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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종운 Oct 08. 2020

우리 집에는 이중책장이 있다.

Feat. 부모님의 유산 01.

   아버지는 대기업 임원의 자리에 오를만큼 자기 관리가 철저하신 분이셨다. 아들인 나에게도 엄격한 자기 관리를 요구하셨는데 아주 사소한 실수조차 용납하지 않으셨다. 한 치의 실수조차 없는 아버지와 매사 섬세하지 못하고 실수가 많은 나는 상극이었다. 내가 아버지를 존경하고 사랑하고, 또 아버지가 나를 사랑하는 것과는 별개로 늘 아버지의 눈치를 보며 살아왔다. 성인이 된 후에도 아버지에게 혼날 것이 무서워서 기차에서 3도 화상을 입고도 도저히 걸을 수 없을 때가 되어서야 화상을 입었다는 사실을 겨우 말했을 정도였으니까. 


   아버지께서는 시벌겋게 부풀어 오른 다리를 보고는 왜 그렇게 미련한 짓을 했느냐고 하셨다. “난 아빠가 정말 무서웠고, 두려웠다. 한 번도 날 인정해준 적 없고 한심하다고 말했잖아."라고 답하자 아버지는 황당함과 서운함이 반쯤 섞인 얼굴로 “넌 항상 잘해준 건 기억하지 못하고 못해준 것만 기억하더라.”라고 하셨다.


   사실 틀린 말은 아니다. 두 분 모두 서울대를 졸업하셨을 만큼 성실하고, 준법정신과 자기관리가 투철한 분들이셨다. 특히 아버지는 배고픔을 누구보다 잘 알았기에 성공하기 위해 악착같이 노력할 수밖에 없으셨다. 예를 들면 음악 실기 시험을 있는 날이면 전날 밤을 새워서 어떻게든 만점을 받아내는 식이었다. 나같은 경우는 내가 못하는 것은 쉽게 포기하는 성격이었다. 아버지 입장에서는 당연히 못마땅해 보일 수밖에. 이를 테면 가난하지만 열심히 공부해서 과거에 합격하고 양반이 된 부모님과 부모님을 믿고 그저 한량처럼 시간을 보내는 아들이라고 할 수 있었다. 당연히 나와 부모님 사이의 갈등은 필연적이었다.


   다만, 여느 양반댁이 그렇듯, 아버지가 말하셨듯이 분명 나는 많은 것을 받아왔다. 금수저는 아니지만 집안의 빚 걱정 없이 내 살 길에 대한 고민만 할 수 있었고, 원하는 것은 나름대로 다 해볼 수 있었다. 특히 내 스스로 가장 뿌듯하게 생각하는 ‘인간미 넘치는 가치관’을 형성하게 해주셨다.


   생각해보면 "잘해준 건 기억 못한다."는 아버지 말씀처럼 그 동안 내가 서운한 것만 떠올렸던 것이 민망할 정도였다. 막상 말로 하려니 부끄럽고, 또 정리가 잘 안 돼서 부모님께 감사한 마음을 되새기고, 내 뿌리를 되집어 보고자 하는 마음에서 '부모님의 유산'에 대해서 고민해보게 되었다.


   가장 큰 유산은 역시 아무래도 ‘책’일 것이다. 부모님께서는 어렸을 때부터 잠자리에 들 때면 자장가 대신 책을 읽어주셨다. 자연스럽게 책과 친해질 수 있었고, 독서하는 습관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원하는 책은 아낌없이 사주셨기 때문에 정말 방대한 양의 책을 읽을 수 있었다. 심지어 더 이상 책을 둘 공간이 없자 서점에나 가야 볼 수 있을 법한 이중책장을 주문 제작해주셨다.


   독서가 한 사람을 성장시키는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활동이라는 사실을 부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독서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지만 습관으로 갖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독서라는 습관이 정말 중요하고 특별하다는 것을 세바시(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 글쓰기 특강을 들으면서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고영성 작가님은 인간의 뇌 구조상 독서가 절대 익숙할 수 없는 구조기 때문에 당연하다고 말했었다. 뇌 과학을 깊이 있게 공부하지는 않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어려움을 겪는 만큼 일리 있는 얘기라고 생각한다. 그만큼 독서라는 습관을 갖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는 뜻일 것이다.


   김민식 PD님의 의견은 약간 관점을 달리해, 개인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성장기 아동의 부모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했었다. 자녀의 독서량은 부모의 독서량과 절대적으로 비례한다는 이야기인데,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다. 어린아이들은 어른들의 행동을 모방하면서 성장하는데 부모가 책을 읽지 않는다? 당연히 정서적인 괴리감이 발생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반면 부모님이 앞장서서 책을 읽는다면 자연스럽게 아이들은 따라 읽기 마련이다. 실제로 고영성 작가님이나 김민식 PD님 모두 많은 양의 책을 구비한 서재를 갖추고 있고, TV나 스마트폰을 보는 시간보다 독서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틈날 때마다 아이들과 함께 책 읽는 시간을 공유하려고 노력하다보니 자연스럽게 그분의 자녀들도 책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내가 책을 자연스럽게 좋아하게 된 이유도 부모님의 영향이 컸다. 단순히 책을 많이 사주셨을 뿐만 아니라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에는 자장가 대신 책을 읽어주셨고, 직접 읽어본 책이 내용이 좋다며 추천해주시기도 했다. 스마트폰은 커녕 윈도우와 도스가 공존하던 시절이었음을 감안하더라도 책을 늘 가까이 할 수밖에 없는 여건이 마련된 것이다. 독서의 가치를 알고 독서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았던 부모님을 만났다는 것은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최고의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새삼스럽게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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