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무새죽이기』를 읽고
세상은 나 없이도 잘 굴러갔기에, 내 자리를 유지하려면 나도 데굴데굴 함께 굴러야 했다. 자전하는 지구와 함께 떽데구루루. 제자리를 지키기 위해 하루 종일 굴러야 하는 삶이었다. 하루 종일 열심히 구르고 집에 돌아와 정신을 차려보면 세상은 제자리. 그나마 그건 열심히 굴렀을 때 이야기다. 게으름을 피우거나 몸이 아파 쉬어버린 날엔 지구가 나보다 한 바퀴 더 굴러가 있다는 생각에 ‘내일은 더 열심히 해서 두 바퀴를 굴러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렇게 떽데구루루루, 떽떼구루루루 두 바퀴를 구르고 온 날에는 뿌듯함을 느끼기도 했지만 역시나 정신을 차려보면 제자리였다. 뭔가 이상했다.
하고 싶은 일이 없었던 건 아니다. 하지만 머리 위에 쏟아져 있는 ‘해야 할 일’을 치우다 보면 하루가 이미 지나가 있었다. ‘그래, 내일은 꼭 해야지’ 결심해보지만 내일은 내일의 할 일이 또 쏟아져 있었다. 매일매일 그 일들과 함께 떽떼구루루 구르다 보면’ 하고 싶은 일’은 못 하고 ‘해야 할 일만’ 힘겹게 처리했다.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은 했다. 하지만 실패할 거라는 두려움이 컸다. 그래서 행동으로 옮기지 못했다. 실패한 미래를 떠올리며 차라리 시도하지 않는 편을 택했다. 무언가를 시도해서 더 나쁜 결과를 얻는 것보단 현 상황을 유지하는 편이 낫다고 여겼다. 돌아보면 그런 일이 한 둘이 아니었다.
그러다 접한 핀치 변호사의 말.
“시작도 하기 전에 패배한 것을 깨닫고 있으면서도 어쨌든 시작하고, 그것이 무엇이든 끝까지 해내는 것이 바로 용기 있는 모습이란다. 승리하기란 아주 힘든 일이지만 때론 승리할 때도 있는 법이거든.(p.213)”
곰곰이 생각해보면 완전 손해 보는 말은 아니다. 오늘 하루 구르지 않고 하고 싶은 일을 해도 지구는 어차피 제자리로 돌아온다. 지구가 도는 동안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 된다. 내가 열심히 돌아도 제자리, 돌지 않아도 제자리다. 물론 불안하겠지. 하지만 그 불안은 내 몫이다. 굴러도, 안 굴러도 불안한 건 똑같다. ‘다른 사람들은 나보다 한 발짝 더 가지 않았을까.’, ‘오늘 내가 한 걸음 뒤쳐진 사이 인류는 위대한 도약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 이런 막연한 불안함은 열심히 굴러다니며 해야 할 일을 걷어내던 날에도 발 끝에서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끈질기게 쫓아다녔다.
물론 핀치 변호사가의 말을 이렇게 해석하는 건 명백한 오독이다. 핀치 변호사가 말한 ‘시도’는 타인을 위한 연대를 뜻한다. 사회적 약자를 위한 애정과 관심 같은 거 말이다. 맞는 말이다. 당위에 가깝다. 하지만 그 당위가 지켜지는 사회라면 이 책은 이미 절판되었어야 한다. 하지만 이 책은 고전의 반열에 올랐고, 여전히 전 세계적으로 판매되고 있다. 이거 참 곤란한 일이다. 사람들이 앵무새를 죽여선 안 된다는 걸 몰라서일까? 그건 아닐 거다. 앵무새가 있다는 사실조차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일상에 치여 살거나, 알면서도 손을 내밀긴 힘든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일 거다. 그러니 타인에게 손을 내밀려면 본인의 중심부터 찾아야 한다. 이유도 모른 채 하루 종일 땀을 뻘뻘 흘리며 떽데구루루 굴러다니고 있는 사람의 손은 잡아봐야 미끄러지기 일수다. 미안함이나 안타까움에 성급하게 내밀어 잡은 손, 오히려 부담을 안겨줄지도 모른다. 그러니깐 난 오늘부터 파업이다. 구르지 않겠다. 어차피 그래도 지구는 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