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도 지향 글꼴
아주 오래전에 전자제품을 판매하는 대기업 두 곳에서 각각 우리 글꼴 하나를 찍어서 대량 구매를 하겠다고 요청했던 때가 있다.
그 글꼴은 우리 회사의 "태-화고딕"(태-CAD고딕)이었다.
나는 이 글꼴이 어떤 용도로 사용되는지 물어봤고, 그들은 그들의 디지털 장비의 설명 문구로 모두 이 글꼴을 사용한다고 했다. 나야 가지고 있는 상품을 판매하는 입장이니 주문이 들어오면 좋을 일이었지만, 왜 이 글꼴이어야만 했는지 당시로는 이해하지 못했었다.
"태-화고딕"은 정방형 내부를 거의 모두 사용하여 동일한 공간에서 가장 크게 글자를 인쇄할 수 있도록 디자인되었다.
비슷한 형태로 보자면 "태-둥근고딕"과 획의 모양은 다르지만 동일한 공간 배분을 가진다.
두 가지 글꼴은 일반적인 고딕, 굴림체와는 비슷한 획의 모습을 가지지만 다른 구조를 가진다.
다른 구조가 없었다면 저작권의 제한이 없는 글꼴을 그냥 사용해도 될 것을 비싼 로열티를 지불해 가며 우리 글꼴을 사용할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태시스템의 두 가지 글꼴은 정사각형의 내부 모두를 사용하기 위하여 초성과 종성의 좌우를 크게 하고, "ㄷ"과 같은 획의 위치도 가급적 정사각형의 가장 넓은 공간을 사용하도록 디자인되어 있다. 작은 공간에 찍어도 가장 큰 글자를 보여줄 수 있는 장점이 있었던 것이다.
일부 업체에서 초기에 "태-둥근고딕"을 사용하다가 차후에 "태-화고딕"을 사용한 이유를 보면, 획의 꺾임에 각이 없는 글꼴을 작은 플라스틱 장비 위에 인쇄할 경우 너무 뭉툭한 느낌이 강했다고 한다.
그래서 획의 각이 날아가는 부분을 고려하여 태-화고딕을 더 많이 사용한 것이다.
"태-화고딕"은 이후에 몇몇 설계업체에서 캐드 장비용으로 수정해 달라는 요청을 받고 "태-CAD고딕"으로 이름을 바꾸어 출시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