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무서워 보이지만 겪어보면 한번 겨뤄볼 만한 것들이더라.
난 어렸을 때부터 유별났다. 그 유별났다는 게.. 주변 사람들과 동화되지 못한 것. 막 다양한 색채의 사람들이 모여 밍글 되면 난 이상하게 그 색채 안에 섞이질 못했다. 학교 안에서 과제를 할 때나 회사에서 일을 할 때나, 같은 방향으로 가고 있어도 다른 사람들이 직진할 때 나는 혼자 외딴곳으로 가고 있기도 했다.
주변에서 나를 보는 시선은 시샘할 것조차 없는 평범하고 약간 뒤처지는 듯한 사람이었다. 가끔은 4차원의 소리를 듣기도 하고 AB형 같다는 얘기를 듣곤 한다(물론 난 AB형 부심이 있다). 더 이상한 말들도 친한 사람들이 해주곤 했는데 난 그런 상황을 매우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왔다.
그러다 가끔 나로 몰리는 질타를 받을 때가 온다. 주위의 시선이던 나로부터 시작되는 불운의 감정이던.. 이게 참 중/고등학생 때, 대학생 때까지도, 직장 5년 차가 되어서도 나를 힘들게 할 때가 가끔 오는데.. 그것은
"나는 대체 어떤 사람이지?"
"난 무엇을 잘하는 사람이지?"
"나는 왜 남들보다 눈에 띄게 잘하는 게
없을까"
하는 식의 질문으로 시작된다.
솔직히 말하면 서른넷의 나는 지금 제대로 이뤄놓은 것이 없다. 지금 성공 스토리를 쓰려고 하는 건 아니다. 그렇다고 실패하지도 않았지만 말이다. 나는 그냥 한 인생의 성공이 돈이 아닌 자신의 이름, 세 글자가 얼마나 존재감 있게 살아가고 있냐는 것을 말하고 싶다. 어찌 보면 내 나이가 많고 어찌 보면 나이가 적을 수 있다. 인생을 논하기엔. 그러나 내 주위의 소중한 사람들이 어려운 일이 있거나 고민이 있으면 제일 먼저 나를 찾아온다. 나보다 나이가 어리던 나보다 많던.. 지금 와서 그 이유를 생각해보면
내가 어렸을 때부터 유별났다고
주위에서 질타나 눈초리를 받아왔던 건.
다름 아닌 주관이 강해서였다.
고집이 아닌 주관
우리는 어린애가, 혹은 젊은 사람이 자기 주관 있게 의견을 내거나 질문을 하면 칭찬하기보다 '시키는 데로 해' '어린애가 고집이 세네' '말대꾸하지 마' '네가 나보다 잘 아니?' 이런 식의 대답을 들어왔다.
직장의 막내는 스스로 먼저 일하기보다 그냥 시키는 데로 잘하기를 원했고, 잘 웃고, 눈치가 빠른 사람을 더 선호했다. 학교에서는 정해진 답이 있기에 틀리면 혼나기 마련이었다. 틀림과 다름의 경계선은 명확히 할 필요가 있는 데 말이다.
우리는 너무 자연스럽게 나이 많은 상대방이 얘기하면 그걸 자연스레 따라야 했고 우린 그걸 예의라고 배워왔다. 난 따르지 말라고 하는 게 아니다. 적어도 내 생각에 눈 앞에 보이는 상황이 '옳지 않다'라고 판단되면 자기 주관대로 행동해도 된다는 말을 하고 싶다. 그게 어렵다면 도움을 청해도 되는 것이다.
나는 요즘 이런 사건(#N번방사건 #아동성착취물)들을 볼 때면 내가 할 수 있는 게 국민 청원에 한 표 행사하는 거라서 이렇게라도 참여하고 있지만.. 사실 마음이 너무 아프다.
십 대들아, 배에서 배가 기울고 있는데 가만히 있으라고 가만히 있지 말고 주위에 도움을 청해서 창문 가까이 있는 친구에게 지금 우리가 어떤 상황인 지 물어보고 살아나갈 수 있는 방법을 빠르게 모색하고 행동으로 옮겨도 됐다. 어른들이 마냥 기다리라고 기다리지만 않아도 된다는 말을 하고 싶다.
정답은 없는 것이고 어른들도 실수를 하기 때문이다.
십 대들아, 한시라도 마음이 불안하고 어찌할지 모를 때는 반드시 주위에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는지 찾아 나서라! 못 찾겠으면 찾을 때까지 포기하지 마라.
처음은 어려워도 너 한 명의 행동이 다른 이들의 선한 자극이 되어 줄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보이는 세상이 너무 커 보이고, 캄캄해 보일 수 있지만 실제 태풍의 눈에 들어가면 그 중심은 고요하더라. 태풍 주위에서 사시나무 떨 듯, 주위의 불안 감정에 동요되지 말고 그 중심으로 가는 것을 절대 포기하지 마라.
어떻게든 도와줄 사람은 반드시 있기 마련이다.
"Just do the right thing" (마땅히 옳은 일을 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