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ique outcome , 그 예외의 순간
심리 상담사 선생님이 말했다.
내 회복 속도는 임상에서도 보기 드문 케이스라고.
극심한 트라우마 본딩에서 빠져나와
이 정도로 일상을 재정렬하는 건
100명 중에 1명이 할 수 있을까 말까예요.
회복은 거대한 결단으로 오지 않았다.
내가 늘 하던 방식과 다르게 반응하면서 시작됐다.
그의 연락이 와도 답하지 않았고,
그리움이 올라올 때마다
이건 사랑이 아니라 익숙함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
좋은 기억이 스쳐도
이내 내가 고통받던 구조를 떠올렸다.
그가 우리 집 문을 두드리며
내 이름을 애타게 불렀던 순간에도
나는 반응하지 않았다.
요가 매트를 펼치고 엎드린 채
운동을 하면서 눈물을 쏟아냈지만
문은 열지 않았다.
이 작은 차이들이 겹겹이 쌓이기 시작했다.
심리학에서는 이런 순간을
‘Unique outcome'이라고 부른다.
내가 늘 반복하던 패턴과 다르게 행동한
예외의 순간.
'나는 항상 돌아가는 사람'이라는 내 서사의 균열은
자기 효능감 회복과 정체성 재구성의 출발점이었다.
'내가 예민했나'를 계속 나에게 되물어야 할 만큼
트라우마에 익숙해져 있던 내 뇌는
새로운 신경회로를 만들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바로 이때부터 자기 비난이 멈췄다.
나 자신을 다시 진심으로 믿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트라우마 관계에서 벗어나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나는 왜 이럴까?"에서
"나는 이미 다르게 행동한 적이 있다"로 이동한다.
나는 다르게 행동한 적이 있는 사람이 됐다.
그래서 선생님은 나를 '연어'라고 불렀다.
물결을 거슬러 올라가는 용기와 지혜가
이미 내 안에 있다고 했다.
갑작스러웠던 3주간의 별거 기간 내내
잘 자고 잘 먹는 것조차 할 수 없었던 나는
이별을 통보한 지 열흘 만에
다시 나로 일어서기로 했다.
폐허가 되어 버린 내 일상과 자존감을
하나씩 재건하기 시작했다.
명상, 독서, 운동, 글쓰기, 트라우마 치료,
이직 준비, 드럼 연주, 공원 산책, 장보기.
이 모든 것을 동시다발적으로 해나가기 시작했다.
다시 쌓아 올린 루틴을 지지대 삼아
그렇게 나는 불구덩이 속을 뚫고 지나왔다.
이혼, 아니 정확히는 사실혼 종료 후
7주가 흘렀다.
달이 두 번 바뀌었다.
그래서일까.
"나 많이 괜찮아요."라고 말할 수는 있게 됐다.
처음엔 무서웠다.
누가 나를 낯선 세상에 떨어뜨리고 간 것처럼.
이 길 앞에 무엇이 있을지 가늠조차 어려우니
더 두려웠다.
그래서 눈을 더 크게 뜨기로 결심했다.
이 길을 걸으며 마주하는 모든 것들을
피하지 않기로 했다.
'Unique outcome'을
강력한 의지의 발로나 생존본능만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왜 난 비장하지 않게 변화를 끌어안을 수 있었는지.
왜 내 판단과 행동 사이의 간극은 그토록 짧았는지.
아, 돌이켜보니
달라질 수 있다는 확신은
내 몸에 깊이 새겨진 회로의 일부였다.
그래서 이번에는 헤매지 않을 수 있었다.
8년 전,
암 투병을 통해
나는 나의 모든 것을 바꿔 본 경험이 이미 있었다.
이거였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