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Cylogic Jan 24. 2018

 글꼴 썰(說) #2 : 태-영화체, 태-영화명조체

용도 지향 글꼴

특정한 글꼴이 특정한 용도를 위하여 만들어지고 쓰인다고 생각하지 않던 독자들이라도, "태-영화체"가 영화 자막이라는 용도를 위해 적합하다고 하는 사실을 의심하지는 않을 것이다.

앞에 영화 자막 글꼴의 제작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과연 무엇 때문에 수많은 글꼴들 중에 이 글꼴이 영화 자막에 쓰인 것인가에 대해서 다시 한번 설명해 보려고 한다.


지금처럼 디지털 데이터로 영상에 직접 글자를 입힐 수 있는 기술이 만들어 지기 전에는 영화 자막을 필름에 입히는 작업은 상영용 필름이 모두 현상되어 제작된 이후에나 가능한 일이었다.

물론 원본 필름에 자막 글자를 입히는 방법도 가능한 방법이었겠지만, 자막이 찍혀있는 Positive 필름을 다시 Negative로 만들고, 이를 상영용 Positive로 만드는 과정의 화질 손실을 방지할 수 있는 방법도 이 글꼴을 만들던 1990년대 초반에는 개발되지 않았었다.


동판을 이용한 자막 제작


그래서 존재했던 유일한 방법이


1. 글자를 필름 사이즈로 축소하고

2. 동판에 글자를 감광하여 부식하고

3. 부식된 동판에 약품을 묻혀 필름의 화상 막에 도장을 찍듯이 글자를 찍어내는

이러한 방식이 유일한 자막 제작 방법이다.

영화자막용 동판 - 각 자막별로 잘라져서 사용된다.



그래서 우리가 판매하고 있는 "태-영화동판체" 글꼴을 보면 다음의 특징을 갖는다.


1. 글자의 끝획이 둥글게 뭉쳐있고

2. 가로와 세로의 글자 획의 굵기가 동일하고

3. 획이 꺾이는 부분도 둥글게 처리

하는 이러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디자인의 이유


그 이유는 동판의 부식에 있다.


화학 약품에 의하여 부식이 이루어지게 되면, 

1. 글자의 획 끝은 3면에서 약품의 영향을 받게 되고  그 끝이 뾰족하게 부식이 된다.

2. 가로와 세로의 획 두께가 다르면 약품의 농도에 따라 특정 획이 너무 많이 부식되어 사라져 버리는 경우가 생기게 된다.

3. 만일 획이 꺾이는 부분이 각지게 되면 구부분은 부식액의 영향을 덜 받게 되어 두껍게 획 모양이 만들어진다.


그러니까 영화체의 디자인은 단순히 그 모양의 아름다움 만을 위하여 만든 것이 아니라 용도에 적합하게 만들어진 디자인인 것이다. 초기에 영화 자막 글꼴의 주문을 받고 김화복 선생의 손글씨에 위와 같은 디자인 요소를 입혀 "태-영화체"가 탄생한 것이다.


태-영화명조체


90년대 초반의 모 영화사 사주께서 "에로물"에는 "태-영화체"가 어울리지 않는다고(?) 자막용 명조체를 개발해 달라고 주문한 적이 있다. 그분의 지론은 "에로물"응 명조체를 써야 한다는 것이었다.

중명조(좌)와 태-영화명조(우)


그래서 만든 것이 "태-영화명조" 글꼴이다.

좌측의 일반 명조에 비하여 우측의 "태-영화명조"는 가로획이 더 두껍게 디자인된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일반적인 명조체는 가로획이 세로획에 비하여 가늘지만 영화명조체는 동판 부식을 위하여 가로 세로를 동일한 굵기로 디자인한 것이다.

"에로물" 수입으로 큰돈을 버셨던 영화사 사장님도 흡족해하셨던  것 같다.^^


눈에 보기 좋아서 특정한 디자인을 만들 때도 물론 있다. 

그러나 디자인 상품이 차후에 어떻게 이용될 것인가를 이해하고 디자인하는 것 역시 중요한 것이다. 시각디자인과 산업디자인의 협업이 글꼴 디자인에 녹아 있다고 할 것이다.


태-영화체 도용에 대하여


영화체를 흡사하게 만들어 판매하는 부도덕한 글꼴 업체들도 있지만, 이러한 영화체 제작 원리를 알고 글꼴의 디자인을 도용하는 것 같지는 않다. 최근 방송에 보이는 영화체는 이러한 업체들이 디자인을 도용하여 만든 글꼴들이 대다수이고, 법은 원작자를 보호하지 않고 창작의 의지는 꺾이게 된다.


동업자 정신을 가지지 못하고 디자인의 창작성을 인정하지 않는 글꼴 업계의 풍토 때문에 나는 더 이상 일반 상업용 글꼴의 발표를 하지 않고 주문 글꼴만을 만들고 있다.  그래서 이렇게 지난 일들과 사랑하는 글꼴들에 대하여 글을 쓸 수 있는 여유가 생긴 것인지도 모른다며 위안을 삼는다.


매거진의 이전글 글꼴 썰(說) #1 : 신명조, 신문명조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