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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호 Aug 07. 2021

심리상담을 받는 중입니다(3회차)

3회차


선생님 : 지난 상담 이후 생각이나 변화가 있나요? 


나 : 술을 확실히 끊어야겠다는 생각을 했고요. 내가 나아지려고 했으면 가족에게 억지로라도 말을 걸어보자고 생각했는데, 안 좋은 반응이 오면 상처를 받더라고요.


선생님 : 안 좋은 반응은 어떤 거예요?


나 :  '왜 그렇게 얘기를 하냐.', '네가 좀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되지.' 이런 것들이요.


선생님 : 긍정적으로 생각하라는 걸 좀 구체적으로 얘기해 줄래요?


나 : 저는 아빠랑 누나랑 다투는 것처럼 들리거든요. 그러면 저는 "그렇게까지 얘기할 필요가 있냐. 누나는 그냥 공감을 해달라는 얘긴데." 아니면 "아빠는 그냥 그렇다고 얘기한 건데 누나가 꼭 그렇게 이야기 안 해도 될 것 같다" 이렇게 얘기하면 "우리는 싸우는 거 아니라고 네가 이상하게 듣는 거다." 이렇게 이야기하니깐 할 말이 없어요. 


선생님 : 싸우는 것처럼 들리지만 본인이 아니라고 하잖아요. 그러면 그거를 어떻게 바꿔서 얘기할 수 있을까요?


나 : 저는 "누나가 그렇게 말하면 불편하다" 이런 식으로 얘기를 했어요. 그런데도 "네가 생각하는 게 다 정답이 아니야" 이래 버리니까 할 말이 없더라고요.


선생님 : 말을 이어가야 되는데 지금처럼 이어갈 수가 없잖아요. 그러니까 내가 힘들어지잖아요. 이걸 풀어봐야 해요. 당신은 아빠랑 누나랑 투닥투닥하는 게 어떻게 느껴져요?


나 : 불편하죠.


선생님 : 무엇 때문에요? 


나 : 싸우는 것 같으니까요. 안 그래도 될 것 같은데 왜 싸우지? 싶어요.


선생님 : 싸우는 게 아니라고 하잖아요. 근데 나는 왜 불편할까요?


나 : 싸우는 상황이 불편한 거죠. 그걸 보는 게요. 저는 갈등 상황이 오면 도망치거나 못 본 척하는 거 같아요.


선생님 : 갈등 상황이 오면 불안해지는 거잖아요. 그 불편함을 찾아가야 해요. 불편하고 싫은 이유를요. 싸우면 싸움이 더 커질 거 같고, 불안해지는 게 싫은 거잖아요. 누나에게 '이거 하지 마!'라고 하는 것도 똑같은 거예요. 누나가 변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누나 입장에서도 동생이 안 변하는 거예요. 그러면 "나는 싸우는 걸 보면 싸움이 커질 거 같아서 겁이 나"이렇게 구체적으로 표현해야 해요. 왜 불편한지 감정을 들여다보고 표현해야 해요. 그래야 상대도 나를 이해할 수 있어요. 대화는 상대방이 내 입장을 공감할 수 있게 해야 하는 거예요. 그런 설명을 할 필요가 있어요.


나 : 그러면 또 누나가 하루 종일 이야기를 안 해버려요. 누나는 제가 불편해하니깐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할 말이 없다고 하고, 그러면 그 상황이 또 불편해지니깐요.


선생님 : 그럴 수 있어요. 역으로 말하면 누나도 동생하고 잘 지내고 싶은 마음이 있다는 거예요. 말을 잘 못 붙였다가 불편해질 수 있으니깐요. 그럴 땐 내가 더 큰 사람이라면 "이 상황이 싫다는 거지 누나가 싫다는 건 아니야. 나도 노력할게."이런 식으로 말하거나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거 아닐까요? 그리고 누나도 단기간에 크게 변할 수는 없어요. 그래도 누나는 노력을 한 거니깐 고마움을 표시해야죠. 상담이 요술은 아니에요. 그래도 변화는 분명 있어요. 하지만 내가 원하는 기대만큼 이 아니라서 만족을 못하는 거죠. 


나 : 저도 상담을 하면 짠 하고 변했으면 하는 기대를 했던 거 같아요.


선생님 : 그래도 노력했잖아요. 그게 쉬운 게 아니잖아요. 결과가 좋던 안 좋던요. 과정을 중요시해야 한다고 했잖아요. 내가 시도를 했으니깐 내 자신을 칭찬해야죠.


나 : 지금은 알겠는데 그 순간에는 감정이 훅 오니깐 또 잊어버려요. 시간이 좀 지나고 나서 '그렇게 말하지 않았어도 됐는데' 이렇게 돼요.


선생님 : 그래도 누나가 동생의 마음을 보려고 하는 거 같아요. 


나 : 누나랑은 이야기를 해요. 근데 누나랑 아빠랑 싸우니까 그게 불편해요. 누나가 싫은 건 아니에요.


선생님 : 누나는 힘이 있는 사람인가 봐요.


나 : 우리 집이 화목하다고 이야기한 거 보니깐요. 


선생님 : 누나를 잘 모르지만 누나 입장에서는 우리 집이 화목하지 않다고 생각해버리면 그 상황을 해결해야 하니까 너무 힘들어지잖아요. 그래서 다 이렇게 사는 거 아니야? 이렇게 생각하는 걸 수 있어요. 많이 참고 있을 거예요. 당신만 참는 게 아니고 누나도 많이 참고 있을 수 있어요. 엄마처럼 동생을 돌봐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을 수도 있어요.


나 : 누나가 꿈을 꿨는데 재난 상황에서 저를 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꿈을 꿨던 적이 있다고 한 적이 있어요. 


선생님 : 누나도 상실감이 꽤 컸을 거예요. 당신과는 다른 방식으로요. 누나랑 잘 지내고 싶은 마음은 있는 거죠?


나 : 네. 그게 잘 안 돼서 그렇지 싫다고 생각한 적은 없어요.


선생님 : 안정감을 얻고 싶으면 그걸 풀어보는 게 좋을 거예요.


나 : 누나가 재택근무라 집에 있는데 괜히 불편하더라고요. 아무 일도 없었는데요. 그래서 제가 괜히 불편하구나. 기본값이 그렇구나. 그리고 가족이 없어지면 어떻게 하지 하는 막연한 불안감을 느끼거든요. 친척들과도 연을 끊다시피 했는데 그것 때문인가 싶기도 하고요. 경조사 때 친척들이 안 오겠네. 이런 생각도 하고요. 누나랑 아빠한테 바라는 게 많으니까 상실감도 큰가 싶어요. 사촌 형한테 얼마 전에 전화가 와서 우울증이 있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사촌 형이 즐겁게 살면 되지, 이런 식으로 말했는데 아무렇지 않은 거예요. 아빠가 그런 이야기를 했을 때는 상처를 받았는데 이번에는 그냥 넘어가게 되더라고요.


선생님 : 오늘은 어떤 이야기를 해보고 싶어요?


나 : 제가 시간이랑 돈에 집착을 하는 거 같아요. 오늘도 오전에 일을 하는데 상담 시간에 못 맞출 거 같으니깐 엄청 스트레스를 받고 불안하더라고요. 숨도 잘 안 쉬어지고요. 시간에 쫓기고 돈을 쓸 때 과도하게 고민하고, 결정이 오래 걸려요. 또 친구 관계에서 제가 도움을 청하는 건 못하고, 도움을 청하면 잘 들어주는 거 같아요. 그래서 불편한 거 같아요.


선생님 : 우리가 저번 했던 이야기 중에 기억나는 거 있어요?


나 : 합리적인 생각을 하려면 현실적인 가능성을 잘 따져보라는 거랑요. 제가 책을 보고 거기에 맞추고 있냐고 하셨던 거요.


선생님 : 제가 지적한 것만 기억이 나는 거네요. 제가 말했던 건 마음을 보라는 거였어요. 생각 말고요. 그게 잘 안되잖아요. 마음을 본다는 거랑 사고한다는 거랑 뭐가 다를까요?


나 : 잘 모르겠어요.


선생님 : 마음을 봐야 한다고 했잖아요. 제가 생각하기에 불안보다는 공포 같거든요. 싸움이 커질 거 같은 거요. 그건 무의식적인 거예요. 싸움이 일어나면 무기력하게 봐야 하는 거잖아요. 폭력에 학습화되면 그렇게 돼요. 싸움을 막지 못하면 무기력한 존재처럼 느껴지잖아요. 그래서 우울증이 오는 거예요.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잖아요. 나의 의견 자체를 존중하지 않잖아요. 그래서 귀를 막고 모른 척할 수밖에 없는 거예요. 너무 힘드니까요. 그리고 이런 대처 방식이 다른 인간관계에도 나오는 거예요. 전에도 문제가 생기면 차단해버린다고 했잖아요. 하지만 실질적으로 유용하 사람이 되려면 그 사람들이 언제 싸우고, 나를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 그 안으로 들어가서 알아내야 해요. 그럴 준비가 되어있는 게 맞는지 생각해야 해요. 상담을 와도 해결책은 제가 줄 수 있는 게 아니에요. 물론 이게 어려워서 천천히 갈 수밖에 없어요. 아마 지난 상담에서도 감정을 살피는 작업을 하라고 했을 텐데요?


나 : 잘 기억이 안 나요.


선생님 : 내 밑 감정이 무엇인지 봐야 해요. 시간과 돈에 집착한다는 걸 그냥 그렇구나. 근데 왜 집착하지? 이래서 그럴 수밖에 없었구나. 이게 나를 인정하는 과정이에요. 하지만 내가 이렇게 집착하면 어떻게 되지? 이러다 보면 또 비합리적인 신념이랑 이어지는 거예요. 보이는 걸 생각하지 말고 이면의 마음을 생각해야 해요. 


(중략) 


나 : 최근에 듣고 싶었던 강의를 듣고 있는데요. 제가 포기했었다가 궁금해서 고민을 엄청 하다가 신청을 했어요. 근데 재밌고 더 듣고 싶다는 생각도 들고요. 


선생님 : 힘들면 배우거나 알아갈 때 즐거움을 느껴요?


나 : 뭔가를 배우는 게 좋아요.


선생님 : 심리학도 배웠다고 했나요?


나 : 책을 많이 봤어요. 학지사에서 나온 책들도요. 


선생님 : 승화라는 이야기도 알겠네요? 부정적 감정을 자신에게 도움 되는 방향으로 가져가는 방어기제요. 그걸 많이 사용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나 : 현실에 문제가 있으면 책 속으로 도망간다는 생각은 했어요. 현실에 문제는 어차피 해결이 안 되니깐요. 근데 방어기제라고는 생각을 안 해봤어요.


선생님 : 그런 모습이 있을 수도 있어요. 방어기제가 무조건 나쁜 건 아니에요. 부정적 감정은 뭐가 있어요?


나 : '걱정'은 제가 할 수 있을까? 일을 할 때도 시간 내에 잘 끝낼 수 있을까? 이런 걱정을 하고요. 취직을 할 수 있을까? 사람들이랑 부딪혀야 하고 새로운 일도 해야 하는데. 할 수 있을까? 이런 걱정과 불안은 함께 가는 거 같아요.


선생님 : 내가 잘하는 건 뭘까요?


나 : 하나 시작하면 꾸준히 한다는 거? 설명을 잘해준다는 이야기도 들었어요. 선생님 하면 잘하겠다는 식으로요. 


선생님 : 내가 나를 칭찬한다면요?


나 : 나쁜 짓 안 하려고 했다는 거요?


선생님 : 긍정적인 것보다 부정적인 것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네요.


나 : 저는 그게 현실적인 거 같아요.


선생님 : 현실을 직시해야 살아갈 수 있으니까요. 내가 나를 지키지 않으면 아무도 나를 지켜줄 수 없어. 그런 거네요.


나 : 그렇죠. 아빠가 어렸을 때 자만하지 말라고 했던 게 아직도 기억에 나거든요. 근데 내가 짜 맞추는 건가? 아빠가 그렇게 말했다고 내가 그렇게 되는 건 아닐 텐데? 이런 생각도 들어요.


선생님 : 아뇨. 그럴 수 있어요. 아기가 걸음마를 못하면 한 걸음도 못 걸으면 못 걸어. 이런 식으로 현실을 직시하게 말하나요? 아니죠? 그럼 어떻게 이야기할까요?


나 : 또 해보라고 하겠죠. 같이 해보자고요. 할 수 있다고요. 엄마가 잡아줄게 이런 식으로요.


선생님 : 한 발 뗐네. 장하네. 이걸 자기 자신에게 했어야 했는데 이런 지지를 받아본 적이 없어서 그래요.


나 : 저번에 친구가 잘 못하고 있으면 괜찮다고 했을 거라고 했는데, 속으로는 '너는 망했다'라고 생각하고 있을 거 같아요. 반 정도는요.


선생님 : 유럽에서는 청소년들이 실패할 권리가 있다고 해요. 실패하면서 경험할 기회가 있는 거예요. 경험하지 않고 머리로 생각한 거랑 실제로 시도해본 건 다르거든요. 실패했을 때 부정적인 이야기를 하면 무기력해져요. 시험 못 봤다고 너 이제 망했다 하는 거요. 근데 시험 못 봐서 망한다고 쳐도 그건 아이 인생이에요. 엄마가 아니라요. 아이가 생각하고 선택하고 책임져야 하는데 그걸 엄마가 해버린 거예요. 아이들에게 생각할 기회를 줘야 해요. 아이가 주체적으로 살게 하려면 선택하게 하고 책임질 수 있도록 해야 해요. 


(중략)


선생님 : 누나 입장에서는 당신이 누나랑 친해지려고 하는 시도가 급작스러울 수 있어요. 그래 놓고 갑자기 상처 받았다고 할 수 있는 거예요. 그럼 '가족 간에 알아가는 게 중요한 거 같아. 내가 잘 지내고 싶어서 그런데 누나는 어떻게 생각해?'이렇게 이야기하는 거예요. 물론 '잘 지내고 있는데 뭘!'이라고 할 수도 있죠. 그래도 내 감정을 표현한 거니까요. 잘 설명해야 해요. 아까 설명을 잘한다고 했잖아요. 머리로 하는 거, 다른 사람이랑 하는 건 잘할 거예요. 가족이랑은 잘 못하고요.


나 : 사실 감정이 문제인데 현실적인 문제인 것처럼 말한 거 같기도 해요.


선생님 : 학대받은 아이들의 특징이 자신의 감정을 들여다보지 않는 거예요. 그걸 들여다보면 죽을 거 같으니까요. 그러다 보면 감정이 무뎌져요. 감정을 의식하지 않고 현실적이라는 말, 생각으로 치우치는 거예요. 그러다 보면 불일치가 일어나요. 당위성은 있는데 마음은 움직이지 않으니까 초라해 보이는 거죠. 내가 왜 지치고 부정적 사고가 일어나는지 내가 나를 이해해야 해요. 그래야 일치가 일어날 수 있어요. 감정을 보는 연습을 해야 해요. 그건 각자의 방법이 있는 거라서 제가 가르쳐 줄 수는 없어요. 이렇게 해라라고 하거나 코칭을 해주는 건 어려워요.


나 : 머리로는 이해가 돼요. 근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선생님 : 전에도 머리로는 이해를 하고 있었잖아요. 경험한 게 있나요?


나 : 산책을 하는데 나뭇잎이 흔들리는 걸 보고 와 저게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네? 초록색이네? 이걸 처음 봤네. 하면서 뭉클해지더라고요. 머리를 감는데 다른 생각을 너무 하다 보니깐 물이 차가운 것도 나중에 안 거예요. 물이 차갑네 하면서 어 이런 건가? 지금 상황이랑 감각에 집중하라는 건가? 차갑다는 걸 느끼는 순간에는 다른 생각이 안 드니깐요. 이런 순간이 문득 있기는 해요.


선생님 : 상담 후 변화라고 할 수 있을까요?


나 : 어떻게든 해보려고 노력했어요. 병원 가면 산책하고 친구 만나라고 하는데 아무리 해도 대체 왜 하라는 거지? 싶어서 이유를 찾다 보니까요. 감정을 드러내고 느끼라는 건가? 그래서 훈련했어요. 근데 일상에서는 뭔가 빨리 해야 할 거 같은 조급함이 있어요. 콜센터에서도 일을 오래 했는데 거기선 일을 빨리 끝내야 제가 쉴 수 있고, 9시가 1초라도 늦으면 월급이 깎이니깐요. 시간당 받은 콜로 돈을 주니깐 제가 몇 초째 통화하고 있지? 이런 생각을 자꾸 했어요. 별로 좋았던 직업은 아닌 거 같아요.


선생님 : 그것도 좋은 부분도 있었을 거예요. 무조건 나쁘기만 한 건 없어요. 좋은 부분도 있는데 놓치고 사는 거예요. 마음의 여유가 달라서 그래요. 생존하고 직결되어 있으니까요. 그래서 삶의 가치를 어디에 두느냐가 중요해요. 세 끼 밥 먹는 것에 두느냐, 그걸 내가 선택했냐. 이게 다른 거잖아요. 인간이 성숙하다는 건 사고한다는 거잖아요. 사회적 시선, 환경의 노예가 되느냐. 고민해봐도 되지 않을까요?


나 : 고민을 하는데요. 결과는 결국 포기하는 쪽으로 와요. 그 선택을 못해요. 머리로는 하고 싶은데요.


선생님 : 그걸 왜 못했냐라고 하면 지원군이 없었어요. 넘어져서 무릎 까져서 아픈데 '그럴 줄 알았어' 하는 소리를 더 많이 들었잖아요. 힘이 되어주는 사람이 필요한 거잖아요. 용기가 되어 줄 사람이요. 그게 없었어서 그래요. 누나가 그런 사람이 되어줄 수 있을 거 같은데 누나도 그런 이야기를 듣지 못해서 말을 편하게 하지는 못할 거예요. 동생을 위한 마음은 있어요. 당신은 누나랑 아빠가 있다는 걸 장점으로 생각 못했겠지만 그게 분명 장점이 될 수도 있을 거예요. 정말 싫은 사람이라도요. 어떻게 생각해요?


나 : 굉장한 거부감이 드는데요. 일단 표현은 안 하고 참아봤어요. 생각 좀 해보려고요. 아빠도 술만 안 드시면 좋은 사람이니깐요.


선생님 : 억지로 좋게 생각하라는 건 아니에요. 알코올 중독은 병이에요. 아픈 거예요. 아빠가 그렇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그게 우리 아빠예요. 근데 우리 아빠가 아니었으면 좋겠다. 이게 불일치예요. 본인이 진짜 원하는 게 뭔지 알아야 해요. 내 행복이 가장 중요한 거예요. 


나 : 외부로 보이는 건 현상적인 거고 자신이 가장 원하는 게 뭔지 모르는 거겠죠. 저는 사실 아빠가 술을 안 드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저런 사람이 안 될 거야라고 생각했으니깐요. 아빠랑 비슷한 모습을 보이는 사람을 다 싫어했으니깐요. 친가 쪽 식구도 괜히 싫었고. 근데 이상한 거예요. 왜 내 인생은 아빠처럼 안 될 거야 가 내 인생의 목표가 되는 거지? 하고요. 


선생님 : 거기에도 불일치가 있어요. 좋은 사람을 유지하고 싶은 마음이 있겠죠? 이 사람이 술만 안 드시면 좋은 사람일 거 같은데 안 되잖아요. 이건 불가능한 거예요. 노력한다고 되는 게 아니에요. 근데 자꾸 노력하고 기대를 해요. 치료를 받지 않고 일상적으로는 변화가 어려워요. 개입이 필요해요. 아빠를 용서하고 싶지 않을 수 있어요. 이걸 풀어내야 해요.


나 : 그것도 궁금한데요. 제가 아빠한테 그 이야기를 꼭 해야 하는 거 아니죠?


선생님 : 본인이 하고 싶지 않으면 안 하는 거예요. 근데 아빠는 그런 생각을 하실지 모르겠어요. 그게 왜 나 때문이야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요. 그래도 사랑을 받았던 거 같아요.


나 : 그...렇지는 않은 거 같은데요. 물론 나름의 방식으로 사랑을 했겠죠. 그게 바람직하지는 않지만요.


선생님 : 그게 불편하잖아요.


나 : 그렇죠.


선생님 : 아빠 입장에서는 어려운 거예요. 불편하고, 말도 안하고, 표현도 안 하고. 이게 반복인 거예요. 감정을 보라는 게 이런 거예요. 아빠한테 미운 마음을 이야기 해도 돼요. 


(중략)


선생님 : 강박적인 사람이 통제심이 강해요. 청소 같은 건 내가 통제할 수 있으니까요. 역으로 말하면 위에서 질타를 많이 받았다는 것이기도 해요. 이게 나쁜 것만은 아니에요. 자동화된 사고가 있는 게 문제죠. 산책을 하라는 것도 새로운 감각을 받아들이라는 거예요. 뭘 해볼 수 있을까요?


나 : 지금은 밖에 나갈 수 있는 상황도 아니라서 잘 모르겠네요. 찾아볼게요.


선생님 : 누나랑 대화를 해보는 건요? 이건 계속 해봐야 해요.


나 : 자꾸 불편해져서 도망치게 돼요. 저를 이상하게 본다고 생각하고, 누나가 너무 힘든 거 같다고 생각하는 거 같아요. 누나가 밥을 차리면서 자꾸 한숨을 쉬는 거예요. 그게 엄청 신경쓰이더라고요. 제가 그거에 얼어붙는 거예요. 왜 그런가 했더니 누나가 집안일은 하는 거에 부담을 갖는 거 같다고 생각하고 저는 안 그랬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청소를 자꾸 하는데 누나는 그걸 멈출 수 없고, 저는 그게 불편하고요.


선생님 : 그건 본인 생각이잖아요? 그럴 땐 '무슨 일 있어?' 하고 물어보는 건 어때요? 내 생각으로 누나를 판단하지 말고 물어봐요. 그리고 내가 원하는 대답이 안 나올 가능성이 더 커요. 물어본 거에만 초점을 두고요. 그 사람을 마음을 보려고 물어보는 거예요. 그게 마음을 보는 연습이에요. 어려워요?


나 : 어려운 건 아닌데. 충격적이에요. 제가 생각하는 타인에 대한 관심이 정말인가 생각한 적이 많거든요. 이게 사실은 나에 대한 관심이라서 저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생각하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한 적이 많거든요. 그렇게 생각하니까...좀 충격적이네요.


선생님 : 그게 그렇게 이어질수도 있네요. 그럼 다음주에 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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