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건선이 생겼다

by 광호

1.

고등학생 때였다. 오른쪽 팔에 붉은 반점 같은 게 생겼다. 처음엔 그냥 두면 사라지겠지 했는데 점점 커지더니 알찬소세지 단면보다 커졌다. 피부과에 갔더니 연고를 처방해줬다. 어떤 연고는 아무 효과도 없었고, 어떤 연고는 바르고 나면 감쪽같이 사라졌다. 근데 약을 끊으면 더 심하게 올라왔다. 그렇게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다 한 병원에서 "...일수도 있으니 큰 병원에 가보세요. 대학병원급으로 가셔야 해요"라고 했다. 속으로 뭔 소리야 했다.


2.

동네 병원을 전전하는 사이 반점은 전신으로 옮겨갔다. 처음엔 반점이었던 게 점점 두꺼워지고 넓어졌다. 잠깐 의자에 앉았다 일어나기만 해도 하얀 인설이 떨어지는 게 눈에 보일 정도였다.


3.

수소문 끝에 건선을 전문적으로 치료한다는 한의원에 갔다. 치료를 열심히 하긴 했다. 우선 속옷을 제외한 옷을 다 벗으면 고약한 한약 냄새가 나는 연고를 온몸에 발라준다. 그다음에 랩으로 칭칭 감는다. 찜질기에 넣는다. 팔까지 꽁꽁 싸매서 온몸이 간지러워도 참는 수밖에 없다. 일정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꺼내 주는데(?) 그전까지는 나와의 싸움이다. 체감상 건선이 심해지면 체온 조절이 잘 안 된다. 열이 나면 얼굴이 새빨개지는 게 보일 정돈데 땀은 안 난다. 체온이 안 빠져나가니 열기가 눈 코 입 심지어는 정수리에서도 느껴진다. 그래도 땀이 나면 열이 내려가니깐 괜찮지만 그 전까지가 굉장히 고통스럽다.


4.

땀을 흘린 후에는 광선치료를 하는데 그땐 광선치료가 뭔지도 몰랐다. 무슨 형광등을 잔뜩 세워놨네 생각했다. 어느 날은 광선치료를 받다 '음 오늘따라 좀 피곤하네?' 싶었는데 그 상태로 쓰러졌다. 시야가 점점 흐려지다가 와장창 하는 소리와 함께 정신을 잃었고 눈을 떠보니 드라마에서처럼 의사가 내 눈꺼풀을 뒤집어대고 있었다. 문제는 없다면서 물이나 한 잔 마시고 좀 쉬었다 가라고 했다. 광선치료를 받다가 기계 안에서 쓰러진 건데 침상으로 어떻게 옮겨 왔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았다. 그래도 다행히 다친 곳은 없는 것 같았다.


5.

한의원에서는 먹는 것과 건선의 관계가 있다고 보고 먹는 걸 제한했다. 심한 경우에는 고춧가루, 기름, 육류 같은 자극적인 음식 자체를 못 먹게 했다. 그땐 잘 지키면 낫겠지 하고 철저하게 지켰다. 학교 급식에도 돈까스나 제육볶음 같은 게 나오면 받아서 친구들을 줬다. 나는 밥과 국, 김치 위주로 먹었다. 배가 고프면 생오이랑 당근을 싸들고 다니면서 먹었다. 비타민을 챙겨 먹어야 한다고 해서 한의원에서 판매한 포로 된 비타민도 먹었다. 응. 근데 한 번 쓰러지고 나니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어서 때려치웠다. 일단 사람이 먹고살아야 치료를 하던가 말던가 하지. 그 날 컵라면이랑 튀김이랑 떡볶이 먹었다.


6.

치료를 중단하니 얼굴에까지 올라오기 시작했다. 동네병원이나 한의원은 안 되겠다 싶어 대학병원을 찾았다. 서울대병원은 6개월에서 1년 정도 진료가 밀려있다고 해서 인천의 대학병원으로 갔다. 몇 주? 몇 달 정도를 기다려 초진을 받았다. 오른쪽 팔에 조직검사를 했고 건선으로 진단받았다. 조직검사를 해줬던 의사 선생님께선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치료받고 연고 바르면 금방 사라진다며 위로를 해주셨다. 거짓말이었다. 지금 거의 10년째 사라지질 않는다.


7.

건선은 난치병이라 치료가 쉽지 않다. 치료를 해도 증상이 확 완화되는 게 아니라서 중간에 치료를 포기하는 사람들도 많다. 지금 나의 경우에는 일주일에 1~2번 광선치료를 받고 한 달에서 두 달 정도 텀을 두고 대학병원에서 진료를 받는다. 지금까지는 학생이라 시간을 낼 수 있었지만 직장을 다니고 있는 사람이 일주일에 두 번씩이나 시간을 빼고 치료를 받는 건 사실 어렵다.


8.

하지만 일정 기간 이상 연속적인 치료를 받지 않으면 산정특례를 받지 못하고... 그렇다고 치료를 받자니 일을 못하고... 일을 못 하니 돈이 없고... 돈이 없으니 치료를 못 받고... 치료를 못 받으면 건선이 악화되고... 건선이 악화되면 자존감이 낮아지고... 자존감이 낮아지면 일상생활을 못하고... 일상생활을 제대로 못하면 건선이 악화되고...


9.

비슷한 고통을 받고 있는 사람들이 있을 것 같아 기록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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