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지 않아도 먹은 것 같은 피자
[못 말리는 피자덕후, 좋아하는 피자 이야기를 글로 씁니다]
직장인은 금요일이 되면 마음이 말랑말랑해진다. 일주일에 딱 한번 있는 소중한 불금. 불금은 불타지 않아도 괜찮다. 나 역시 오랫동안 회사에 다녔지만, 금요일 퇴근 무렵에 기분이 좋은 건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퇴근 시간이 되면 회사 사람 모두 일을 마무리하고 서둘러 사무실을 나선다. 회사의 나를 벗고, 원래의 나로 돌아갈 시간. 입꼬리가 살짝 올라간 얼굴로 “주말 잘 보내세요” 하며 손을 흔드는 걸 잊지 않는다. 평일에는 볼 수 없는 활기찬 모습, 나도 똑같은 얼굴로 손을 흔들어 주었다. 환한 표정으로 사무실을 나와 불금 퇴근길을 성큼성큼 걸었다.
아무 약속이 없어도 불금은 기분이 좋다. 거리는 어느새 환하게 가게 문을 열고 손님맞이에 나섰다. 마스크를 뺀 손님들로, 가게 안은 벌써 왁자지껄하다. 동그란 테이블을 두고 사람들이 둘러앉아 와하하 웃으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래, 우리는 오랫동안 서로 거리를 두고 살았다. 그동안 빈 테이블만 덩그러니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요즘 같은 불금에 서로 다시 연락이 닿아 만난 사람들은 얼굴에 반짝 불이 켜졌다. 좋은 사람들과 맛있는 시간을 보내는 불금 타임, 보고 있는 나도 기분이 좋아졌다.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맨 뒷자리에 앉아 갔다. 그런데 갑자기 피자가 나를 향해 걸어왔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네모난 피자박스를 든 40대 아저씨가 성큼성큼 나를 향해 걸어왔다. 그리고 내 옆 빈자리에 착 앉았다. 단박에 피자 박스에 눈이 꽂힌 나. 피자가 내 바로 옆에 있다!
갓 구운 피자 냄새가 콧잔등을 훅 치고 들어왔다. 고소하고 짭짤한 치즈 향, 두툼하고 그득한 토핑 향이 온몸을 감돌았다. 뚜껑이 덮여 있는데, 난 마치 피자를 본 것 같았다. 냄새도 모양도 아련히 떠올랐다. 이건 페퍼로니 피자일까, 불고기 피자일까. 나도 모르게 자꾸 피자 냄새에 이끌려 피자 박스를 흘끔흘끔 봤다. 피자에 이미 온 정신을 빼앗겨 버렸다.
피자 박스를 무릎 위에 얹고 가면, 이 겨울에 얼마나 따뜻할까. 아저씨는 핸드폰으로 ‘아빠 버스 탔어’라고 가족들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그리고 익숙한 손놀림으로 주식 차트를 잠깐 봤다. 주식 차트에는 빨간색 막대그래프가 얼핏 보였다. 생판 모르는 분이지만, 피자 아저씨가 산 주식이 조금 올랐길 바랐다.
왜 배달시키지 않고, 굳이 아빠가 피자를 포장해서 버스를 타고 갈까? 피자를 든 아빠를 반갑게 맞이하는 행복한 순간을 아빠도 설레며 기다리는 건 아닐까? 피자를 들고 집에 가면, 가족들이 ‘와 아빠다’ 하며 나오겠지? 아저씨 옆에 앉아 피자 냄새를 킁킁거리며 상상해 봤다.
피자를 탁자 중간에 놓고 가족이 모여 앉은 모습, 피자를 한입 그득 베어 물고, 맛있다고 입을 오물거리는 기족들. 아빠를 보고 씩 웃는 아이의 모습에, 아빠는 고생했던 마음이 치즈처럼 흐물흐물 녹아내리겠지? 이런 게 피자가 만들어 주는 불금의 소소한 행복이 아닐까?
돈을 버는 이유는 자기가 좋아하는 순간을 만들기 위해서다. 좋아하는 음식을 함께 나누기 위해서다. 좋아하는 사람과 맛있는 걸 함께 먹으면서 다음 주를 이겨낼 총알 한방 장전하는 것, 그 음식이 나에게 피자다.
불금에 소소한 행복을 느끼며 먹고 싶은 자기만의 ‘최애 음식’이 무엇인지 떠올려보길 권한다. 경기가 어렵다고 할수록 작은 행복을 지켜야 한다. 누구나 행복할 권리가 있으니까. 다른 사람은 ‘인생의 맛있는 순간’에 어떤 음식이 있는지 궁금하다.
나는 행복한 순간마다 피자가 있다. 피자를 사랑하는 마음을 글로 쓴다. 그렇게 좋아하는 걸 힘껏 좋아하기로 했다. 불금과 피자는 너무나도 어울리는 꿀조합이다. 나 말고도 피자를 좋아하는 사람이 어딘가 또 있겠지? 안 되겠다. 못 참겠다. 불금은 피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