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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호 Aug 23. 2017

내 안의 파란 꽃잎 하나

우린 모두 미소지니의 영향을 받는다

사건 1

C 씨와 연인 관계에 있던 A는 "나도 C 씨를 좋아한다. 한판 붙어서 이긴 놈이 차지하자"는 B 씨의 전화를 받고 화가 나 C 씨의 집에 찾아간다. C 씨와 한참 말다툼을 벌이던 도중 B 씨가 나타났고 A 씨는 B 씨를 칼로 찔러 숨지게 하려 했다. A씨는 살인미수 혐의로 경찰에 체포되었다.[1]


사건 2

미국의 로렌버너는 여자 친구를 총으로 쏜 뒤 절벽에서 밀어 살해한다. 동반자살을 시도했다고 주장했지만 살인으로 밝혀졌다. 교도소 동기들에겐 ‘그 여자는 내가 가질 수 없으면 아무도 가질 수 없다’ 고 자랑스럽게 말하고 다녔다고 한다. 처음엔 3년형을 선고받았으나 성인이 된 후 형이 번복되어 52년형을 받았다.[2]


한국의 B 씨와 C 씨, 미국의 로넨버너는 모두 여자를 '차지'하거나 '가진다'고 표현한다. 이 생각부터가 문제다. 사람은 소유의 대상이 아니다. 사람이라면 성별, 나이, 계급, 관계(교제를 하고 있든 아니든)에 상관없이 개별적 존재로 존중받아야 하며 존중할 줄 알아야 한다. 사람의 감정 또한 소유할 수 없긴 마찬가지다. 이 기본적인 사유가 불가하다면 사람이 되는 게 먼저다. 사랑은 그다음이다. 


공권력은 법률에 의해서만 책임을 물을 수 있다. 하지만 법에 의해 처벌받지 않는다고 해서 문제가 없다는 건 아니다. 사랑(람)을 소유할 수 있다는 생각 자체부터 폭력이라는 점을 정확히 지적해야 한다. 여기부턴 시민과 사회의 몫이다. 법적 처벌은 잘못된 동기에 대한 사회적 비판이 함께 있을 때에서야 예방의 효과가 증대된다. 그렇지 않고 '칼부림', '폭력', '살해' 등 행위에 대한 행위에 대해서만 집중하다 보면 원인이 무엇인지, 문제가 발생하는 지점은 놓친 채 법률적 해석에 모든 걸 맡겨버리게 된다. 유죄니깐 나쁜 놈. 무죄니깐 착한 놈.


그래서 언론의 역할이 중요하다. 언론은 끊임없는 질문을 통해 사회에 빈틈을 만들어 내고, 그 틈 사이에서 드러난 행위 이면의 것을 포착해야 한다. 누가 누굴 찔렀다에서 그칠 게 아니라 찔렀다면 '왜 찔렀는가?' 죽였다면 '왜 죽였는가?' '여성은 언제부터 남성의 소유물로 치부되었는가?' '그 사회에선 어떤 문제가 발생하는가?'라는 질문이 필요한 이유다. 시민들이 모든 사건 사고의 이면을 스스로 파악한다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의 한국 언론은 <'아버지가이상해' 이유리, 류수영 벽치기 폭풍키스에 돌변 "생각 완전 변했어">[3] 따위의 기사를 내보내면서 드라마 속 미소지니(misogyny)를 미화하는 데 일조한다. 손목을 낚아채거나, 벽으로 밀치거나, 강제로 입맞춤하는 등의 장면을 '박력', '로맨틱', 등으로 포장하는 것이다. 심지어 살인사건에 <절벽에서 여친 살해직전 남친이 찍은 '마지막 뒷모습'> 같은 제목을 달고 피해 여성의 사진을 섬네일로 달고 있는 기사도 있다. 이쯤 되면 낚시성 제목과 자극적 섬네일 선정은 한국식 저널리즘의 표본으로 자리 잡은 듯싶다.


잘못은 우리 모두에게 있다

파란 색소를 먹고 자란 꽃은 파란 잎을 피워낸다. 마찬가지로 여성혐오 사회에서 살아온 사람들은 여성혐오의 싹을 가지고 있다. 여성혐오 사건들을 나쁜 사람, 특수한 조건이 만들어내는 일이 아니라는 거다. 그러므로 혐오 발언이나 범죄행위에 대한 처벌과 비난은 필수적이지만 특정인을 혐오자로 낙인찍고 격리시키는 데에만 몰두해선 안된다. 잊지 말자. 우리가 원하는 건 평등한 사회, 차별 없는 사회,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것이라는 것. 그리고 우린 모두 파란 꽃잎을 하나씩은 가지고 있다는 것을.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자신이 이 과정에서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만일 네가 괴물의 심연을 오랫동안 들여다보고 있으면, 심연도 네 안으로 들어가 너를 들여다본다. <프리드리히 니체>



[1] <"한판 붙어서 이기면 여자 차지"…삼각관계로 살인미수>, 연합뉴스,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7/08/22/0200000000AKR20170822036000065.HTML?input=facebook

[2] <절벽에서 여친 살해직전 남친이 찍은 '마지막 뒷모습' >, 국민일보,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011697545

[3] <'아버지가이상해' 이유리, 류수영 벽치기 폭풍키스에 돌변 "생각 완전 변했어">, 무등일보, http://www.honam.co.kr/read.php3?aid=148992254851951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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