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동 한 포크

사랑은 그렇게 여러 모습으로

by FONDOF

스타필드 잇토피아 존






저녁 8시경,

늦은 시간이지만

나와 일행의 아이들을 포함,

아직 여러 아이들이 신나게 놀고 있다.


우리들 테이블 바로 옆에

6살즈음? 3살 즈음? 형제아이 둘과 그들의 어린 엄마,

그리고 젊어 뵈는 외할머니가 함께 와서

바리바리 가방이며 겨울외투 등을 늘어놓고 자리 잡는다.


“밥 다 먹고 들어가서 노는 거야. 밥 다 먹는 사람만 들어갈 수 있어.”

어린 엄마는 짐짓 엄한 목소리로 훈육해 보지만

아이들은 밥은 관심도 없고 그저 놀러만 가고 싶어서

의자에 붙어있던 엉덩이를 들썩이다 무릎을 꿇더니

기어이 두 발로 일어서 놀이공간에서 뛰어노는 다른 아이들을 구경한다.


“가, 가. 들어가서 먹자. 할머니랑 같이 가자.”

결국 외할머니가 그 뒤를 쫓아 들어가 정신없는 속에 앉으셨다.

아이들은 목줄이 풀어진 강아지들처럼 쏜살같이 놀이공간으로 뛰어 들어갔고

할머니는 푹신하게 쿠셔닝 처리된 벽에 등을 대고 천천히 아구구구 앉으셨다.


왼 손에는 앞접시, 오른손에는 포크를 들고

“이준아!” 부르자

일곱 살쯤 되어 보이는 첫째 아이,

셔츠에 가디건, 보타이까지 멋을 낸 모습으로 달려와

입을 아 벌리는가 싶더니 씨익 웃고는 다시 뒤돌아 뛰어가버린다.

그 뒷모습을 허탈하게 지켜보시다가

"아이고.. 그럼 서준아!" 꿩 대신 둘째 아이를 부르신다.


동생이 달려와 할머니 무릎에 아무렇게나 앉는다.

입을 와앙 벌리자 한 가닥이라도 흘릴세라 우동을 정성껏 넣어주시고

아이는 입안 가득 우동을 우물거리며 위태로운 걸음걸이로 다시 놀러 가버린다.


"아이고, 얘.. 이거 더 줘. 애들 이거 잘 먹는다 야, 이만큼 먹었다."

하며 딸에게 앞접시를 들어 보여주시는데

그 와중에 첫째 아이가 달려와 도둑처럼 포크를 뺏어 들고 우동 한 입을 욱여넣는다.

그런 아이를 지긋하게 보시다가 문득 고개를 돌려

"아이고 야 야! 쟤! 쟤 간다!"

하는 외할머니의 다급한 성화,

빨간색 맨투맨 티셔츠를 입은 둘째 아이가

넘어질락 말락 할랑거리며 맨발로 놀이공간을 뛰쳐나오더니

식당가를 등지고 엘리베이터 쪽으로 뛰어간다.

검정 패딩을 벗지도 못하고 어깨에 반쯤 걸쳐 입은 엄마가

얼른 일어나 전력질주로 아이가 사라진 쪽을 내달린다.

수 분 뒤 아이를 아무렇게나 들쳐 안고 데려와 의자에 앉히면

아이는 부지런히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가며 주변을 살피다가

부지불식 간에 또 뛰쳐나가기를 수 차례.


“먹고 먹고 먹고 먹고! 먹고 가아 서준아!”

우동 한 포크를 들어 보이며

“서준아 얼른! 이거 얌냠! 얌냐암! 이서주운!”

동생아이가 선심 쓰듯 할머니가 앉아있는 구석으로 달려와 입을 와앙 벌리자

할머니는 찰나를 놓치지 않고 쏙 넣어주셨다.

미끄덩한 우동 한 가닥이 아이 입에서 튀어나온다.


작은 콧구멍으로 들어찬 숨을 쉬느라 힘겨워보이는 아이가

할머니에게 손을 들어 커다랗게 흔들어 보이자

“왜? 뭐? 알려주는 거야? 이거 뭐? 악수? 그래 악수! 만나서 반가워~”

할머니는 아이들의 말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번역해 주시며

빈 포크에 다시 우동 면발을 돌돌 말아 한 입 크기로 만드신다.



몇 번이고 놀이공간의 담을 넘어 탈출을 시도하는 둘째 아이,

내가 앉아있는 쪽으로 가까이 와서 눈을 맞추고는 싱긋 웃어 보인다.

맨들맨들 광이 나는 갈빛 피부에

내 얼굴이 비칠듯한 검고 투명한 눈동자와 기다란 속눈썹,

공룡알 같은 머리통 가득 곱슬거리는 짧은 머리카락이 예쁘게 나있다.


“아이, 아서! 이루와 이루와!”

혹시 방해가 될세라 아이의 가슴을 부드럽게 감싸는 할머니의 손,

아이는 순간 맹수처럼 그 손등을 앙! 물어버리고는 도망가버린다.

할랑할랑이다가도 순식간에 속도를 올려 달려가는 바람에

뒤따르는 할머니께서 땀이 뻘뻘 나셨다.


“아이고 친구야~ 고만 도망가, 할머니 힘드셔~”

다시 내 앞으로 돌아와 애교 부리듯 웃는 아이에게 얘기하자

“살 빠지고 좋네요. 하이고..”

할머니께서는 손자를 더없이 사랑스럽게 내려보시며

괜히 한 번 이마를 쓸어내리셨다.



꺄아악꺅꺅꺅 내지르며 해맑게 웃는 아이의 웃음소리가 귓청을 뚫고 송곳처럼 찌른다.

“소리 지르지 않아!” 멀찍이서 한 마디 하는 아이의 엄마,

“아유 우리 준이! 기분 좋아?” 하시며 뒷짐 지고 아이의 마음을 번역해 주는 할머니.


첫째 아이와 같이 놀던 하얀 드레스를 입은 여자아이가 와서 뭐라 뭐라 귓속말을 하자

과장되게 허리를 숙여 아이의 입에 귀를 갖다 대주신다.

그 틈에 둘째 아이는 수그린 할머니의 핸드백이 자신의 눈높이까지 내려오자

오소리처럼 마구잡이로 뒤져댄다.


“엄마! 가서 밥 먹어! 내가 있을게!”


드디어 딸과 바통터치를 하고 식탁모서리에 걸터앉아

주먹만 한 함박스테이크를 자를 새도 없이

그냥 포크로 집어 한 입에 넣고 이로 잘라 드신다.

몇 술 뜨지도 못하고 입 안 가득 우물거리며

다시 도망가는 둘째 아이를 쫓아 뛰어가신다.


곧이어 할머니에게 매미처럼 달라붙어 안겨오는 아이의 입에

또 한 술 넣어주시는 할머니,

도리도리 세차게 고개를 젓고는 허리를 활처럼 꺾어 할머니 품에서 내려와

다시 놀이공간으로 뛰어들어가는 아이의 뒷모습을 보시며

무겁지 않은 한숨을 한 번 후우 쉬신다.










#남자작은인간들

#효도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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