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 사실은 ‘기’ 받은 거랍니다

달리기 기를 주는 사람들 1 2 3

by 카피자


나참,
쪼으면 쪼을수록
더 좋은 게 나온다니깐!
막 쪼아! 막 굴려!


1. 이 말은 우리 회사에게 일을 주는 클라이언트 회사의 팀장이 신입사원에게 '우리 회사를 다루는 법'을 가르쳐주는 말이었단다. 그 말을 들은 신입사원은 그야말로 쪼으고, 굴리고, 무리하게 일을 진행시켰고.


2. 회사 대 회사로 일할 때 당연히 최고의 결과물을 내야 한다. 그에 합당한 금액을 내야 하는 거고. 이 당연한 것이 없었다. 인터넷 최저가 견적을 알아본 뒤 '이 견적에 맞춰주시오'라고 하면 끝이었다. 불행히도 회사 오너가 이 클라이언트와 계속 일을 하기를 원했다. 역시 오너 리스크였다.


3. 어떻게든 일을 하고, 진이 빠져 퇴근했다. 허겁지겁 저녁밥을 먹고 잠깐 재미있는 유튜브를 봤다. 유튜브 쇼츠는 시간과 정신을 빨아들였다. 밥 먹은 뒤 그만 눈이 스르르 감겨 식탁에서 잠든 나.


4. 한 시간이나 까무룩 잠들었다 깼다. 달리기고 뭐고 정신이 멍했다. 퇴근 후 달리기 하려던 마음은 어디로 간 걸까. 운동하겠다는 맘은 사라져 버리고, 보다 만 유튜브만 덩그러니.


5. 안 되겠다. 회사에서 받은 스트레스에서 도망치려, 달리기 하기로 마음먹었는데. 매번 내일 해야지 내일 해야지 할 순 없었다.



달리기 기를 주는 사람들을 찾아야 했다.



6. 달리기 기를 주는 사람 1은 '기안 84'였다. 다음 날 퇴근 후 밥을 먹으며 달리기 영상을 봤다. 기안 84가 예능 프로그램에서 진심으로 달리기를 하는 영상들이었다. 별다른 예능 멘트가 없어도 달리는 거친 숨소리 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럼 저녁밥을 먹고 나서 재미있는 다음 영상을 찾아 엄지를 휙휙 움직이지 않고, 운동화를 신고 달리기를 하러 나갈 수 있었다.


7. 달리기 기를 주는 사람 2는 길거리에 수없이 많은 '지금 달리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달리다 보면 마주 달려오는 사람들, 그 무념무상 표정, 그저 자기만의 속도로 쭉 달려가는 사람들이 있다. 앞만 바라보고 멈추지 않고 가는 그 사람의 표정을 나는 슬쩍 본다.

'저 사람도 속으로 엄청 숨차고 힘들 거야, 나만 힘든 게 아니야'라는 마음이 들었다. 그럼 묘한 위로가 되었다. 모르는 사람이지만 그분들에게서 달리기 기를 받았다.


8. 달리기 기를 주는 사람 3은 '이 달리기 글을 읽는 분들'이었다. 지독히 달리기를 싫어하는 내가 왜 달리기를 하는지 궁금해서 쓰기 시작한 글. 그런데 이 글을 읽는 분들이 있다는 것에 힘이 났다.

잘 달리고 잘 살아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9. '보는 것이 나를 만든다'는 말이 맞다.

'누구를 만나느냐가 나를 만든다'는 말도 맞다.

'글 쓰고 공개하는 것이 나를 만든다'는 말도 맞다.



8d8086a6-9661-46f2-a074-b7c157e7b58b.png 달리기, 혼자 하는 거 아니었네, 이 사람들 때문에 내 인생이 뛰기 시작.



달린다는 건 결국 사는 이야기와 같았다.


무엇을 보느냐가 어떻게 행동할지를 결정하게 되는 거다.

도망친 달리기에서, 나를 살리는 달리기로,

나에게 달리기 기를 주는 사람들이 나를 좋은 방향으로 이끌고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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