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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호 Feb 18. 2020

펑크란 무엇인가

    자리에 남아 있던 사람들의 공통적인 의견은 ‘이건 펑크가 아니다.’였다. 공연을 보러 온 지인 중 한 명이 뒤풀이에 함께 참석했다가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취해버렸다. 곤히 잠들어서 고함을 치고 물을 뿌려 봐도 일어나지를 못했다. 같이 마신 테이블의 밴드들도, 지인들도, 가게 사장님도 난감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볼 뿐. 그렇다고 모른 척 가버릴 수도 없어서 두 명씩 어께동무를 하고 가다 지치면 교대를 하는 식으로 간신히 근처 숙소에 데려다 놓았다. 새벽녘 제 발로 걷지 못하는 사람을 메어 놓고 나서야 간신히 각자의 아침을 맞이할 수 있었던 우리는 그 사건을 두고 ‘이건 펑크가 아니다’라고 평가한다. 


    펑크는 좁게 보면 음악 장르이지만 넓게 보면 삶의 태도이기도 하다. 부조리, 부정의, 알고 있음에도 조용히 넘어가자며 쉬쉬했던 문제에 저항하기 위해 소리치는 것이다. 일반화를 무릅쓰고 말하자면, 빠르고 시끄럽고, 단순한 곡 구성으로 만들어진 곡은 음악 장르로써의 펑크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시끄럽게 소리치고 분노하는 것 자체만으로 펑크가 되는 건 아니다. 그 곡에는 아티스트의 목소리가 있어야 한다. 일본 밴드의 무대 위 멘트에서 힌트를 조금 얻어 보자. 길지만 그대로 옮겨 적는다. 


  설마 한국의 D-BEAT 펑크 밴드와 함께 공연 할 수 있을 거라곤 꿈에도 몰랐는데 무척 기쁩니다. 1년 전, 2년 전. 3년 전부터인가코리안타운이 있는 신오쿠보 주변에서는 매 주말이 되면 네오 나찌라고 불리는 극렬한 국수주의자들이 모여 재일 한국인에 대해 엄청난 헤이트 스피치를 하는데저는 그 광경을 보며 굉장히 화가 나고 슬펐습니다어쩔 수 없는 마음으로 그걸 보고 있었지만 저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점점 길거리에 쏟아져 나오며 헤이트 스피치를 하는 인종차별주의자들 보다 마음이 강한 사람들이 몇십 배 더 모여서 그런 헤이트 스피치가 점점 없어졌어요. (이겼다그래요이겼다고 생각합니다아무래도 일상생활이나 직장에 돌아가면 이런 대화는 할 수 없을지 모르지만 이런 즐거운 바에서 우리들은 한 곡씩 분한 마음과 괴로운 기억 그리고 시시한 인종 차별주의자와 파시스트에 대항하는 노래를 많이 하고 있습니다점점 이런 주말이 일상이 되어서 벽을 허물고 함께 발언할 수 있으면 정말 좋겠습니다. [1]


ⓒ이동우, 『노후 대책 없다』, 2016 화면 캡쳐

  

  혐한 시위가 잘못된 거라는 걸 알면서도. 먹고사니즘의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에 ‘어쩔 수 없는 마음으로 그걸 보고 있’어야 할지도 모른다. ‘일상생활이나 직장에 돌아가면 이런 대화를 할 수 없을’수도 있다. 그래서 펑크 밴드는 노래한다. 무대 위라는 공간과 주말이라는 시간적 제약 위에 있지만, 펑크라는 음악을 통해 잘못을 잘못이라 외친다. 공연장에 온 관객들과 삶의 태도를 공유한다. 아티스트와 관객은 노래를 공급하고 소비하는 관계가 아닌 연대의 대상이다. 그렇게 혐오와 차별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를 ‘일상’으로 만들어 나간다. 펑크는 음악 장르인 동시에 사회 변화를 시도하는 움직임(Movement)을 포함하는 셈이다.


     펑크가 음악 장르에 그치지 않는다는 걸 인정한다면 펑크를 장르로 규정하려는 시도는 도리어 펑크를 틀 안에 가두려는 행위가 된다. 그러므로 나는 펑크가 무엇인가? 에 대해 대답할 수 없다. 펑크가 장르 문법에 갇힌다면 저항을 핵심으로 하는 펑크의 메시지가 무의미해져버리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음악적 장르로써의 펑크는 펑크를 이해하는 데에는 도움이 되지만 ‘펑크인가 아닌가’를 구분(혹은 감별)하는 기준으로써는 충분치 못하다. 이랑은 2017년 ‘신의 놀이’로 최우수 ‘포크’ 노래상을 수상했지만 그의 퍼포먼스[2]는 무엇보다 펑크스러웠다.  


분노는 빠르고 시끄러운 게 자연스럽지만 그렇지 않아도 아무런 상관없다. 

저항을 일상으로 만드려는 모든 시도는 펑크다.








<각주>

[1] 이동우, 「노후 대책 없다」, 2016, 34:00~35:32, <KAPPUNK FESTIVAL> 도쿄, 핏바(PIT-BAR)에서의 세 번째 공연 중


[2] 이랑은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에서 트로피를 즉석 경매에 붙여 50만원에 판매했다. "오늘 트위터에도 썼는데 제가 1월에 수입이 42만 원이더라고요. 음원 수익이 아니라 전체 수입이 42만 원이고. 2월에는 조금 더 감사하게 96만 원이더라고요. 그래서 이렇게 어렵게 아티스트 생활을 하고 있으니까 여러분들이 상금을 주시면 감사하겠는데. 상금이 없기 때문에 제가 이걸 팔아야 될 거 같습니다.“라는 수상소감을 하였고, 트로피를 판매한 후 '명예와 돈을 얻어서 돌아간다, 다들 잘 먹고 잘사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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