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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호 Aug 04. 2021

아무리 외면해봐야 못난 나도 나인데


1.

꿈에서 친구를 만났는데 나를 흘끗 보더니 피식 웃었다. 자존심이 상했다. 내가 왜 자존심이 상했을까. 곰곰 생각해보니 돈 때문이었다. 그 친구는 번듯한 직장에서 일을 하고 있고 좋은 차도 타고 다녔다. 나는 직장도 없고 차도 없었다. 나 자신이 초라하고 못나보였다.


2.

얼마 전부터 상황에 맞는 문장을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 일이 있어 외부에 나와있는데 공지가 올라왔다. 기존에 없던 새로운 요청사항에 맞춰 수정해달라는 건데 당일 내로 끝내야 한다고 했다. 금방 끝낼 수 있을 거 같아 여자친구에게 양해를 구하고 근처 피씨방으로 갔다. 천 원을 내고 50분 충전을 했다. 요청사항이 생각보다 많았다. 다른 사람이 작성한 문장도 수정을 해야 했다. 50분이 다 지나서 50분을 더 충전했다. 기존에 없던 업무를 갑자기 요청하고, 그것도 당일까지 해달라는 게 불합리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당장 다른 일을 할 수도 없으니 어쩔 수 없었다. 한숨도 짜증도 났다. 옆에서 기다리고 있는 여자친구의 눈치도 보였다. 일을 끝내고 나니 한 시간 반 정도가 지났다.


여자친구가 이런 요청사항은 부당하지 않냐고 했다. 나는 어쩔 수 없다. 부당한 걸 알지만 항의해서 얻을 수 있는 실익이 없다. 이래서 다들 정규직을 하려고 한다. 내 지인 중에도 돈을 못 받고도 신고를 못 하는 상황의 사람들이 있다. 한국 노동의 현실이다. 고 말했다. 여자친구는 내가 다른 일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것도 알고, 불가피했다는 것도 알지만 부당하다는 말을 부정하고 회사를 변호하려는 태도 때문에 마음이 상했다고 했다.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둘의 시간이 방해받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고 했다. 곰곰이 생각했다. 나는 정말 우리나라의 노동 환경이 문제라고 생각할까. 그래서 그런 말을 한 걸까.


3.

1과 2를 연관 지어보자. 나는 좋은 차를 끌고 돈을 많이 버는 사람을 보면 기가 죽고 자존심이 상하는 사람이다. 왜일까? 돈이 많은 게 성공한 인생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 기준에 따르면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하는 돈을 받으면서 일을 하고, 불합리한 요청에도 거절하지 못하는 나는 실패한 사람이 된다. 사람들이 그런 나를 능력이 부족하고 무능하고 노력하지 않은 사람으로 볼까 봐 두려워하고 있는 셈이다.


4.

내 안에 존재하는 못난 모습을 인정하지 못해서 자꾸만 딴소리를 했다. 내가 한국의 노동환경이나 임금체불 사건을 언급한 건, 부당한 요청에 순응하는 내 모습이 싫어서였다. 그리고 내가 부당한 요청에 어떠한 피드백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돈이 없는 상황이라는 걸 인정하기 싫었기 때문이다. 내가 돈에 집착하고 돈을 무서워하는 사람이라는 걸 들키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마치 다른 노동자들을 생각하는 것처럼 말했다. 상황에 대한 지적을 나에 대한 비난으로 여겼다. 나 자신에게 솔직하지 못했을뿐더러 그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방어기제를 사용했다. 마치 내 일이 아닌 듯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슬쩍 가져다 놓았다. 내가 잘못한 게 아니라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있는 거야.라는 식으로 말이다.


5.

항상 이런 패턴이었다. 내 마음을 들여다보려 하지 않았다. 거기에는 내가 인정하기 싫은 내 모습이 있었다. 나는 돈으로 사람의 가치를 판단하고 있었다. 말로는 돈이 중요한 게 아니라고 했지만 마음은 항상 돈을 좇고 있었다. 마음과 반대로 행동하려 하니 괴리가 생겼고, 항상 불편할 수밖에 없었다. 마음을 들여다볼 기회는 여러 번 있었다. 일을 하다가 짜증이 나고 화가 날 때. 여자 친구가 나에게 부당하지 않냐고 물었을 때. 불편한 내색을 알아차렸을 때. 하지만 나는 자꾸만 아닌 척했다.


6.

나는 돈에게 주도권을 뺏겼는데도 내가 주인공인 마냥 행세했다. 머슴이 주인 행세를 하는 셈이었다. 그래 놓고 누가 머슴이라고 부르면 발끈했다. 아니면 못 들은 척했다. 변하고 싶으면 내 현실을 객관적으로 인정해야 한다. 나는 머슴이다. 돈에게 끌려다니고 있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그 고민은 이제 머리로 하고 실천하면 된다.


7.

마음을 들여다 보라는 이야기는 이런 거였다. 내가 돈에 예민한 사람이고, 성과로 사람을 판단하는 사람이라는 걸 인정하고 나니 모든 명쾌해진다. 친구들이 주식 이야기를 불편해했던 것도, 돈을 고민을 과하게 하는 것, 일에 집착하는 것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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