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을 보고 왜 갑자기 과일과 채소 이름이 등장하는지 의아해하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어차피 글자 이야기를 하는 브런치이다 보니, 아래한글의 가지체, 오이체, 복숭아체, 딸기체, 옥수수체를 떠올리는 분들도 계실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 글꼴들은 90년대 중반에 한글과 컴퓨터사와 태시스템이 공동으로 예쁜 손글씨 공모전을 열고 그때 참가한 손글씨들 중에 1~5등을 골라 그분들의 손글씨를 가지고 태시스템이 제작한 글꼴들이다.
당시만 해도 일반인들의 손글씨를 폰트로 만드는 일은 그리 흔한 일이 아니었다.
아래한글에만 해도 "필기체"정도의 폰트 만이 손글씨 종류의 폰트였고, 개인의 손글씨가 하나의 글꼴화 되어 폰트 프로그램으로 제공되는 일은 없었다.
이후에도 나는 꾸준히 붓글씨와 펜글씨 등을 가지고 글꼴을 만들었다.
사람의 손이 빚어내는 아름다운 필체보다 더 좋은 글꼴은 없다고 생각했었다.
만일 추사가 쓴 한글이 여러 자 있어 이를 기반으로 한글 글꼴을 만든다면 얼마나 멋진 글꼴이 나오겠는가.
이 글꼴들은 아래한글에 기본으로 탑재되면서 엄청난 사랑을 받았다.
아래한글의 파일 포맷으로 공급되었던 해당 글꼴들은 디지털 데이터의 저작권을 가진 우리 회사에서 TrueType 형태로 만들어져 우리 사이트(www.thefont.co.kr)에서 판매되고 있다.
많은 이들이 이 글꼴들을 가지고 연애편지를 쓰기도 하고, 상품의 설명서에 사용하기도 하였다.
손으로 쓴 맛이 그대로 살아있는 글꼴들이라 특정한 용도에 맞춰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 곳에서나 사용이 되었다.
이후로 많은 업체들이 손글씨 공모도 하고 손글씨를 기반으로 폰트를 만들어 내고 있지만, 나는 전문 캘리그래피 작가의 손글씨보다 이 다섯 글씨의 순수한 느낌이 더 좋다.
한 가지 사족...
이 글꼴이 성공을 거두고 나서 유명 연예인들의 손글씨를 만들어 보자는 기획을 만들어 96~7년 경의 최고 아이돌인 H.O.T의 손글씨 기반 글꼴을 만들어 보려고 시도했었다.
최근에는 많은 연예인들이 그들의 손글씨를 가지고 폰트를 만들고 있지만, 당시에는 그런 시도가 없었다.
처음에는 예상외로 기획사 쪽에서 쉽게 이야기를 진행해 줬고, 이 일의 실무 담당 우리 직원이 모든 계약 서류를 모두 꾸며 H.O.T의 기획사를 방문하려던 날 아침에 기획사에서 갑자기 우리가 감당하지 못할 조건을 제시하여 이 일은 무산이 되었다. 내가 그 당시 아이돌의 가치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여 발생한 문제이거나 그들이 우리가 만드는 폰트의 가치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여 발생한 문제인 것 같기는 하나 몹시 아쉬웠던 일이었다.
최근 그들이 다시 뭉쳐서 뭔가를 한다는데, 나도 이제 그들의 손글씨에 관심이 없어졌다는 말 정도로 소심한 복수를 해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