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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호 Jan 25. 2022

서울사람책도서관, "독자를 통해 치유받았다"

2020 서울사람책도서관 '사람책' 참여 후기

2020 서울사람책도서관 '사람책' 참여 후기

다면,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 따뜻함을 느꼈다"


브런치 알림이 울렸다. 누군가 나의 글을 보고 문의를 남겼다는 내용이었다. 당연히 광고일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서울사람책도서관"에서 '사람책'으로 활동해줄 수 있냐는 내용이었다. 나는 내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들려줄만한 일인 것 같지도 않았고, 전문가가 아닌 사람이 정신질환에 대해 말하는 것이 부적절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고민해보고 답변을 주겠다고 했다. 사실 첫 만남을 가지기 전까지는 신종 사기가 아닌가 의심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하겠다'라고 한 것은 누군가 내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기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브런치 작가라는 호칭이 불편하고 어색하기만 했다. 작가는 무슨. 작가라고 부르지 말아 달라고 하려다가 그건 또 그것대로 실례인 것 같아서 말을 삼켰다. 대신 더 열심히 준비했다. 지금까지 내 진료 기록은 물론 적어두었던 감정일기, 읽었던 책 등을 모두 총동원했다. 


학지사의 이상심리학 시리즈를 정말 열심히 읽었다


혹시라도 누군가를 불편하게 하거나 더 나쁜 상황으로 만들 수 있다는 생각에 말을 고르고 또 골랐다. 그러다 보니 할 수 있는 말이 별로 없었다. 그래서 나의 이야기를 하자고 마음먹었다. 나의 삶은 나의 것이고, 내 삶에 대한 해석의 권리는 나에게 있으므로 누구에게도 해가 될 것 같지는 않았다. 그래서 나의 삶을 드러내기로 했다. 그 공간에서 있었던 이야기는 밖으로 유출시키지 않는다는 참여자들 간의 약속도 용기를 주었다. 


나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 그간의 다이어리를 모두 살펴보기도 했다


그럼에도 지나치게 사적인 이야기로 끝을 내고 싶지는 않았다. 코로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시점이었다. 나도 정신과에 처음 방문하면서 수도 없이 고민했다. 취직을 못 하게 되면 어떻게 하지, 나를 이상한 사람으로 보면 어떻게 하지. 실제로 가족이나 친구들도 '정신력으로 이겨내라'던가 '약에 중독되면 어떻게 하냐'는 등의 이야기를 내놓기도 했다. 그래서 어떻게 해야 우울증을 비롯한 정신질환을 가진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지 계속해서 고민했다. 이 역시 나의 이야기를 하는 수밖에는 없었다. 내가 우울증을 벗어나기 위해 했던 행동들을 공개하면 되겠다 싶었다. 그래서 감정일기는 물론 일기장의 내용도 일부 공개했다.

감정일기도 공개했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약 한 시간이었다. 혼자서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게 부담이었다. 시작하기 전에는 손이 너무 떨려서 물을 마시지도 못할 정도였다. 그렇게 시작을 하고 10분 정도는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도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내 떨리는 목소리가 나에게도 느껴져서 떨지 않으려고 애썼던 기억밖에 나지 않는다. 그렇게 시간이 조금 흐르니 조금씩 긴장이 풀리기 시작했다. 


한참 이야기를 하다 보니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질의응답으로 넘어가야 한다는 손피켓이 보였다. 남은 시간 동안은 독자분들의 질문에 대답을 하고 소감을 나누었다. 온라인으로 진행되어 나의 이야기가 잘 전달되는지, 잘 듣고 계신 것인지, 불편하게 한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었는데 다들 경청해주셨다는 걸 알 수 있는 내용의 말씀을 해주셨다. 서로에게 도움이 될만한 책을 소개하기도 하고, 자신의 경험을 내놓기도 했다. 어디에서도 경험해보지 못한 일이었다. 


1년이 훌쩍 지난 지금에서야 후기를 쓰는 이유는 그날 진정으로 치유받은 사람은 나였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나는 나의 이야기에 이렇게까지 귀 기울여주고 공감해주는 사람이 있음을 처음 경험했다. 그리고 그 감정을 소화하는데 1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그때는 그저 '신기한 경험', '떨리는 경험' 정도로만 인식되었다. 하지만 내 치유의 시작에는 이 시간이 중요한 역할을 했음이 분명하다. 일기장처럼 써놓은 글을 보고 연락을 해주신 "와우책문화예술센터" 관계자분들부터 시간을 내어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신 5명의 독자분들께도 진심으로 감사하다.


이분들이 있어 비대한 자아가 나의 우울에 한몫했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나는 내가 비범한 사람이었으면 했고, 착한 사람이었으면 했고, 좋은 사람이었으면 했다. 하지만 나는 평범한 사람에 불과했다. 실수하기도 하고, 명백한 잘못을 저지르기도 하고, 직면해야 하는 상황을 회피하기도 하고,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기도 했다. 그래서 수치심 속에 나를 숨겼다. 절실하게 나라는 존재가 세상에서 사라지기를 바랐던 시간도 있었다. 그렇게 나는 나의 부족한 점과 못난 점을 숨기기 급급해 자아를 통합하지 못했고 그 과정에서 불안과 우울을 겪었다.


컨퍼런스에서의 질문 하나가 기억에 남는다. 서울사람책도서관 행사가 다시 열리면 사람책으로 다시 참여할 의향이 있냐는 것이었다. 나는 무조건 참여하겠다고 했다. 내가 나의 우울을 바깥에 내놓을 때까지 많은 사람들의 지원과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결코 나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누군가의 한 발을 응원하기 위해서라도 한 발을 내디뎌야 한다. 먼저 앞서간 사람들 혹은 그들이 내놓은 책이나 글들을 보며 나도 그들을 따라갔듯 말이다.


나는 내가 밥만 축내는 벌레 같은 존재라고 생각해서 브런치 주소도 foodbug(밥벌레)로 지었다. 그 정도로 자존감이 낮았다. 그래서 나를 숨기려 했다. 세상은 위험한 곳이라고 여겼다. 그리고 이렇게 세상에 나를 내놓으며 다시 한번 깨달았다. 내 존재가 하찮다는 것을. 


하지만 동시에 내가 존재 자체로 소중한 사람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알게 되었다. 그러고 나서야 다른 존재들이 제대로 보였다. 우리 모두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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