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포기러지만 글쓰기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Ch.01 익숙한 일
초등학교 시절 내 등교 시간은 0교시를 하는 고등학생과 비슷한 7시 30분이었다. 당연한 얘기지만 초등학교에는 0교시 따위는 없었기에 7시 30분이면 학교 선생님들조차 출근 중인 시간이다. 학교에 도착하면 늘 조용했다.
2학년(1996년) 때 강서구 방화동에서 염창동으로 이사했지만 전학은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시 어머니는 방화동에 있는 외할아버지의 약국 일을 도와주고 계셨는데 아무래도 혼자 있어야 하는 내가 못내 마음에 걸리셨다고 한다. 3대 미제 사건으로 남은 개구리 소년 납치 사건(1991년)이 불과 5년 전 일이었으니까 괜히 불안할 수밖에.
개구리 소년 납치 사건이 미제 사건으로 남은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요즘처럼 초등학생들도 핸드폰을 들고 다니는 시대였다면 발생하지 않았을 안타까운 사건이었다. 시대가 시대이니만큼 그 당시에는 핸드폰이 흔치 않았다. 사업하는 어른들이나 핸드폰을 썼는데 그마저도 투박한 벽돌 같은, 안테나를 길게 뽑아야 하는 그런 핸드폰이었다. 당연히 초등학생이 핸드폰을 갖는다는 건 꿈도 못 꿀 일이었고, 무려 5명의 초등학생이 실종된 사건이 연일 뉴스에 보도되는 상황에서 어떻게 핸드폰도 없이 어린아이를 혼자 둘 수 있었을까. 전학을 가지 않은 채 전학을 가게 된 5학년 때까지 4년 가까이를 어머니와 함께 등하교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학교와 사는 집의 동네가 달라지니 자연스럽게 친구들과 어울리기 쉽지 않았다. 당장 내가 등교할 때는 학교에 사람이 거의 없었다. 딱 한 명 나와 같은 염창동에 사는 친구 A만이 같은 학교에 근무하시던 아버지를 따라 나와 비슷한 시간에 등교했을 뿐이다. 자연스럽게 아침부터 1시간 이상이 붕 떠버렸다. 학교가 끝나고 친구들과 잘 놀다가도 나는 어머니와 함께 집에 가야 하니 일찍 나와야 했고, 집에 와봐야 이미 동네에서 학교를 다니는 친구들끼리 삼삼오오 몰려다니고 있었다. 지금이야 9호선이 뚫려서 내가 다니던 송화초등학교(신방화 역)에서 내가 살던 집(등촌역)까지 12분이면 갈 수 있지만, 그때는 9호선이 없었다. 1시간 가까이 버스를 타야 하는 거리는 핸드폰이 없던 당시 초등학생에게는 꽤나 먼 거리였다. 주말이라도 친구들이 놀러 오거나 내가 찾아가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학원도 많이 안 다니는 초딩은 보통 친구들과 뛰놀면서 시간을 보낸다. 안타깝게도 나는 생활패턴이 다르다 보니 학교 친구들과도, 동네 친구들과도 어울리기 쉽지 않았다. 기본적으로 손재주가 없으니 또래 남자애들이 좋아하는 로봇/자동차/조립에도 관심이 없었고, 몸치다 보니 축구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만일 친구들과 계속 붙어 지냈다면 함께 어울려 하니까 잘 못하고, 좋아하지 않더라도 같이 놀기 위해서라도 축구도 하고, 로봇도 가지고 놀고 했을 텐데 어차피 혼자니까 그럴 필요가 없었다.
게다가 스마트폰은 고사하고 SNS니 유튜브니 하는 것들이 없을 때라 그런지 같은 강서구 안에서도 동네마다 유행이 달랐다. 예를 들면 학교에서 딱지를 가지고 놀면 동네에서는 미니카를 가지고 놀았고, 학교에서 구슬동자를 가지고 놀 때면 동네에서는 팽이를 치고 놀았다. 어린 초딩에게 서로 다른 유행을 따라가는 일도 벅찼다. 기껏 장난감을 사도 반쪽짜리였으니까. 가뜩이나 손재주가 필요한 미니카나 구슬동자 로봇 같은 장난감은 조립부터 난항이었는데 자주 쓸 일이 없다 보니 자연스럽게 손이 덜 가게 되었다.
애초에 내가 초등학교 입학할 무렵 투니버스가 개국하고, 초등학교 4학년이 되어서야 스타크래프트가 출시되었다. 스타크래프트의 인기에 힘입어 90년대 말이 되어서야 PC방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했을 만큼 90년대는 초딩들이 즐길 수 있는 거리가 별로 없던 시절이었다. 그 와중에 아침에 등교하면 1시간 이상 붕 뜨고, 방화동과 염창동의 유행은 다르고, 학교에서는 친구들과 좀 놀다 보면 헤어지고, 동네에서는 이미 무리가 있는 친구들 사이에 끼어들기도 어렵고 하다 보니 남는 게 시간이었다. 물론 TV에서 만화도 틀어주고, 만화책도 있긴 했지만 그 당시 트렌드는 그랑죠, 다간, 썬가드, 가오가이거 등 변신 로봇물 일색이었다. 로봇물에 관심이 없던 나로서는 TV에도 딱히 눈이 가지 않았다. 물론 만화가 아니라 연예인들이 나오는 예능이나 시트콤도 있었지만 음치인 내가 주로 가수들 중심의 출연진에 관심이 생기지도 않았다.
내게 남겨진 유일한 선택지는 책이었다. 사실 독서만큼 아무런 노력 없이 시간을 때울 수 있는 활동은 없다. 평균 수준의 지적 능력만 있다면야 문자를 읽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니까. 사람들이 책을 안 읽는 이유는 단지 책 보다 축구 같은 뛰어노는 활동이나 로봇 조립 같은 활동에서 도파민을 더 많이 느끼기 때문일 뿐이다. 나 같은 경우는 몸치에 손재주도 없는 상황이다 보니 딱히 축구를 하든 로봇을 만들든 도파민을 느끼기보다는 스트레스를 받았을 뿐이고. 게다가 축구하자고 불러주는 친구도, 로봇 가지고 놀자고 하는 친구도 없으니 필요성 자체도 느낄 수 없었다.
할 줄 아는 것도 없고, 할 수 있는 것도 없으니 책만 주구장창 읽기 시작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거의 일상이 되어버렸다. 책벌레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수업 시간에도 서랍에 책을 잔뜩 넣어놓고 읽고 있었고, 학교 도서관의 책들은 전부 내 차지나 마찬가지였다. 전학 올 무렵 사물함 정리를 하는데 교과서는 한 권도 안 나오고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들만 20권이 넘게 나왔을 정도였으니까. 심지어는 집에 가져온 책들 수십 권을 반납했는데도 미처 반납하지 못한 책들이 계속 나오기도 했었고.
전학을 온 다음, 중고등학교에 진학 뒤에는 학원도 다니면서 친구들도 제법 많이 사귀고, PC방이나 노래방도 종종 다니긴 했지만 여전히 책을 끼고 살았다. 무협/판타지/추리 소설이라는 장르의 편식이 심해지긴 했지만. 빌려온 무협소설의 다음 내용이 궁금해서 한 질(시리즈)을 통으로 읽느라 밤을 새기도 했고, 시험 기간에 자주 다니던 도서대여점이 폐업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용돈을 탈탈 털어 소설책을 사들이기도 했다. 대학교에 와서는 동아리 활동이다, 술자리다 해서 책을 덜 읽긴 했지만 여전히 또래보다는 많이 읽는 편이었다. 장르를 조금 넓혀 자기 계발서, 교수님이 추천하신 전공 관련 책, 인문학 책 등을 쌓아놓고 보기도 했고.
과장 조금 보태자면, 오로지 책만이 내 친구였고, 내가 시간을 보내는 전부였던 학창 시절을 보냈으니 작가라는 꿈을 꿀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