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광호 Mar 05. 2017

기본소득으로 소외받는 사람이 없는 사회를 만들자

선별적 복지제도는 복지 사각지대를 만든다

지금의 복지제도는 꼭 필요한 사람에게 꼭 필요한 금액만 지급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필요한 사람에게만 지급하는 선별적 복지제도는 사각지대가 생길 수밖에 없다. 꼭 필요한 사'이 누구인지, 꼭 필요한 금액이 얼마인지 정해놓고 그 기준에 충족하지 않는 사람을 '배제'시키는 방식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실제 활고 끝에 유서와 집세 및 공과금 70만 원을 두고 자살한 택했던 '송파 세 모녀'는 부양의무자 조건 때문에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도움을 받지 못했다. 이후 개정안이 발의되었지만 선별적 복지제도 내에서의 변화에 그쳐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못했다.


선별적 복지제도는 아무리 제도를 개선하고 인력을 투입해도 부정수급이라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서류상으로만 조건을 충족하면 수급권자가 될 수 있으니깐 말이다. 이를 막으려면 신청/증명/심사 과정을 더 까다롭게 해야 하는데 그러다 보면 실제 수급을 받아야 할 사람이 법률적 문제로 수급을 받지 못하는 모순이 생길 수 있다. 게다가 부정수급을 관리하기 위해 투입되는 인력과 비용이 증가한다. 복지 예산이 복지에 전부 쓰이지 못하고 부정수급자를 가려내는 데 소모되는 것이다. 


실업급여도 적극적으로 재취업 활동을 하고 있다는 사람에게만 지급하게 되어있다. 하지만 진짜 적극적으로 재취업 활동을 하다가 취업에 성공해버리면 실업급여 지급이 중지된다. 때문에 형식적으로, 서류상으로만 재취업 의지를 '증명'해 보이면서 실업급여를 받아가는 게 현실이다. 결국 기본소득보장제도와 실업급여 모두 '안 받아도 될 사람들이 받고 있는 거 아니야?'하는 불신만 키우고 있는 셈인데, 이 때문에 수급을 받는 사람은 수급을 받는 게 권리임에도 죄인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고, 세금을 내는 사람은 필요 없는 돈을 내는 것 같은 기분이 들 수밖에 없다. 결국 이 불신은 복지예산을 확보를 위한 증세에 걸림돌이 되어 복지를 감소시키는 악순환에 빠진다.


보편적 기본소득은 권력을 견제한다

보편적 기본소득은 자산과 노동의 여부와 상관없이 / 개인에게 / 현금으로 지급하는 방식이다. (성남시에서 시행한 청년수당과 비슷해 보이지만 보편적 기본소득은 전 국민을 대상으로, 그리고 더 많은 금액을 지급해야 한다는 점에서 다르다.) 일정 기준을 정해두고 기준에 충족한 사람에게만 지급하는 방식이 아니기에 현재 복지제도가 지니고 있는 문제들은 자연스레 사라진다. 여러 복지제도들이 하나로 대체되면서 부정수급으로 인한 불신과 부정수급을 관리하기 위해 사용된 비용을 완전히 없앨 수 있는 건 물론이다.


또한 보편적 기본소득은 그 자체로 권력을 견제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 '해고는 살인이다'라는 말처럼 개인이 해고로 받는 타격은 엄청나다. 반면 지원자가 넘쳐나는 기업 입장에선 누군가를 해고한다는 게 큰 부담으로 느껴지진 않는다. 그렇기에 노동자가 불합리한 대우를 받아도 사업자가 해고라는 카드를 들이밀면 정당한 권리라 해도 끝까지 주장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기본소득이 생계를 유지할 최소한의 안전망 역할을 해주기 시작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업무에 맞는 합리적인 임금과 근로조건이 충족되지 않는다면 사람들은 더 이상 그 일을 하지 않을 거다. 사람을 쓰고 싶으면 기업이 스스로 근로조건을 개선해야만 하는 사회가 되는 것이다. 


정치와 언론 분야도 마찬가지다. 지금까지 우리나라 정치권은 기업에 유리한 정책을 만들거나 불리한 정책을 개정해 주었고, 기업은 정치권에 돈이 될만한 정보를 알려주거나 직접 돈을 전달하면서 공생했다. 언론은 이를 알면서도 광고주인 대기업의 비리에 눈감을 수밖에 없었고, 동시에 국가 눈치를 보느라 정부 정책에 대한 제대로 된 비판을 내놓지 못했다. 그래서 강남훈 한신대 교수가 제시한 '정치 기본소득', '언론 기본소득'도 눈여겨볼만하다. 간단히 요약하자면 정치나 언론사에 후원하는 방식으로만 사용할 수 있는 일정 금액을 전 국민에게 지급하자는 주장이다. 정치와 언론을 국민이 직접 선택하고 후원하게 함으로써 부패한 정치와 언론을 개선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누군가를 배제하는 방식의 권력은 필요 없다

정치 기본소득, 언론 기본소득이 도입되면 국민이 직접 원하는 정당, 원하는 언론사에 후원을 하게 된다. 정치와 언론은 국민의 뜻을 반영할 수밖에 없고, 그만큼 기업이나 국가에게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 선별적 복지제도에서 보편적 기본소득으로의 전환은 단순히 '돈을 준다'는 개념을 넘어 국가나 기업이 가지고 있던 권력을 국민에게 돌려주는데 의의가 있다. 정의롭지 못한 권력의 작동 기반을 끊는 근본적인 해결책으로 기대해 볼 수 있는 것이다. 특히 돈이 안 되는 문화, 예술분야의 성장을 기대할 수 있다. 먹고 살 걱정 때문에 트로피를 팔지 않아도 창작활동에 전념할 수 있게 될 테니 말이다.


그 많은 세금을 어떻게 확보하느냐는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다. 하지만 정치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을 어디에 우선적으로 배분할 것인가를 정하는 것이다. 기본소득을 도입하는 게 우선이라는 판단이 들었다면 증세를 통해서든, 불필요하게 낭비되는 세금을 조정하고 절약해서라든 세수를 확보해서 단계적으로라도 실시했을 것이다. 의지를 가지고 행동에 옮겼던 최순실 관련 예산을 생각해보자. 그 과정에 문제를 제기한 사람도 없었고, 돈이 없어서 못 한다는 사람도 없었다. 결국 정책은 의지의 문제다. 실제로 성남시에서는 이미 청년수당을 시행했고, 서울시는 시행이 예정되어 있다. 


성장 신화는 끝났고 국가는 신뢰를 잃었다. 생명도 인권도 보장해주지 못하는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일해야만 한다. 최소한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서 돈이 필요하다. 하지만 많은 업무가 자동화, 기계화되면서 일자리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당장 패스트푸드점에만 가도 기계로 주문을 받고, 은행 업무도 공인인증서만 있으면 사람을 만나지 않고도 가능하다. 그렇다면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희생되어야만 하는 사람들의 삶을 사회가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다. 그러므로 그 누구도 소외시키지 않는 보편적 기본소득은 지금 논의되어야만 하고 도입되어야만 한다. 기본이 안 된 사회에서 기본을 찾는 방법은 그것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이랑의 '트로피 경매'를 비난하려거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