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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ylogic Jan 02. 2018

나의 글꼴 만들기,
그 지난 이야기

이야기의 시작...

25년 동안 새로운 글꼴을 만들었다.  


글꼴, 그러니까 폰트(Font)를 만든다고 하는 것은, 한때 첨단 사업의 하나로 인식될 만큼 진입 장벽이 높은 일 중의 하나였다.  

간단한 소프트웨어 프로젝트 몇 가지를 완료해 본 경험이 전부였던 30대 초반에, 겁 없이 뛰어든 폰트 사업은 극복해야 할, 수많은 난관을 내 앞에 펼쳐 두고 있었다. 나는 프로그래머였고, 지금도 누가 내 직업을 물어본다면 컴퓨터 프로그래머라고 이야기 하지만 글꼴을 만들고 폰트 파일을 만드는 일도 프로그램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했다. 

한겨레신문사의 본문 한결체 작업 화면

최초에 이 분야를 내게 알려주고, 함께 일해 보기를 원했던 뉴욕의 글꼴 디자이너는 글꼴을 디자인하는 것만으로 모든 폰트 사업이 완성된다고 생각하는 순수한 분이었고, 수 십 년 충무로에서 수동 식자용 원도를 그리시던, 우리 회사의 대표 디자이너 분은 컴퓨터 사용을 거부하신 전형적인 장인이었다.  

그 당시 국가의 기술 표준이라고 하는 KSC5601에 근거한 한글은 2,350자의 완성형 글꼴이었고, 당시에 뉴욕 디자이너가 내게 전달해준 글꼴 파일은 94자씩 담겨 있는 글꼴 파일 25개였다.  

94 X 25 = 2,350 글자 수는 맞는다. 

그러나 이 글꼴 파일을 내게 던져준 디자이너는 이 파일이 어떻게 하나의 파일로 만들어져서 폰트의 형태를 가지는지도, 컴퓨터 시스템이 원하는 글꼴 파일의 포맷이 무엇인지도 내게 알려주지 않았다. 아니 알려줄 필요를 못 느낀 것이다. 지금의 일반 컴퓨터 사용자라도 거의 대부분이 알만한 트루타입(TrueType, TTF)이라던가 포스트스크립트(PostScript, PS)의 기본 개념도 내게는 없었다. 모든 것이 맨땅에 헤딩이었다. 인터넷이 없던 시절이니 책을 찾아 읽어야 했고, 아는 사람들을 찾아가 물어봐야 했다. 물론 그때도 글꼴을 제작하여 판매하던 많은 업체들이 있었지만, 시장에 경쟁자로 나선다는 신생업체의 기술 담당자에게 자신들의 노하우를 알려줄 회사는 당연히 없었다. 

당시에 유일한 폰트 시장을 만들어 가고 있었던 매킨토시 판매처(애플의 한국 대리점)는 매킨토시 판매에는 나름의 능력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새로운 폰트 업체가 그 시장에 들어오는 것을 열심히 도와줄 생각은 없어 보였다. 

그래서 기술 역량을 키울 때까지 글꼴 원본 디자인을 판매하기로 했다.  

그때 만들어서 아래한글에 기본 탑재한 “태나무체”, 휴먼컴퓨터에서 판매한 “모음체”, “조각체” 그리고 매킨토시 용이었던 소프트 매직의 “계유 자체”, “갑술자체” 등이다. 라이선스 비용이 크지는 않았지만 그 돈이 없었다면 나는 글꼴 사업을 계속할 수 없었을 것이다. 물론 저작권은 내가 계속 소유하고 있었고, 당연히 내 이름으로 글꼴을 파는 것도 가능했기 때문이다. 

아래한글 2.5에 기본 번들되었던 태-나무체

그 이후에 좋은 엔지니어들을 만나고 내 역량도 조금씩 쌓여 자체 폰트 제작 툴도 만들고, 판매하는 글꼴의 종류도 늘어나게 되어, 한때 윈도우 용 트루타입 제조 업체 중의 강자가 되었던 적도 있다. 필름 영화의 기본 자막 글꼴이었던 “태-영화체”, 아래한글에서 가장 큰 인기를 누렸다는 “가지체”, “오이체”,”딸기체”, “복숭아체” 등의 번들 서체, “문방사우”,”워드”,”워드퍼팩트”,”일사천리”,”아리랑”,”파피루스”등의 전자출판 프로그램과 워드프로세서들을 위한 폰트 패키지 등등이 이때 만들어진 글꼴들이다.  

한메소프트에서 공동 발매한 글꼴 패키지

글꼴을 제작하는 업체는 많지 않았고, 필요로 하는 업체는 많았다. 소프트웨어 개발이라는 원래의 내 업무를 잊고 글꼴 제작과 판매에 온 힘을 기울였다. 그러나 호황이 보일 때 산업의 장벽이 낮아지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고, 수많은 경쟁업체들이 생기고 그들과 경쟁하는 나의 자세는 방만했다. 나는 원래의 전공이었던 소프트웨어 개발과 인터넷 사업을 하고 싶었고, 무수한 신규 경쟁자들이 진입했던 글꼴 시장은 등한시했다. 인터넷이 세상에 알려지고, 새로운 IT 시장이 열리게 되면서 나는 글꼴 사업이 내게 준 기회보다는 본연의 업무인 소프트웨어와 인터넷 시장에 몰두하였다. 글꼴 사용자들은 우리 회사를 잊어 갔고, 나도 그 시장을 잊었다. 내 컴퓨터에는 발표하지 않은 수 백개의 글꼴 파일이 그대로 남아 잠을 자고 있었다. 



시련


그 와중에 IMF가 터졌다. 대기업의 투자를 받았던 우리 회사는 모 회사가 도산하면서, 정부의 정책 자금을 상환하지 못했고,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빚이라는 것을 떠안게 되었다. 사업에 대한 모든 의지가 날아갔지만, 그래도 오랜 노트북 한편의 저장 공간에 존재하고 있던 글꼴 파일들은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다. 

새로운 사업을 진행하고 과거의 빚을 청산하며 몸과 마음이 피폐했던 과정 속에도 이 글꼴 디자인들을 세상에서 아무런 가치 없이 사라지게 한다는 것에 대한 죄의식이 발동했다. 그래서 다른 사업을 수행하는 중간중간에 디자인된 글꼴을 하나씩 수습하여 폰트 파일로 만들어 갔다. 그 와중에 편집 디자이너 친구와 함께 한겨레신문사의 인쇄용 글꼴 “한결체”를 만들고, 이전에 만들었던 글꼴들을 모아서 패키지 “The Font 2008”,”2010”을 발표했다. 잊힌 친구를 다시 만나서 회포를 푸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매우 많은 방송국, 광고, 인쇄물에 우리의 글꼴이 쓰이고 있었지만, 그중 우리의 거래처는 몇 곳이 없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고, 이리저리 확인을 해본 바, 우리의 글꼴 디자인이 다른 회사의 이름으로 판매되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글꼴의 저작권


우리 디자인을 거의 복사하여 판매하고 있는 업체의 대표는 그것이 불법이 아니라고 했다. 자기 직원이 그 글자 디자인을 좋아해서 비슷하게 그렸고 그것은 불법이 아니란다. 어떤 글꼴은 다른 사람이 가져온 글꼴을 구매해서 샀기 때문에 자신들도 선의의 피해자라고 했다.  

동업자 정신을 가지지 못한 자의 파렴치한 변명이었다. 그러나 현행 대한민국의 법은 원작자를 보호해 주지 않는다. 글꼴 파일을 복제하여 사용하거나 재판매하는 것은 범법행위이지만, 글꼴 디자인을 흡사하게 하여 새로 파일을 만든다면 그것은 불법이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나라 영화 자막의 독점 글꼴이나 다름없었던 “태-영화체”는 모든 방송국의 주요 자막 글꼴로 쓰이지만 그 글꼴을 판매한 회사는 우리 회사가 아니다. 우리 글꼴이 좋아서 그대로 디자인하여 만들었다는 회사의 주머니를 채워주는 장사 수단으로 변모한 것이다. 

태-영화체

그래서 다시 글꼴의 대중 판매를 접었다. 아니 이미 남들이 복제하여 판매하고 있는 우리 글꼴들은 그대로 판매하되 신규로 일반 대중을 상대로 하는 글꼴 판매는 하지 않으려고 마음먹었다. 

그냥 우리를 알아서 글꼴을 주문해 주는 곳의 일만 하겠다고 마음먹었다. 

전주시의 공식 글꼴인 “전주 완판본체”를 만들었고, 지방 중소 신문사의 의뢰를 받아서 새로운 신문 글꼴을 만들고 있다. 그러나 내 손끝에 달려 있으면서도 내 손가락이라고 이야기 못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우리 디자인을 되찾아 오는 것에 대한 미련을 접을 수 없었다. 

전주 완판본체 디자인 화면


그래서 무언가 정리해 두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지나간 역사와 새로운 창조의 기록


새로운 창조는 모방으로부터 시작한다고 배워왔지만 그 모방이 최종 결과물이 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에 모방과 창조의 경계를 분명히 하고 싶다. 한국에서 글꼴을 만들어 가는 모든 사람들이 “명조체”, “고딕체”라는 기본 글꼴의 형태를 “최정호” 선생이라는 거목에게서 빚지고 있는 것은 자명하고, 그 이후에 우리가 만들었던 글꼴 중 명조와 고딕은 그분의 디자인을 차용해서 사용하고 있는 것이라는 것을 명백히 해야 하는 것처럼, 지금 현재 다른 디자이너의 글꼴을 차용해서 쓴 것이 부끄러운 일이라 하여도, 디자인의 영감이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 그리고 새로운 창작 요소를 집어넣은 것이 있다면 왜 그것이 새로운 창작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 주장할 수 있는 기회도 주기를 바란다. 나는 내 글꼴의 디자인을 모방하여 판매하고 있는 양심 불량 디자이너에게도 기회를 주려고 한다. 왜 그들이 그렇게 하려고 했는지 나도 알고 싶다. 

나는 남들에게 이러한 주장을 하기 이전에 내 글꼴의 디자인을 뒤돌아 보려고 한다. 그리고 50년에 가까운 시간을 글꼴 디자인에 바친 우리의 대표 디자이너 “김화복”선생과 나를 미국에서 한국으로 끌어들여 글꼴 업계에 들어오게 만든 글꼴 디자이너 “김태수”씨의 입을 빌어 글꼴의 변천사를 들어 보려고 한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이 마무리되면 일반인들이 자신의 영감을 집어넣은 글꼴을 만들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고 이를 통해 새로운 글꼴을 만들어 보려고 한다. 보다 많은 사람들의 호응이 있다면 내 컴퓨터 한편 구석에 저장되어 있는 오랜 글꼴들을 끄집어내어 세상에 발표하려고 한다. 이러한 과정의 일련에 나와 뜻을 함께 하는 사람들이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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