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힘들수록 거절의 기술
오늘 푸드뱅크에서 음식을 타왔다. 올해 초부터 음식 받아 가라고 연락이 왔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한 달에 두 번씩 무료로 음식을 나눠주는 것이다. 나는 기초생활수급자라서 받을 자격이 된다. 그런데 나는 올해부터 푸드뱅크에 가지 않았다. 작년에는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수요일 날 마다 꼬박 꼬박가서 받았다. 근데 음식을 받아오면 보관도 힘들고 먹고 남은 음식이 처치가 곤란했다. 나는 푸드뱅크에서 받아온 남은 빵을 내가 다니는 야학과 교육센터에 기부했었다. 작년까지 내가 음식을 받으러 갔었던 푸드뱅크는 많이 허름한 동네였다.
그런데 올해부터는 작년에 나눠줬던 곳 보다는 좀 더 좋은 동네에서 음식을 나눠주는 것이었다. 나는 바뀐 푸드뱅크에서 오늘 처음으로 음식을 받으러 갔다. 집에 먹을 게 너무 없어서 한 번 와봤다. 근데 왠 걸, 내 느낌인지 몰라도 나눠주는 음식이 작년보다 많이 좋아졌다. 올해도 그냥 계속 받았을 걸 하는 후회가 밀려온다.
받으러 온 사람들의 옷차림이나 인상도 작년에 받으러 온 사람들보다는 훨씬 깔끔하고 정돈된 느낌이었다. 표정도 좀 더 밝아보였다. 그런데 작년과 가장 달라진 점이 있었다. 그게 뭐냐면 작년에는 음식을 만약 7가지를 나눠주면 그것을 군말 없이 모두 다 받았다. 그런 분위기였다.(집에 나눠주는 음식이 많이 있어서 같은 건 안 가져가겠다는 분들도 종종 보긴 했었다. 아주 가끔.)
그런데 바뀐 푸드뱅크에서는 음식을 받을 때
“저 이건 안 먹으니까 안 받아갈게요!“
라고 말하는 사람이 종종 있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음식을 안 먹는 것은 안 받는다고 말하는 게 자연스러웠다. 마라탕 육수는 많은 사람들이 안 받아갔다. 그래서 음식 나눠주는 직원들이
”마라탕 육수는 인기가 없네.“
이런 말을 주고 받는 걸 들었다. 나는 나눠주는 돼지 등갈비를 안 받았다. 보관과 요리가 힘들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근데 등갈비 받는 것을 거절 하고 나니 선택권이 오롯이 나한테 있다고 느껴져서 기분이 좋았다.
갑자기 이런 문구가 떠올랐다.
‘행복=거절의 기술’
지금도 물론 가난하긴 하지만 예전의 나는 가난한 건 물론이고 지금보다 요령도 없었다. 그때는 공짜로 주는 것은 안 먹고 안 쓸 것 같은 것이라도 일단 받고 봤다. 그런데 그런 것들이 삶의 질을 참 많이 떨어뜨렸다. 가난하면 상황판단력이 흐려진다. 마음에 여유도 없고 유연하게 생각하질 못 한다. 융통성도 떨어진다. 돈이 있으면 돈이 보호막이 되어 중요한 것을 결정 할 때 많은 선택지 중에서 선택할 수 있다. 갈대같이 유연하고 충분히 여유 있게 판단한다. 자신에게 거의 온전하게 선택권이 있다. 그런데 돈이 없으면 모 아니면 도 식으로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다. 사실상 자신에게 선택권이 없다. 대나무 같이 버티다가 풍파에 부러져 버리는 경우도 있다. 바뀐 푸드뱅크만 봐도 알 수 있다. 가난한 것도 서러운데 가난할수록 삶을 관리하는 능력도 떨어진다니, 얼마나 억울한가. 그래서 나는 가난에서 벗어나고 싶다. 가난할수록 가려야 한다. 아무거나로 자신의 세계를 채워서는 안된다. 가난하더라도 자신을 소중히, 아껴 주어야 한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행복=가난할수록 거절의 기술을 잘 발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난해도 작은 것들을 결정하는데 만이라도 내 안에 있는 자신의 소중한 선택권을 잘 발휘하자. 거절권을 잘 써먹자. 나는 거절을 잘 할 수 있다!
내 인생을 돌아보니 나는 의도하던 의도하지 않았던 이야기거리를 얻는 쪽으로 살아왔던 것 같다. 그 이야기거리를 잘 다듬어서 빛나는 조약돌로 빚는 것, 그건 순전히 내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