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이모님께서 나를 불러 아직까지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면 진로로 삼고 있는 ‘글쓰기’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하지 않겠냐고 물어보셨다. 스스로의 실력을 객관적으로 평가해볼 필요가 있다면서. 그도 그럴 것이 어느새 내 나이는 35이고, 주변에는 결혼 안 한 친구를 찾아보기가 힘들 정도에, 부모가 된 친구들이 태반이다. 여전히 자리 잡지 못하고 방황하는 내가 어지간히 걱정이 되셨던 모양이다.
그렇잖아도 지난 2월에 준비하던 글쓰기 커리큘럼과 소설을 결국 완성하지 못한 채 잠시 접어두면서 나 스스로도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었다. ‘애매한 재능이 무기가 되는 순간’이라는 책을 읽고, 평소에 즐겨보던 유튜브 채널을 분석하면 ‘나만의 (애매한) 재능’을 찾을 수 있다는 말을 듣고 뭔가 도움이 될까 싶어 그동안 내가 썼던 글들을 하나하나 뜯어보던 중 눈에 띄는 글이 있었다. 2017년 한창 취업을 준비하던 시기에 우연하게도 용산 CGV에서 진행된 ‘슬램덩크 포에버’의 라이브 생방송 현장을 찾을 때의 이야기다.
삼행시에 나오는 흥 소장 서대웅 님과 혼구황형 황부영 님, CJ 제일기획 홍보영상 감독 문종현 님, 다문화 농구감독 천수길 님 등 내로라하는 슬램덩크 광팬들이 모였고, 열띤 토론을 벌였다.
농구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바이블과 같은 슬램덩크. 누군가에게는 단순한 만화책일 뿐이지만 대사 하나, 장면 하나를 곱씹어보며 삶의 지침서로 삼는 사람도 있을 만큼 가볍기만 한 만화는 아니다. ‘왼손은 거들뿐’과 같은 명대사들은 셀 수 없을 만큼 패러디되었으며 슬램덩크 2의 연재를 기원하는 일부 극성팬들이 존재할 정도니까.
그 열기 때문일까. 만화 슬램덩크의 주제가를 불렀던 가수 박상민을 비롯해 하하와 삼행시의 서대웅 소장 등 슬램덩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 슬램덩크 포에버를 결성했고, 그들은 지난해 일본을 방문하여 슬램덩크의 원작자 이노우에 선생을 한국으로 초청하는 이벤트를 벌였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지원금을 받은 것도 아니지만 자발적인 팬심으로 진행된 프로젝트였다.
이번 모임은 그 연장선에서 재차 이노우에 선생의 방한을 추진하면서 기부 농구대회와 ‘슬램덩크 포에버’라는 독자들의 해석과 이야기가 담긴 슬램덩크 관련 콘텐츠의 출판 등을 추진하는 프로젝트라고 한다.
슬램덩크에 관심이 많았고, 좋은 분들과 친해질 수 있는 자리였음에도, 내가 가장 관심 깊게 보는 콘텐츠의 재생산이라는 프로젝트를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할 수 있는 그 자리를 일찍 떠야 했던 이유는 계속 서있기 너무 힘들었기 때문이다. 참을 수 없는 답답함과 두통이 나를 찾아왔다.
1부 게스트로 참석했던 파워블로거 김경석 님의 존재. 그의 존재가 나를 너무도 초라하게 만들었다. 그는 지난 5년 간 네이버에서 슬램덩크 관련 블로그를 가장 많이 포스팅하였고, 슬램덩크와 함께 야구와 농구, 일본 애니메이션, J-pop까지 분석하면서 내공을 쌓아왔다. 그 열정이 인정받기 시작하면서 슬램덩크 포에버 팀에 자연스럽게 합류하게 된 것이다. 많이 쳐줘봐야 나보다 3,4살 많을 그가. 심지어 나보다 3,4살은 어려 보이는데.
단순히 그렇게 인정받는 그가 부럽다거나, 대단해 보여서 답답함을 느낀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내 자신에 대한 후회와 환멸에 가까운 자괴감이 나를 돌아서게 했다.
예전 같았으면 그냥 ‘대단한데? 친해져 볼까?’라고 생각했거나 ‘그래 봤자지’라고 은연중 깎아내렸을 것이다. 그 대신 내 과거를 떠올리며 돌아선 것은 우연의 일치라고 하기엔 너무 절묘한 두 가지 사건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를 만나기 일주일 전 제주의 바닷가에서 만난 김형욱 작가님은 내게 이런 말을 해주셨다.
“나이 서른이면 네가 스스로 선택해야지. 뭘 선택하든 네가 책임지면 되는 거다. 대한민국은 말이야, 처음에는 미친놈이라고 하지?
5년, 10년만 꾸준히 하면 다 알아주게 되어 있어. 그러면 되는 거야.”
그는 2006년 유라시아를 자전거로 횡단하며 만난 아이들의 미소를 잊지 못해, 그들이 공부할 수 있게 도와주겠다고 했던 약속 했다. 1000개의 도서관 프로젝트. 일반 개인이 목표하기에는 정말 스케일이 남다른 프로젝트였지만 그는 지난 12년 동안 약 30개의 도서관을 지어왔다. 2016년에 네팔에 지진이 발생했을 때도 구호팀을 꾸려 가장 먼저 모든 걸 제쳐두고 달려갈 수 있었던 것도 그가 묵묵히 걸어왔던 길 덕분일 것이다.
운명의 장난처럼 작가님을 만나고 올라오던 주, 목요일 수업 시간에 랜디 포시 교수의 마지막 강연 “행운은 준비가 기회를 만났을 때 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뒤통수를 한 대 맞는 느낌이었다.
작가님이 5년, 10년을 꾸준히 노력하면 인정받는다는 말과 너무도 흡사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토요일에는 현재 진행형인 산증인을 만나기까지 했다. 이룬 것 하나 없이 취업 준비한다고 빌빌대고 있는 나 자신이 너무 초라하게 느껴졌다. 그나마 '노력'하면 나도 할 수 있겠다는 용기를 얻었다는 사실이 한 가지 위안이었다. 내가 퇴사 후 과감하게 재취업을 포기하고 글쓰기에 도전할 수 있었던 이유였다.
그로부터 5년의 시간이 지났다. 그 사이 작가가 되겠노라고, 글쓰기로 밥 벌어먹고 살고 싶다고 다짐하고 꾸준히 노력해왔지만, 여전히 제자리걸음 중이다. 2년 넘게 드라마 작가 수업을 들으며 대본과 합평문을 써왔지만, 정작 공모전에 출품할 그럴듯한 작품 하나 써내지 못했다. 청소년 기업가 정신 교육, 온라인 신문사 객원 마케터 등에 지원했지만 번번이 탈락의 고배를 마셔야 했다. 몇몇 에세이와 강연 콘테스트에 지원했던 것들도 입선조차 하지 못했다. 나름대로 노력한다고 노력했는데 시간만 흘러갔다. 지인들과 함께 준비하던 에세이 쓰기 프로젝트도 실패로 돌아갔다. 브런치 심사를 통과한 것 정도가 유일한 성과라면 성과랄까. 이모님뿐만 아니라 내색하지 않으셔서 그렇지 부모님도 적잖이 걱정이 되실 터다.
기회는 뜻밖의 행운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지 않는다. 노력한 사람만 기회라는 이름의 행운을 잡을 수 있다는 말을 불변의 진리다. 노력했는데도 기회를 잡지 못했다면 아마 노력이 부족한 탓이거나 방향이 잘못된 탓이겠지. 슬픈 얘기지만 그게 현실일 거다.
무엇이 잘못되었을까. 4년 8개월 동안 520편을 써왔고, 독서모임과 스피치 스터디를 운영하며 나름 열심히 노력해왔다고 생각했는데 노력이 부족했을까. 아니면 어쭙잖게 한 우물을 파지 않고 조금조금씩 건드렸던 방향이 잘못되었나. ‘애매한 재능이 무기가 되는 순간’을 보면 분명 나의 애매한 재능은 글쓰기가 맞는 거 같은데... 영 성과가 없는 것을 보면 정말 재능이 없는 건가 싶기도 하고... 노력하면 기회를 잡을 수 있다는 말을 믿지 않는 것은 아닌데 점점 더 마음이 조급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