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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관측 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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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말하우트 Sep 19. 2021

21.09.19.관측 일지

가을의 문턱에 들어선 밤하늘

한동안 가을장마가 오는가 싶더니 태풍이 몇 차례 지나갔습니다. 덕분에 제주는 별이 보이지 않는 하늘만을 보여주고 있었네요. 며칠 전에는 태풍 찬투가 지나갔습니다. 태풍도 정말 오래간만에 영향을 주는듯한 태풍이 지나가는데 다행히 생각보다 피해를 입은 곳은 많지 않았던 듯합니다. 


제주 사는 별지기에게 태풍은 엄청난 비와 구름을 몰고 와 원망의 대상이지만 또 다르게 보면 기회의 시간을 열어주는 존재이기도 합니다. 태풍이 처음 당도하는 위치상 위력은 강력하긴 하지만 주변의 구름들을 몰고 가주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태풍이 올 무렵엔 바다 근해에 조업하는 배들이 없어 광해도 덜한 편이기도 합니다.


태풍 찬투가 지나가고 어김없이 밤하늘이 열렸습니다. 이제 곧 보름이라 월령이 좋은 조건은 아니지만 그래도 오래간만에 밤하늘 다운 밤이 열려있어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습니다. 운동을 마치고 오래간만에 집 앞 주차장에 장비를 펼쳐 관측을 했습니다.


첫 번째 대상으로는 좀생이별 이라고도 불리는 플레이아데스 성단을 겨눴습니다. 자정 즈음 동쪽 지평선 위로 올라오는 대상이라 관측하는 것도 어렵지 않았습니다. 플레이아데스는 메시에 카탈로그에서 45번으로 M45라고 지칭하기도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좀생이별, 일본에서는 스바루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어쩌면 맨눈으로 볼 수 있는 딥 스카이 천체 중에 제일 유명한 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맨눈으로 보면 예닐곱 개의 별들이 물음표 모양으로 오밀조밀하게 모여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시력이 좋다면 10개 이상의 별도 구분이 가능하다 합니다. 젊은 별들이 태어난 산개성단으로 황소자리 1 등성 알데바란에서 서쪽으로 보다 보면 보입니다.


장비를 세팅하고 찾아볼 것도 없이 바로 플레이아데스 성단을 쌍안경 시야에 두고 봤습니다. 달이 환하게 밤하늘을 밝혀서 밤하늘이 밝긴 했지만 그래도 쌍안경으로 보는 플레이아데스는 아름답네요. 아쉬운 건지 다행인 건지 모르겠지만 밝은 하늘 덕분에 좀 어두운 별들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노트를 펴서 7 공주의 별들을 먼저 스케치를 하고 그 주변으로 조금 어두운 별들을 펜을 번갈아가며 스케치했습니다.

M45 플레이아데스 성단 스케치


다음으로는 뭐를 볼까 하다가 20x80 쌍안경으로 플레이아데스 아래 알데바란을 시야에 두고 봤습니다. 이쪽엔 Mel25라고 명명된 히아데스(hyades)라는 산개성단이 위치 해 있습니다. 얼핏 생각하면 성단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별들이 성글게 있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 크기는 5.5도 정도로 보름달이 가로로 11개가 들어가는 엄청난 크기를 자랑합니다. 20x80의 20 배율로는 한 화면에 다 들어오지 않아 7x50 쌍안경을 꺼내 보았습니다. 7배의 배율에도 꽉 차는 어마어마한 크기입니다.


알데바란이 위치 해 있어 찾기에는 그리 어려운 대상은 아니지만 재밌게도 알데바란은 같은 위치에만 있을 뿐 히아데스성단의 구성원은 아닙니다. 황소자리에서 알데바란과 함께 V자 모양을 그리는 성단입니다.


경위대 위에 20x80 쌍안경을 올려두었는데 가지고 있는 7x50 쌍안경은 삼각대 등에 거치를 하기 위한 액세서리인 '비노 홀더'가 없어 고정을 해서 보기엔 불가능했습니다. 대상을 찾는데 그리 어려운 대상은 아니라 쌍안경은 목에다 걸고 손으로 들고 보며 스케치를 진행했습니다. 플레이아데스와는 달리 별들이 많이 보이지 않아 조금 아쉬운 대상이기도 했습니다.

두장의 스케치를 마치고 나니 하늘에 구름도 조금 지나가고 있고 밝은 하늘로 더 볼만한 대상도 없는 것 같아 철수했습니다. 재밌는 점은 7x50 쌍안경으로 히아데스를 보는데 중간에 유성이 하나 반짝 지나가는 걸 보았습니다. 보통 유성은 넓은 구역을 랜덤 하게 지나가기 때문에 쌍안경이나 망원경 같은 화각이 좁은 장비보다는 맨눈으로 보는 게 일반적인데 오늘은 재수가 좋았는지 우연하게 제가 보는 시야 안으로 유성이 떨어졌네요.


앉아서 대상을 집중해 보며 스케치하는데 매력을 점점 느껴가고 있는 거 같습니다. 관측을 하며 중간중간 기록 사진을 남기는 것도 좋긴 하지만 퀄리티가 아쉬운 경우엔 앉아서 진득하니 스케치를 해보는 것도 좋은 거 같네요. 다음번엔 월령 좋을 때 하늘이 다시 열려서 신나게 스케치를 할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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