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XX가 반장이야. 반장 하고 싶은 사람 없지? 그럼 투표 따로 안 한다?"
담임선생님이 정해놓은 결과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학생은 아무도 없었다. 투표와 선거는 원래 그런 것인 마냥 생략되었다. 할 수 있는 건 담임의 권한에 복종하는 것뿐이었다. 담임에 눈 밖에 나면 대학 진학에 불리할지 모른다는 두려움과, 체벌이 가능했던 억압적인 교실 분위기가 뒷받침되었음은 물론이다. 덕분에 선거와 투표, 학생 대표의 가치는 점점 추락했다.
반장이 하는 일이라 봐야 담임선생님이 교실에 없는 시간에 떠드는 학생을 감시하거나 유인물을 전달하는 정도다. 누가 반장이 되어도 할 수 있는 일이고, 반장이 아니어도 할 수 있는 일이다. 게다가 반장이라 해도 학생이기에 아무런 힘이 없다. 이 사회가 학생을 배워야 하는, 부족한, 미완의 존재로만 생각하기 때문이다. 공약을 내봐야 이행할 방법도, 힘도 없으니 반장선거는 인기 선거로 전락한다.
'누가 돼도 상관없어'라는 식의 정치 무관심의 싹을 틔운 건 정치가 아니다. 학교다. "제가 반장이 되면 반 친구들에게 햄버거 세트를 돌리겠습니다!"라고 연설했던 초등학교 반장선거부터, 선거와 투표의 가치를 무시하는 중, 고등학교 담임의 반장 임명, 행사와 축제에만 열을 올리고 장애인, 성소수자의 인권이나 시국에 대한 발언과 활동은 '정치적'이라며 거리를 두려고만 하는 총학을 거치며 그 싹은 꽃을 피운다. 그리고 대통령과 국회위원들의 행동을 보며 그 꽃은 만개한다.
초등학교 6년 중학교 3년. 의무교육만 해도 9년이다. 고등학교, 대학교까지 포함하면 14년~16년이다. 이 긴 기간 동안 정치 무관심(혹은 혐오)을 키우게 두어선 안된다. 학생대표와 학생이 체육대회에서 자그마한 행사 하나라도 주도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잘못된 것이 있다면 학교 행정이든 정치든 총학이 당당하게 의견을 밝히고 사회에 참여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그때서야 정치 무관심/혐오라는 싹은 하나씩 자취를 감출 거다. 선거 때만 반짝 관심 가져봐야 소용없단 소리다. 씨앗들은 땅 속에 숨었다가 봄이 되면 정치 혐오라는 싹을 또 틔우고 꽃을 피울 것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