생 때부터 양말의 복숭아뼈가 피범벅이었다고 했다. 드리블 연습을 할 때 한쪽 발로 반대 발을 자꾸 차다 보니 생긴 상처라고 했다. 초등학생이 발에 피가 묻어날 정도로 차고 또 찼는데도 아픈 줄 몰랐다고 했다. ‘그만큼 드리블이 재밌어서.’ 서장훈도 아마 비슷한 이유로 농구를 죽기 살기로 하지 않았을까? 마조히스트가 아닌데도 우리가 고통을 감수하는 이유는 그만큼 즐겁거나 뭔가 특별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출처 : https://www.youtube.com/watch?v=PgG9kBCrz-E&t=99s 中

   나한테는 사회탐구 영역이 그랬고, 볼링이 그랬고, 글쓰기가 그랬다. 나한테 사극은 마블 시리즈 이상으로 재미있는 액션물이었다. 사극을 보는 게 재밌다 보니 계속해서 비슷한 작품을 찾아보게 되고, 비슷한 작품을 찾고, 비하인드 스토리를 알게 되니 너무도 쉽게 연표를 외우고, 주요 사건을 외우고 지명을 외우게 되었다. 누군가에게는 끔찍하게도 싫은 일일 테지만, 나한테는 너무 즐거운 일이었다.


   내비게이션이 없던 시절부터 부모님을 따라 여행을 다니면서 지도책을 보는 일이 취미가 되고 나니 한국지리가 너무 재밌었다. 서울 촌놈들은 강화도가 동해에 있는지 서해에 있는지, 맨 지도에서 점 하나 찍어주고 부산을 찾으라면 찾지도 못했지만, 나한텐 너무 쉬운 일이었다. 이미 절반은 아는 내용이고, 내가 다녔던 여행지에 대해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된다는 것은 또 다른 즐거움이었다.


   한창 볼링 동아리 활동을 할 때 하루에 10게임, 한 달에 100게임씩 치면서 볼링을 죽어라, 연습하던 시절이 있었다. 점수는 아예 신경 끄고 오로지 안 좋은 습관을 고치기 위해서 동영상으로 촬영하고, 선배와 같이 하나하나 뜯어보고 연습했다. 누구보다 백날 똑같은 동작만 반복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지만, 볼링을 잘 치고 싶어서 연습했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4년이 넘는 시간 동안 누가 시키지 않아도 글을 쓰고, 강의를 찾아 듣고, 글쓰기 책을 찾아 읽고, 몇 번씩 퇴고하고 있다. 이론 강의 듣는 일을 누구보다 싫어했던 내가, 수능 시험 문제조차 그냥 한 번 쓱 훑고 대충 찍고 자던 내가, 대학교 과제조차 수업 시작 전에 휘갈겨 써서 겨우 내던 내가, 몇 번씩 내가 쓴 글을 다시 보면서 고쳐 쓰고 있다. 잘 쓰고 싶어서.


   문득 왜 나는 어떤 때는 하기 싫은 일을 ‘때려죽여도 안 한다.’라고 말하고, 어떤 때는 너무도 즐겁게 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어떨 때는 한심할 정도로 게으르고, 의욕이 없지만, 또 어떨 때는 미친놈처럼 밤샘도 마다하지 않는 것을 보면 뭔가 노력을 안 하는 사람은 아니란 말이지. 도대체 차이가 뭘까? 최근 들어서 ‘하기 싫은 일은 하지 않는다.’라는 주제로 글을 쓰고 있는 Y라는 친구의 영향 때문인지 이 질문이 계속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출처 : 유튜브 https://www.youtube.com/watch?v=8PSSBeiEOMw 中

   유 퀴즈 온 더 블록에서 유재석과 박진영이 엄격한 자기 관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보고 답을 찾았다. 박진영은 정말 하기 싫은 걸 오랜 시간 참고 견뎌야만 성공할 수 있다고 했다. 일주일 3번 이상 20시간 금식을 하고, 매일 아침 운동을 하는 박진영은 ‘배고파.’와 ‘죽겠어.’라는 말을 가장 많이 한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그렇게 노력하는 이유는 ‘무대에서의 자유’를 누리고 싶기 때문이라고 했다.


   어쩌면, 우리는 그동안 막연하게 ‘과정’과 ‘결과’를 구분하지 않고, ‘하기 싫다.’라고 말해왔던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금식하고, 운동하고, 안무를 새로 짜고 연습하는 일들은 분명 고통스럽고, 하기 싫은 ‘과정’이다. 박진영이 말한 무대에서의 자유는 단순히 ‘하기 싫은 일’이 아니라 ‘되고 싶은 결과’다. 과정과 결과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서 ‘쓴 약’을 먹는 것(과정)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약을 먹어야 병이 나을 수 있다(결과) 면 먹기 싫은데도 불구하고 약을 제때 챙겨 먹는 것처럼 말이다.


누구나 단순 반복되는 일은 지루하게 느끼고, 당장의 성과가 보이지 않으면 쉽게 지치기 마련이다. 그 외에도 아침에 일찍 일어나야 한다거나, 수십 개의 단어를 외워야 한다거나, 매일 1만 보를 걷는다거나 수많은 하기 싫은 일들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는 그 일을 끝까지 해내는 반면, 누군가는 그 일을 중간에 포기하는 이유는 노력이 부족해서도, 노력의 방법이 부족해서도, 의지의 문제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중간에 포기한 사람들은 과정 자체가 싫었던 것이 아니라, 내가 맞이하고 싶은 결과가 아니었던 것뿐일지도 모르겠다. 노력조차 안 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냥 아직까지 노력을 쏟아부을 목표를 정하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 내가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 ‘노래를 잘하는 사람’, ‘조립을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지만, ‘글을 잘 쓰고 싶었던 사람’이 되고 싶었던 것처럼.


늘 하기 싫은 일은 때려죽여도 안 한다고 말했던 내가, 실제로 손도 안 대려고 하는 내가, 사회성이 정말 부족한 건 아닐까. 사회 부적응자는 아닐까? 고민했었는데, 과정과 결과를 분리하고 나니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나는 의지가 나약한 것이 아니고, 내가 원하는 결과를 위해 선택과 집중을 하는 것뿐이다.(그렇다고 믿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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