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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ylogic Jan 19. 2018

글꼴 썰(說) #1 : 신명조, 신문명조

용도 지향 글꼴

이 글을 읽기 전에 미리 기억하실 것...


첫째, 필자는 폰트가 주요 상품 중 하나인 회사를 20여 년째 운영해 오고 있지만 출신 성분이 프로그래머이다. 따라서 용도에 따른 좋은 글꼴의 선택 기준이 시각 디자이너나 출판 사업자와는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기술적으로 또는 제작의 특성상 필요하여 만들어진 좋은 글꼴들에 대하여 이야기해 볼 것이다.


둘째, 좋은 글꼴이라고 하는 것의 기준은 각 분야에 따라 다양할 수 있다.

한글의 과학적 구조를 잘 보여주는 글꼴? 

미적으로 아름다운 글꼴? 

특이해서 재미있는 글꼴? 

용도에 적합한 글꼴? 등등등...


출신 성분이 프로그래머인 필자가 미적인 문제를 이야기하는 것은 오버이다. 

그리고 개인적 취향이 다른 재미있는 글꼴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것 역시 그리 신뢰할 만한 것이 아니다.

그래서 용도에 적합한 좋은 글꼴에 대하여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그리고 다른 회사의 글꼴을 가지고 이러니 저러니 이야기하는 것은 업계 동업자로서의 예의가 아닌 것 같아 가급적 우리 회사의 글꼴을 가지고 이야기해보겠다. 

(물론 어쩔 수 없이 거명되는 타 폰트 업체의 디자이너 분들께서도 문외한의 주관적 의견임을 이해하시리라 믿는다. 그들이 우리 디자인을 복제한 업체의 디자이너가 아니라면 가급적 좋은 이야기만 할 것이다^^ 선한 디자이너에게는 복이 있을지어다.)



용도 지향 글꼴


그냥 이렇게 용도 지향 글꼴이라고 이름 붙여 보았다. 아래 소개하는 글꼴들은 그 제작의 목표가 뚜렷했던 글꼴들이다. 몇 가지 글꼴을 예로 들어 그들이 왜 그렇게 만들어졌고, 어떠한 이유로 그 용도에 적합한 글꼴임을 보여주는지에 대한 나의 의견을 이야기해 보겠다.


1. 최고의 본문용 글꼴 - 최정호 선생의 신명조


이 글꼴은 용도 지향의 글꼴이 아니라 우리 한글 명조체의 근간이 되는 글꼴이므로 소개한다.

나는 이 글꼴을 1990년 뉴욕의 한국계 신문사에서 사용하던 신문 조판기의 전산 사식기 출력물로 처음 접했다. 물론 이 글꼴이 인쇄된 신문, 잡지를 이전에도 보아 왔겠지만 이것이 누구의 어떤 글꼴임을 인지하지 못했다. 사실 글꼴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 출판물의 인쇄 글꼴에 대해 속속들이 안다는 것은 가능한 일이 아니다.

약간은 반짝이는 출판용 사진 인화지에 출력되어 나오는 글꼴의 아름다운 조화에 너무나 감탄한 이유가 무엇인지 모르겠다. 그 글자는 단순히 명조체일 뿐인데...

최정호 선생의 신명조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디지털 글꼴 중 하나...

그때 그 신문사에서 사용하던 조판시스템과 출력기기는 모두 일본 모리사와라는 업체의 기기였다. 나는 그 모리사와 장비의 조판 기기를 사용하지 않고 출력기기를 사용하는 소프트웨어 개발에 투입되어 있었다.

글꼴에 대해 특별한 경험이 없었지만 이렇게 아름다운 글꼴이 한국업체의 장비가 아니라 일본 업체의 장비에 탑재되어 있다는 것에 의문을 가졌지만 글꼴에 별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그때는 그냥 그렇게 넘겼다.


이후 이 글꼴이 수많은 워드프로세서, 전자출판 프로그램에서 기본으로 사용되는 신명조, 또는 그냥 명조체의 원형임을 알게 되었다. 이 이후에도 수많은 명조체라는 이름의 글꼴들이 나오지만 그 글꼴 어느 누구도 최정호 선생의 신명조에 빚지지 않았다고 이야기하지 못하리라.

이전에도 명조체가 없지는 않았지만 받침의 크기가 신명조에 비하여 작고 글자의 높낮이가 들쑥날쑥하여 가로 글꼴 기반의 현대 조판에는 어울리지 않았다.


난 감히 이 글꼴이 우리나라 모든 현대 한글의  원류라고 생각한다.

만일 이 글꼴이 보고 싶다면 많은 글꼴 업체들에서 출시하고 있는 신명조 글꼴을 보면 된다. 모든 업체들이 거의 원형을 구현하였다고 생각된다.




2. 데이터 전달 능력이 뛰어난 가독성 높은 글꼴: 신문명조
    그리고 최초의 탈네모꼴 신문체 : 한겨레신문의 "한겨레결제"


대부분의 신문 글꼴들은 비슷한 형태를 가져서, 일반인들이 그 글꼴의 차이를 구분하기 어렵다.

새로 신문 글꼴이 바뀌었다는 신문사의 사고를 보아도 그게 어떤 의미 인지 확인하려면 돋보기를 꺼내어 각 획을 뜯어보아야 한다. 그러나 뭔지 모르게 신문을 읽고 있는 눈의 흐름이 좋다던가, 안정되게 정보를 읽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신문사의 투자는 성공한 것이다. 

3개 사의 신문 글꼴을 교차 편집한 예문 - 차이를 아시겠는가?

그 변화에 파격을 주는 것은 보수적 성향이 강안 언론사에게는 무척 위험한 일이고 신문사의 글꼴은 큰 틀을 벗어나기 어렵다.

위의 신문명조 예문은 3개의 신문 글꼴을 섞어서 편집한 것이지만 아주 자연스럽게 화합한다. 신문명조 글꼴들은 모두 같은 원류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형태를 지니게 된 원인을 알기는 어렵지만 동일한 면적에 가장 많은 정보를 넣고 그 편집 후의 가독성이 좋다는 판단이 있었을 것이다.


한겨레신문사가 중앙 일간지 최초로 가로 쓰기 만으로 신문을 낸 것도 대단한 용기였고, 최초로 네모 반듯한 글자를 벗어난 한겨레결체를 사용한 것은 더 큰 용기가 필요했다.


한겨레결체 예문

물론 용기가 만용으로 비쳤을 수도 있다. 그러나 한글이 가진 고유한 정신을 다양한 방법으로 구현해 보고 싶은 모든 참여자들이 만들어낸 작품이었다. 당시의 기획자 중 한 명 이였던 "글씨미디어의 홍동원 소장"이 이야기한 것처럼 단어 하나하나가 이미지처럼 기억되는 알파벳처럼 물결 흐르듯 이미지가 생성되는 글자 형태를 만들려고 했던 것이다.

글자 디자인 당시의 다양한 기획 의도는 별도의 이야기를 통하여 설명하겠지만, 위아래가 동일한 맞춤선을 가지고 진행되어온 기존의 편집을 벗어나는 것이 편집자들의 입장에서 쉽지 않았을 것임을 이해한다.


<계속>


(글꼴 이야기를 비교적 자세히 쓰다 보니 글을 몇 개의 꼭지로 나누어야 할 것 같아, 다음 이야기 꼭지에서 다른 글꼴들에 대하여 좀 더 이야기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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