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광호 Mar 06. 2017

누가 남자만 군대에 보냈을까

누가 남자만 군대에 보냈을까

군대는 남자들이 역차별을 받고 있다는 근거로 꼭 등장한다. 헌법은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방의 의무를 진다.'라고 하고 있으나 병역법은 '남성은 헌법과 이 법에서 정하는 바에 따라 병역의무를 성실히 수행하여야 한다'며 사실상 남자에게만 병역의 의무를 부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여성도 지원하면 군대에 갈 수 있지만 '의무'는 아니다. 그러니 남자들 입장에서는 남자라는 이유만으로 2년이라는 시간을 희생해야 하는 게 상대적인 불공평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다.


그러자 남자들은 '여자들도 군대 보내야 한다!'라고 주장하기 시작했고, 여자들은 '그럼 남자들이 애 낳고 길러라'했다. 이 싸움은 절대 끝이 나지 않는다. 헌법재판소는 이미 남성에게만 병역의 의무를 부과하는 게 위헌이 아니라는 판결을 내렸고(2006헌마328), 남자는 신체적으로 애를 낳는 게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남는 건 서로에 대한 혐오와 불신뿐이다. 그러니 병역문제에서 만큼은 한국이 어느 성별에게 더 불리한 사회인지를 입증하려고 애쓸 게 아니라, 남자에게만 병역의 의무를 부과했을 때 이득을 보는 게 누구인지를 생각하는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


우리의 싸움은 국가만 배불린다

군대를 다녀온 남자들은 불공평함을 느낀다. 남자들이 군대에 있는 동안 군대를 가지 않은 사람들은 사회생활을 지속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군대에 다녀온 남자들은 사회가 공정하지 않다고 느낀다. 그렇다면 공정함에 대한 요구는 국가를 향해야 한다. 남자를 군대로 보내고 국방비리도 방치하고, 쥐꼬리만 한 월급을 준 건 여성들이 아니라 국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군대 문제가 엉뚱하게 여성에 대한 불만과 불신으로 표출된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니 남녀 간의 혐오만 커져갈 뿐이다.   


국가에 의문을 제기하고 제도를 개선하는 건 느리고 어렵다. 반면 군대에 다녀오지 않은 사람들을 공격하고 조롱함으로써 얻는 쾌감은 짧지만 쉽고 빠르다. 그래서 군대 얘기가 나오면 여성들을 공격하는 건 물론이고 남성이어도 군대에 가지 않았다면 비난의 대상이 된다. '군대도 못 간 게 남자 구실이나 하겠냐', '이래서 군대 안 갔다 온 사람이랑은 대화가 안 통해'하는 식이다. 군대 내 부조리, 폭력, 비리는 개선해야 할 것이 아니라 '남자라면' 당연히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된다.


군대 문제를 지적하려 해도 군대에 안 다녀온 사람이라면 '군대도 안 갔다 왔으면서 뭘 아는 척이냐'며 무시하고, 자기보다 편한 부대를 나왔으면 '거기 나왔으면 군 생활한 것도 아니다'라고 무시하고, 같은 부대여도 보직이 다르면 '꿀보직인데 왜 힘든 척하냐'면서 무시한다. 너만 힘든 거 아니니깐 혼자 잘난 척하지 말라는 거다. 이러다 보니 군대 문화는 사회 전체로 번져 '군인스러움', '남자다움'이 미덕인 사회가 된다. 극단적인 예를 보고 싶으면 시청에 나가보면 된다. 애국자 분들이 군복을 입고 계실 거다.


청년은 헐값이 아니다

스무 살 무렵 나는' 군대에 가야 한다'는 공포와 '군대에 못 갈 수도 있다'는 공포를 함께 느꼈다. 면제 판정을 받을만한 상태였는데 군대를 안 갔을 때 받을 비난과 조롱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동시에 군대에 다녀온, 혹은 다녀와야 할 사람들에게 빚을 지는 듯한 채무감마저 느껴졌다. 다행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판정할 권한이 없다'는 지역 병무청(+비하인드 스토리) 덕분에 4급 판정을 받아서 면제는 안 되었다. 죄책감을 약간은 덜었다. 하지만 군대가 부조리나 비리, 폭력이 없는 합리적인 공간이고, 최저임금 이상의 월급을 줬다면 이렇게까지나 미안함을 느낄 일은 없었을 거다.


그니깐 우린 군대 내의 부조리와 비리들을 없애고, 자유에 대한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직업군인과 달리 현역병은 보수가 생활의 기본적 수요를 충족할 정도에 이를 필요는 없다.(2011헌마307) '며 합법적으로 청춘을 착취하는 국가를 그냥 내버려 두어선 안 된다. 그리고 그 방법은 법을 개정하는 형태로 이루어져야 한다. 헌법재판소는 '근로자가 최저임금을 청구할 수 있는 권리도 헌법상 바로 도출되는 것이 아니라 최저임금법 등 관련 법률이 구체적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비로소 인정된다'라며 권리를 보장받는 법을 친절히 알려줬다. 이젠 애국이란 이름으로 청춘을 헐값에 넘길 것을 강요하는 사회에서 벗어날 때다.

매거진의 이전글 기본소득으로 소외받는 사람이 없는 사회를 만들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