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저 같아도 아이를 안 낳을 거다."는 말을 해버렸다. 어른들은 식사를 하시다 말고 '요즘 젊은 친구들의 이야기를 한 번 들어보자'며 마저 이야기를 해보라 했고 난 "제가 아이를 아무리 잘 키워도 그 아이가 지금 사회에선 행복할 거란 보장이 없는걸요?." 하고 대답했다. 나름 순화해서 한 말이지만 난 '이상한 생각을 하는 젊은 놈'이 되었고 밥을 먹는 내내 '아이를 낳아 기르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출산이 국가 미래를 위해 얼마나 필요한 일인지' 설교를 들어야만 했다.
나도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는 기쁨을 만끽하고 싶다. 하지만 지금 사회는 그 행복을 쉽사리 허락하지 않는다. 육아는 시간을 투자하는 일이다. 기저귀를 갈아주고, 우는 아이를 달래주고, 씻기고, 재우려면 누군가 곁에 있어야 한다. 단 며칠 생색내듯 하는 게 아니라 몇 년 동안 계속해야 하는 일이다. 당연히 자신의 꿈은 잠시 양보해야만 한다. 물론 한국사회에서 '출산휴가'는 사실상 사표를 내는 것과 동일하다. 그 희생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여성이 주로 담당했음은 물론이다.
누군가의 희생 없이는 아이를 키우는 게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난 양육을 이유로 누군가 일을 그만둬야 하는 상황을 강요하고 싶지도 않고, 강요받고 싶지도 않다. 그래서 요샌 돈을 주고 육아를 대신해줄 시설이나 사람을 찾는다. 아이들이 어린이집, 유치원, 방과 후 학교, 학원을 전전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 있다. 부모는 아이를 맡길 돈을 버느라 더 열심히 일해야만 하고, 아이와 함께 할 시간은 점점 줄어든다. 부모도 불행하고 자녀도 불행해지는 악순환의 고리다. 그렇다고 복지가 늘어나는 것도 아니다. 말로만 하는 출산 장려에 속이 뒤틀릴 수밖에 없다.
남자는 돈을 벌어오고 여자는 육아를 담당하는 게일반적인 가정의 모습이었다. 박범신의 『비즈니스』에 등장하는 여성이 '자녀의 학원비 때문에 성매매를 하는 어머니'로 그려진 것 또한 같은 맥락이다. 한국에서 육아와 교육은 어머니의 무한한 희생을 강요한다. 그럼에도 어머니는 자식이 명문대를 못 가고 대기업에 가지 못 하면 죄인이 된다. 반면에 아버지는 돈을 벌어왔다는 이유만으로 '대체 집에서 애도 제대로 안 보고 뭘 한 거냐'며 큰소리친다.
난 이 불평등하고 불쾌한 레일 위에 올라가고 싶지 않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희생을 강요하고 싶지도, 스스로 희생을 강요받고 싶지도 않다. 이 사회가 아이를 낳아 기를만한 곳이 될 때까지 난 부모가 되지 않을 거다. 시민으로서의 직무유기라고 해도 좋다. 직무유기는 이 사회가 먼저 했다. 먹고사는 것도 힘든 나라를 만들어 놓고 말로만 출산을 장려했다. 국가와 사회의 존립을 위해 애를 낳으라고? 개인이 행복하려고 국가를 만든 건데, 국가가 행복하려고 개인이 희생해야 한다는 건 말도 안 된다. 그런 국가는 필요 없다.
* 본문 중 사진 출처
01.「기혼여성 5명중 1명꼴 '경단女'」, 동아일보,
http://news.donga.com/InfoGraphics/View/3/all/20141127/68199058/9#
02. 「“키울 돈 없어 못 낳아”…굳어진 ‘출산 양극화’」, 경향신문,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10212119015&code=9406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