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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호 Sep 21. 2020

강박에서 벗어나기_03

인형 뽑기에 집착하는 이유

  자신의 소유에 집착하다 못해 인색함마저 보이지만, 역설적이게도 이들의 내면에는 자기 존재의 가치를 뿌듯하게 느끼도록 해줄 만한 것을 소유하지 못한 공허감이 깊게 자리 잡고 있다. (중략) 존재에서 가치와 의미를 찾을 수 없을 때, 사람들은 소유를 향해 눈과 마음을 돌리게 된다. 절약적 강박 성격은 이와 같은 심리 작용의 극명한 예를 보여준다. 
 
민병배, 이한주,『강박성 성격장애』,학지사, 2019 pp.81~82


  천 원짜리 몇 장을 넣고 버튼을 누른다. 운이 좋으면 몇 번만에 인형이 또르륵 굴러 나온다. 작은 돈으로 느끼는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그 맛에 빠져 인형을 모으기 시작했다. 맥주라도 한 잔 마신 날에는 길거리의 인형 뽑기들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언제 어디서 만날지 모르는 인연을 위해 만 원짜리 한 장은 지갑에 꼭 넣어놓고 다녔다. 그렇게 인형을 품 안에 넣고 돌아가는 길은 "뭐라도 했다", "이득을 봤다"는 느낌에 조금의 안도감을 느꼈다. 인형을 하나씩 모으며 '이게 내가 다 뽑은 거란 말이지?' 하며 뿌듯함을 느끼기도 했다. 


  몇 년이 지나자 대형 박스로 두 개가 넘는 인형이 쌓였다. 집안 이곳저곳에서 인형들이 방긋방긋 웃고 있었다. 하지만 난 인형처럼 웃을 수 없었다. 인형을 뽑아서 가지고 노는 것도 아니고, 애착을 느끼는 것도 아니었다. 단지 '뽑고' '소유'하는 것에서 가치를 느꼈다. 인형은 분명 쌓여갔지만 마음은 점점 허해졌다. 소유로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은 갈수록 커졌다. 마음이 텅 빈 것 같았다. 내 존재의 이유를 찾지 못했기에 불안했다. 그럴수록 남들보다 더 많이 소유하고 싶어졌다. 나에게는 없는 아이패드, 시계, 차를 보며 부러워했다. 책을 모으고 음악 장비를 바꿈질하기를 멈추지 못했다.


이만큼 더 있다

  

  마음의 허기는 채워지지 않았다. 많이 먹었지만 기분 좋은 포만감보단 더부룩함이 강했다. 그럼에도 공복감이 들었다. 소유할수록 배가 고팠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은 나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답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자가 풀을 뜯어먹고, 경유 차에 휘발유를 넣는 거나 마찬가지다. 물리적으로 위장과 기름통은 채울 수 있다. 그걸 동력으로 얼마 동안 굴러도 갈 거다. 하지만 그 상태가 지속될 수는 없다. 혼유 사고가 난 차의 내부는 서서히 손상된다. 나중에는 고치는 값이 어마어마하게 나오거나, 아예 교체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게 될 거다. 나는 그것도 모르고 소비와 소유에 집착했다.


  떠나보내기로 결심했다.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기부하려 하였으나 어린이집 관계자 지인의 말로는 '아이들이 인형을 가지고 노는 시대는 끝났다'라고 했다. 아이들은 이제 터치되는 거 가지고 논다고... 그래서 어른들에게 물었다. 혹시 인형 필요하신 분 있냐고. 없으면 인터넷에 무료 나눔 해야지 생각했다. 하지만 인형은 어른들이 가지고 노는 것. 예상보다 뜨거운 반응에 절찬리 매진되었다. 


 꼬질꼬질한 아이들은 울코스로 돌려줍니다


주고도 욕먹는 상황은 피하고자, 꼬질꼬질한 아이들은 대형 세탁망에 넣어 울코스로 샤워를 시켜줬다. 섬유유연제도 넣어 약하게 탈수를 돌렸다. 그리고 선풍기 + 제습기 조합으로 팡팡 말려주었다. 



양손 가득 인형을 들고, 아이들의 시선을 한껏 받으며 배달을 했다. 소소한 선물에 고마워했고, 그 모습에 선물을 주는 나도 기분이 좋아졌다. 받는 기쁨만큼 주는 기쁨도 컸다. 인형 입장에서도 뽑아놓고 창고 속에 방치하는 주인보다는 사랑해줄 수 있는 사람에게 가는 게 맞겠지이제는 아마 인형을 더 뽑는 일은 없지 않을까. 가끔 상품 출구로 굴러 떨어지는 맛을 느끼고 싶을 수도 있겠지만. 소유보단 존재를 택하기로 했다. 아무래도 이번 주말에는 에리히 프롬을 읽어야겠다. 


아이들의 시선을 한껏 받을 수 있다
친절한 배달 서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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