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나와 그때의 내가 만난 순간
돌이켜보면
관계 안에서 어느 지점에 이르러서는
더 이상 나를 배신할 수 없다는 생각이
지워지지 않았다.
엄마가, 나의 친구 M이,
혹은 그와 내가 애정했던 막 성인이 된 조카가
만약 내가 겪은 일을 겪고 있다면
나는 참으라고 할 수 있었을까.
당장 나오라고 했을 거다.
니가 어떤 딸인데 그러냐고 했을 거다.
그래서였다.
설사 그 순간에 내가 부서지더라도
내 모든 것을 걸고서라도
나를 데리고 나오겠다는 각오는
비장하다기보다는 어쩌면 너무 당연했다.
그도 나도 상상조차 못했던 방식으로
마치 포크레인으로 땅을 쓸어버리듯이
별거와 이혼을 연달아 쟁취해 낸 나는
지금의 내가 그때의 나를 구해냈다고 한동안 의기양양했었다.
그러다가
내 뇌가 위협이 아닌 안전함을 드디어 인지한 순간,
봇물처럼 쏟아내는 기억들과 장면들을 마주하면서
트라우마 관계 속에서 혼자 버티고 또 버티던
그때의 나를 만났다.
나를 끝까지 놓지 않고
온 힘을 다해 보호하고 있는
그때의 나를 바라본 순간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일부러 내 눈을 못 뜨게 하거나
나를 속인 것이 아니었다.
이 상황을 판단하기 시작하면, 해석하기 시작하면,
내가 버틸 수 없다는 것을 내 뇌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때의 나는
끊어지기 직전의 공중 밧줄에 올라탄 내가
떨어지지 않을 만큼은 버틸 수 있게 해두고 있었다.
그때의 나는 그게 최선이었다.
지금의 내가 그때의 나보다 더 많은 정보를 가졌을 뿐이다.
돌아보니
나를 붙들고 지켜낸 그때의 내가
결국 지금의 나를 구원한 것이었다.
그때의 나는
지금의 내가 올 때까지 기다렸는지도 모른다.
지금의 내가 그때의 나를 만난 이후로
아니, 더 정확히는
그때의 나에게 온 마음을 다해 용서를 구하고 나서
나의 회복 속도는 급속히 빨라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