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ylogic Jun 14. 2018

인쇄방법이 고려된 글꼴 디자인

앞서 태-영화체에 대하여 이야기하며 동판의 부식을 고려한 디자인에 대하여 설명하였다.


태-영화체는 수동식자판용 / 동판부식용 / 디지털 작업용 / 레이저 작업용 등으로 구분되어 제작되었는데, 초기 제작 당시에 의도된 디자인뿐 아니라 새로운 적용 분야가 생길 때마다 해당 작업을 위한 디자인이 추가로 적용되어, 글꼴의 모양이 일부 수정되었다. 


이처럼 글꼴의 디자인은 미적인 고려와 함께 용도에 대한 고려가 있어야 한다.


이번 이야기에서는 그러한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겠다.



글자가 특정 매체에 옮겨지는 과정


글자가 특정 매체에 옮겨지는 과정은 무척 다양하다. 


1. 붓으로 쓰는 방법

2. 광화문 현판이나 비석처럼 붓으로 쓰고 써진 글자를 양각, 혹은 음각으로 새겨 넣는 방법

3. 탁본처럼 새겨진 글자를 종이에 옮기는 방법

4. 팔만대장경 / 우리 선조가 세계 최초로 개발한 금속활자 / 도장 등과 같이 글꼴의 모양을 딱딱한 물체의 겉면에 양각 또는 음각으로 새겨서 그 면에 묻은 먹이나 인주를 종이에 찍어내는 방법

5. 등사지에 철필로 글자를 새겨서 먹을 투과시켜서 인쇄하는 방법

6. 등사와 비슷하나 손으로 쓰지 않고 푸른 등사지에 타이프로 글자를 새겨서 먹을 투과시키는 방법

7. 같은 원리이나 먹보다는 스프레이를 투과시키기 위하여 만든 스텐실을 이용하는 방법

8. 인화지에 음화 처리된 글자 원판에 빛을 투과하여 감광시키는 방법

9. 옵셋 인쇄의 방법

10. 컴퓨터로 인쇄하는 방법

11. 레이저로 각인하는 방법


대충 생각해 보아도 10가지가 넘는 방식으로 글자를 매체에 옮길 수 있다. 

4번 이후가 대량 생산을 위한 방법이 될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끝이 아니다.

인화지에 글자를 찍어낸 것은 옵셋으로 인쇄되기도 하고, 동판으로 만들어져 필름에 찍히기도 한다.

이렇게 여러 가지 방법이 서로 조합되어 글자를 찍어내기도 한다. 

이럴 경우 글자가 여러 매체에 옮겨지는 과정 하나하나에서 글꼴 디자인에 대한 고려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디자인 고려 사항


이 내용의 상당 부분은 현재는 불필요한 디자인 고려 사항이다.


어찌 되었건 그중에 내가 경험한 몇 가지 디자인 고려 사항을 살펴보면...


1. 획 뭉침 방지 디자인


처음 접했던 글꼴 원도 중에 두 획이 만나는 위치를 위의 보기와 같이 파낸 듯이 디자인한 원도를 본 적이 있다. 디자이너분께 여쭤 보았더니, "인쇄 중 두 획이 만나는 부분에 잉크가 뭉쳐서 획이 뭉개져 보이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라고 답해 주셨다. 당시만 해도 인쇄기의 성능이 정밀하지 못하여 잉크가 번지기 때문에 착안한 디자인인 것이다. 물론 지금은 위와 같이 디자인하지 않는다.


2. 부식 농도 조절 디자인

이전 글에도 소개했지만 태-영화체 처럼 부식을 통하여 동판을 만드는 경우 획의 끝이 3면에서 부식액을 접하게 되어 다른 부분보다 더 많은 부식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하여 획의 끝을 위와 같이 둥글게 디자인한 것을 알 수 있다. 실제로 태-영화체가 나오기 이전에 손으로 자막을 써오던 분들도 획의 끝을 위와 같이 둥글게 시작하고 둥글게 마무리하였다.


3. 구멍 뚫기 디자인



태-스텐실 체는 스텐실을 위하여 주문받아 제작한 글꼴이다.

기계 제작 업체에서 제작한 기계의 연번과 명칭을 스텐실 스프레이를 통하여 찍어내기 위하여 주문했다.

처음 제작 당시에는 ㅁ, ㅇ, ㅎ 과 같이 폐곡선을 이루는 부분만 잘라내서 만들면 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ㄹ과 같이 획이 많은 경우 스텐실이 힘을 받지 못하여 이 부분도 잘라내는 작업을 하였다. 

중성이 어디에 오느냐에 따라서 잘라내는 부분을 변경하면서 제작하였다.



4. 획의 각 살리기 디자인

고딕의 경우 획 마무리의 각진 부분을 살려야 전체적인 디자인이 살아난다.

과거의 인쇄 방식에서는 글자가 작게 축소되면서 획의 마무리가 뭉개지는 현상이 나타났고, 이를 방지하기 위하여 획의 마무리 부분을 외부로 도드라지게 뾰족하게 디자인하였다. 이렇게 디자인하여야 뭉개지지 않고 각이 잘 잡힌 형태로 인쇄되었기 때문이다.

이 역시 지금과 같이 정밀 인쇄가 가능한 현재는 필요 없는 디자인일 수 있다. 그러나 많은 고딕형 글꼴들에서 아직도 이러한 디자인이 남아 있다.


5. 레이저 인쇄를 위한 디자인

위의 그림은 태-나무체의 일반 인쇄용과 레이저 인쇄용을 구분하여 보여주는 예시이다.

일반적인 아웃라인 폰트의 경우 각 획의 모양을 폐곡선으로 만들고 이 내부를 검게 칠하여 (렌더링) 글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레이저로 자막을 만들거나 각인을 할 경우 이와 같은 폐곡선의 효과를 나타내기 어려우므로 단선의 베지어 커브(Bezier curve)로 글자의 형상을 만들게 되고 이를 적절한 파일 포맷으로 변환하여 글꼴을 만든다.

단선의 글꼴은 때로는  특정 프로그램에서 제대로 인식되지 않는 경우가 있어서 자체 글꼴 포맷과 이를 구동하기 위한 드라이버를 만들어 사용하기도 하였다.


6. 코딩을 위한 디자인


네이버에서 제공하는 D2Coding Font


컴퓨터 프로그래밍(코딩)을 위한 폰트도 있다. 과거에는 영어권을 위한 알파벳만으로 구성된 폰트가 여러 가지 있었지만, 한글을 포함하고 세계인이 사용할 수 있도록 제작된 코딩용 글꼴도 있다. 위의 그림은 네이버에서 제작하여 배포하고 있는 D2Coding 폰트이다. 코딩 시에 헛갈릴 수 있는 숫자 0과 알파벳 O, 숫자 1과 영문 l, I 등이 구분되도록 디자인되어 있다. 작은 타이핑 실수 하나도 많은 오류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코딩의 특성상, 디자인의 미려함 보다, 가장 구분하기 좋은 형태의 디자인을 적용하여 폰트를 구성하였다.




산업 전반이 활발하게 움직이고, 이에 따른 산업체의 요구 사항이 반영된 것이 주문형 글꼴이었고, 과거에는 패키지용으로 제작된 글꼴에서 발생하는 수입보다 주문 서체의 개발에서 발생하는 수익이 훨씬 컸던 시절도 있다.  


이제는 새롭게 글꼴을 디자인하기보다는 컴퓨터를 이용한, 후처리 효과를 이용하여 산업체의 요구를 수용하는 형태로 글꼴이 이용되는 것 같다.


좀 더 많은 이야기는 더 많은 자료가 축적된 이후에 이어 가겠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